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일 새벽 기자가 찾아간 국내 최대 채소·과일·수산물이 모여 있는 가락동농수산물도매시장에서 상인들이 입모아 한 말이다. 지난 6월말부터 시작된 장마, 태풍, 그리고 폭우로 농산물 가격이 급등하고 이른 추석(9월 12일)을 맞아 앞으로 30% 이상 오른다는 관측까지 나오면서 시장 분위기는 찬물을 끼얹은 듯 했다.
현저하게 줄어든 농산물 박스와 함께 손님없는 가게를 지키며 상인들이 먹고 남긴 막걸리 잔들이 개시 전임에 불구하고 이리저리 널려있었다. 가장 활기찬 추석 전이라는 상황과 맞지 않게 활력 잃은 상인들의 표정은 앞으로 다가올 대란을 예고 하고 있다.
“가락시장 상인 40년동안 이렇게 안팔리기는 처음이다”가락동농수산물도매시장에서 무 도매를 하는 박 모(68) 할아버지의 한탄이다.
이 씨는 산지에서 무를 떼다가 도매로 트럭 상인 등에게 파는 일을 해왔다. 하지만 그는 40년을 해온 이 일도 그만둘지 심각하게 고려하고 있다. 무 공급 물량이 줄어든데다가 소매상인들의 구매도 줄어드는 이중고를 더는 견디기 어렵기 때문이다.
기자와 인터뷰하는 동안 찾아온 소매 트럭상인은 무 가격을 듣자마자 빈 트럭으로 자리를 떠났다. 이 씨가 소매 상인에게 판매하는 상급무 1박스(2㎏무 10개들이)의 가격은 3만5000~4만원선이다. 그는 기상이변으로 밭에서 무가 자라지 못한다며 지난해보다 5000~1만원 정도 오른 가격에 판매하고 있다.
그는 “파는 사람(도매상인)도 어렵고 사는 사람(소매상인)도 어려운데 일반 소비자는 오죽하겠느냐”고 말했다.
실제로 가락시장에서 도매 뿐만 아니라 소매를 같이하는 수산물 시장에서는 소비자들의 발길이 더욱 뜸해졌다. 1993년부터 18년동안 자리를 지켜온 이 모(46·남)씨는 최근 직원을 8명에서 3명으로 크게 줄였다. 어려워진 경기 뿐만 아니라 기상 이변으로 반입량까지 줄어 매장을 꾸려나가는데 어려움을 겪고 있어서다.
이 씨는 “1997년 IMF때보다 지금이 더 힘들다”며“정말 팔아도 남는 것이 없으니 장사할 의욕이 안난다”고 말했다.
밤 11시에 시작되는 배추 경매장은 중간 도매상들 보다 출하차 물량을 오르내리는 직원들이 더 많을 정도로 한산했다.
반입물건을 실어 내리는 일을 하고 있는 유 모(43)씨는“비 때문에 피해가 매우 크다. 모든 품목이 반입 물량, 소비 물량 할 것 없이 엄청나게 줄어들었고 가격은 천정부지로 올랐다”고 말했다.
가락시장 관계자는“최근 집중폭우로 경기 인근 지역 농가에서 상추, 깻잎 등이 큰 피해를 입어 반입물량이 장마 시작 전의 절반도 못 미치는 수준”이라며 “강원도에서도 배추 농지 피해가 큰데 농수산물유통공사에서 많은 물량을 유입시켜주고 있지만 가격이 쉽게 내려가지 않는다”고 덧붙였다.
과일도 크게 올라 당장 추석 물가에 비상이 걸렸다. 과일상 정 모(62·남)씨는 “최근 과일이 30% 이상 폭등했다며 벌써 과일 가격이 오르기 시작해 손님부터 떨어질 것 같아 추석 장사가 걱정된다”고 한숨을 내쉬었다.
