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증시전망이요? 이런 상황에서 자칫 전망이 어긋나면 제 개인이나 회사나 모두 곤란한 입장이 되는 거 아시잖아요.”
최근 폭락을 거듭하는 증시상황에서 투자의 길라잡이 역할을 해야 할 증권사 애널리스트의 공통된 심경이다.
애널리스트들은 “현재는 주가전망을 한다는 것이 오히려 무의미할 정도로 앞을 내다보기 어렵다”며 입을 모았다.
9일 증권업계에 따르면 일부 증시 긍정론들은 현재 주가가 저점을 찍어 기술적인 반등을 예상하고 있지만, 대부분의 애널리스트들은 원론적 수준의 전망을 내놓을 뿐 투자자의 가려운 곳을 긁어줄 수 있는 예측을 하지 못하는 상황이다. 특히 회사와 개인의 신뢰도 저하를 우려하는 애널들이 실명거론을 피해달라는 요청을 할 정도로 증시는 끝없는 안개속을 걷고 있다.
8월 증시를 장밋빛으로 전망했던 증권사들은 폭락장이 지속되면서 코스피 전망치를 2100에서 1800까지 무려 300포인트나 하향조정하고 있다.
문제는 증권사 리서치센터에서 심리적 지지선을 설정하면 이튿날 어김없이 그 지지선이 붕괴되는 기이한 현상까지 발생하는 점이다.
이같은 상황에 일부 애널리스트들은 이제는 증시전망 자체가 의미 없는 행동이라고까지 토로했다. 외부환경에 영향을 많이 받는 국내증시 특성을 감안할 때 현재 글로벌 시장에 대한 분석 또한 할 수 없다는 의견이다.
A증권사 애널리스트는 “지난주부터 미국의 더블딥 등 글로벌 경제위기의 불확실성에 이어 미국 신용등급 강등이라는 이유로 국내 증시가 휘청거렸다”라며 “앞으로 어떠한 일이 더 남았는지 정확이 모르겠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현재 제시되는 일부 전망들은 악재 발생 후에 밝힌 내용들”이라며 “악재가 터진 후 향후 전망을 하는 것이 어려운 상황”이라고 덧붙였다.
B증권사의 리서치센터장은 향후 글로벌 경제환경이 어떻게 될지 모르는 상황에서 단기지지선을 제시하는 것이 의미가 없다고 밝혔다.
C증권사 리서치센터장은 “지금 시장에서는 지난 2008년 리먼사태와 같은 금융위기가 재현될 수 있을 거라는 의견이 팽배하다”며 “미국 신용등급하락이 미국의 신용경색은 가져오지 않겠지만 유럽의 위기를 가져올 수 있다고 보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어제 오바마 미국 대통령의 발언이 또다시 불안감을 촉발시켰다”며 “재정정책, 통화정책도 쓸 수 없는, 말 그대로 시장에 뾰족한 대책이 없는 상황이라는 시그널을 준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그는 “경제를 되돌리기 위해 할 수 있는 일이 없다는 걸 시인한 셈”이라며 “상황이 이런데 대응 자체가 무의미하다”고 말했다.
그는 “미국의 국가신용등급 강등은 사상 초유의 사태”라며 “내부적으로는 투자자들이 과민하게 반응한다고 생각되지만, 현재 시점에서 단기 지지선을 논하고 언제 반등할지 전망하는 것은 아무런 의미가 없다”고 밝혔다.
특히 “이번 주에 있는 각종 경제적 일정이 증시에 호재로 작용한다고 하더라도 투자심리가 회복돼 실제 주가에 반영되기까지는 상당한 시간이 소요될 것으로 보인다”며 비관적인 입장을 나타냈다.
이에 반해 긍정적인 전망을 제시하는 전문가들도 등장해 눈길을 끌고 있다. A자산운용 국내주식운용본부장은 “단기적으로는 기술적 반등이 예상되고, 펀더멘털을 고려할 때 장기적으로도 강한 반동이 있을 것”으로 내다봤다.
지난 2008년 금융위기처럼 시스템 붕괴에 의한 충격이 아니기 때문에 회복하는 데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을 것이라는 전망이다. 그는 이어 “현재 펀더멘털은 주가수익비율(PER) 9배 수준으로 완전히 바닥”이라며 “공포 국면을 포트폴리오 조정의 기회로 이용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B증권사 투자전략팀장 역시 바닥을 확인했다는데 의견을 같이 했다. 그는 “전일 코스피지수가 1800선까지 빠졌지만 다시 반등하는 모습을 보였다”라며 “단기적으로는 바닥을 확인한 것 같다”고 말했다.
박철근 기자 ckpark@
오희나 기자 hnoh@