한국은행의 13년만의 금 매입은 한 마디로‘외환보유액 규모의 자신감’이다. 3000억달러를 넘어선 데다 규모로도 세계 7위에 올라섰다.
세계 경제가 재채기할 때 우리나라 외환유동성이 ‘위기설’이란 몸살을 앓지 않을 체력을 갖췄다. 이자와 배당 수익이 없는 금 매입도 과감하게 할 수 있었던 것이다.
인도와 파키스탄은 지난 2009년 10월 금 200톤을 사들이며 한달새 금 시세를 20~30% 가량 끌어올렸다.
한은 역시 금 매입 배경으로 ‘매입여력’을 강조했다. 3000억달러가 기점이었다는 얘기다. 그동안 2000억달러 선에서 이뤄지지 않았지만 3000억달러란 규모를 갖추면서 대량의 금 매입을 본격 추진한 것이다.
한은이 금 매입 검토 단계까지 간 건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외환보유액이 2600억달러에 달한 지난 2008년 초에도 금 매입을 고려했다. 시장 조사까지 모두 마쳤다. 사들이는 일만 남았다. 글로벌 금융위기는 한은의 금 매입을 최종 단계에서 좌절시켰다.
서봉국 외자운용원 운용전략팀장은 “당시에는 외환보유액이 급격히 빠지면서 유동성 확보에 정책 우선 순위를 뒀다”고 설명했다.
미국 달러화의 위상이 예전 같지 않은 것도 금 매입의 결정 변수다. 부채 증액 협상 통과로 채무 불이행(디폴트)은 모면했다. 하지만 미국 국가 신용등급 강등 가능성은 여전하다.
우리나라 외환보유액 중 달러화 비중은 지난해 말 기준 63.7%다. 상품별로는 정부채가 35.8%다. 대부분 미국 국채에 투자한 것으로 추정된다. 미국 신용등급이 떨어질 경우 채권 가격이 떨어지면서 큰 손실을 볼 수 있다.
손 연구원은 “달러화의 추세적인 약세와 미국 경제의 불확실성이 외환보유액의 구성을 다변화해야 한다는 데 영향을 미쳤을 것”이라고 평가했다.
◇뒤늦은 금 매입 비판도, 추가매입 이어질 듯= 금의 추가 매입은 이어질 전망이다. 올초 외자운용원 설립 이후 투자 다변화 기조를 강화했다. 중국 위안화 투자도 추진 중이다.
한은의 싯가기준 금 비중은 0.7%이다. 외환보유액 10원권 국가의 평균인 3.3%에 크게 못 미친다. 중국, 일본, 대만 등 10위권 중 아시아 국가의 평균인 2.4%에도 뒤진다. 아직 너무 많이 투자했다는 비판에서는 벗어난다.
한은 고위 관계자는 “금뿐 아니라 모든 통화와 상품이 투자 대상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물론 한은의 이번 금 매입이 시기상 적절했냐는 비판을 피해갈 수 없다. 최근 금값 상승으로 “상투 잡은 것 아니냐”는 것이다.
한은이 12억4000만달러(취득원가 기준)로 25톤을 매입한 것을 고려하면 트라이 온스(31.1g) 당 1543달러에 구입했다는 계산이 나온다. 지난 1일 금값은 미국의 부채증액 협상이 통과했다는 소식에 1600달러 초반에서 1% 가량 하락했다. 제대로 고점 매입한 셈이다.
정영식 삼성경제연구소 수석연구원은 “금의 매입 방향은 맞다”면서 “더 일찍 샀다면 비용 부담을 줄였을 것”이라고 평가했다.
이에 대해 서 팀장은 “금은 장기간 보유할 자산이기 때문에 시세보다는 매입여력이 중요한 판단 요소이다”며 “장기적으론 금값은 상승추세를 보일 것”이라고 자신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