인근 상인과 탁주를 같이 마시고 있던 정 씨는 “장사도 안돼 술부터 들이키고 있다”며 “물건 가격은 오르고 손님도 없어 아픈 마음을 술로 달랠 뿐”이라고 토로했다. 옆에 있던 다른 상인은 “배·사과 등 과일로 추석 대목을 일년 동안 기다렸는데 태풍·폭우로 헛수고”라며 “이번 한가위가‘한(恨)가위’가 될 것 같다”고 한숨을 내쉬었다.
실제로 11일 가락시장의 과일반입량은 886t으로 지난해 동기 933t보다 47t이 감소했다. 과일과채류는 1097t으로 315t 감소했다. 일반채소류는 지난해 동기보다 1211t이나 감소했다.
최근 전남 지역에서 690㏊에 달하는 낙과 피해를 입은 배 밭의 영향으로 배 반입량은 지난해 동기 대비 20%에 불과했다. 배(신고배·중품) 10개 소매가격은 3만5714원으로 한달 전 2만9211원보다 6000원 넘게 올랐다. 1년 전 가격은 1만7716원으로 1년 전과 비교하면 무려 두 배 가량 올랐다. 여기에 이상기후의 영향으로 평년보다 생산량이 20% 이상 줄어들 것으로 예상돼 배 출하량은 더 위축될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여기에 세러리(10kg 중)은 8월평균 3만4021원으로 지난달 평균 1만1656원 대비 191.9%나 급등했다. 자두(후무사 10kg 하)는 이달 평균 1만7189원으로 지난달 평균 7990원보다 115.1% 올랐다. 복숭아 황도(4.5kg 중)도 이달 평균 1만6858원으로 지난달 평균 7904원보다 113.3% 급등하면서 전반적인 과일 폭등 현상을 보여주고 있다.
채소류도 많이 올랐다. 12일 농수산물유통공사에 따르면 무(18㎏ 특)은 지난 10일 3만원으로, 장마기 사직되기 직전인 6월 22일 7000원에서 4배 넘게 폭등했다. 백오이(15㎏ 특)는 2만원에서 지난달 20일 7만5000원으로 3.75배 올랐다. 현재 10일에는 4만1000원대 가격을 유지하고 있다. 토마토(10㎏ 대)는 현재 2만4000원으로 지난 6월 22일 대비 5000원 상승했다.
도매시장 뿐만 아니라 일반 소매 재래시장도 농산물 가격 폭등의 직격탄을 맞았다. 봉천시장은 여느 때처럼 사람은 붐 비었지만 실제 구매로 이어지는 경우는 적었다. 이를 의식한듯 시장 상인들은 채소·과일들을 1개 단위로 일제히 포장해놓고 있었다.
3년동안 과일을 팔았다는 이춘근(34·남)씨는 “과일이 예년보다 40% 이상 올라서 전에 같으면 박스 단위로 사가시는 손님들이 1개 1봉지로 바뀌니 장사가 되겠냐”며 “목청껏 손님을 불러보지만 그냥 둘러보기만 해 이 장사를 접어야 되나 걱정하고 있다”고 말했다.
옆에 있던 봉천동 주민 문영미(43·여)씨는 “그래도 마트보다 쌀까해서 재래시장에 나왔는데 올라도 너무나 올랐다”며 “이번 추석에 더 오르면 제사비용을 감당하기 어려울 것 같다”고 말했다.
여기에 계란가격이 오르고 원유값 인상 갈등으로 우유가격까지 오를 것으로 예상돼 시장 전반적인 물가상승이 예고되고 있다. 11일 대한양계협회에 따르면 지난해 8월 개당 122원이던 계란(특란)가격은 현재 169원으로 작년 동기 대비 38.5%나 올랐다고 밝혔다. 일선 대형마트에서 판매하는 소매가격(30구,특란)도 지난해 8월 4380원에서 5950원으로 35.8% 가량 상승했다.
봉천시장 관계자는“9월 초에 계란 가격이 개당 200원을 넘을 수도 있을 것이라는 보도를 봤다”며 “생활 필수 식료품이 오르면서 덩달아 물가 인상 도미노가 일어나지 않을까 우려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