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 칼럼]막걸리 그 불편한 진실

입력 2011-08-22 11: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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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성찬 부국장 겸 스포츠문화부장

어느 날 한 연구원에서 실험결과‘막걸리는 페네즐 때문에 항암효과가 있다’고 했다. 술에 약한 중년층이 난리가 났다. 멋 좀 부리려고 와인을 마시던 신사들이 하루 아침에 침을 튀기며 막걸리 예찬을 시작했다.

또한 ‘식이섬유가 풍부해 변비에도 도움이 되고 콜레스테롤과 통풍을 막아주는 요산수치를 내려주는 효능을 포함해 심혈관 질환에 예방이 된다’고 덧붙였다. 이러니 나이를 막론하고 막걸리 타령이다.

그러다가 ‘트립토판과 메티오닌의 필수아미노산을 함유해 지방축척으로 다이어트에도 좋다’고 덧붙였다. 이번에는 여성들 사이에서 막걸리 열풍이 불어 닥쳤다. 아무리 좋아도 야식으로 배불리 먹으면 뱃살 나온다. 물론 막걸리는 보약이 아니라 술이기 때문에 과음하면 독(毒)이 된다.

점심이건 저녁이건 삼삼오오 짝을 이뤄 식탁에 걸터앉으면 막걸리 한잔 정도는 예사다. 그런데 ‘막걸리’를 시켜놓으면 누군가는 으레 한마디 한다.

“막걸리는 탁주와 같다.” “청주를 걸러내고 나면 그것이 막걸리다.” “막걸리는 동동주와 같다.” “막걸리는 도수가 6°다.” “막걸리는 집에서 만들어도 된다.”

이런 검증되지 않은 이야기는 마구 터져 나온다. 술잔이 돌면 서서히 반대의견도 목소리를 높인다. “막걸리는 청주와 탁주가 분리되기 전의 술이다.” “동동주는 막걸리에 쌀이 동동 뜨는 것이다.” “막 걸러서 막걸리다.”

무엇이 맞고 틀린지도 모른 채 목청만 높이다가 끝난다. 막걸리도 술이라는 결론에 도달하고 술은 술을 먹기 시작한다.

막걸리하면 어렸을 적 논두렁길이 생각난다. 농사를 지었던 집안에서 잔심부름을 시키면 막걸리를 받아 오라는 주문이 빠지지 않는다. 가득 찬 술이 든 주전자가 무거운 탓인지 걸을 때마다 뒤뚱거리고 흔들려서 주둥이에서 조금씩 흘러 내렸다. 한참을 가다보면 덥기도 하고 목이 타서 입을 대고 조금씩 먹었던 기억이 새롭다. 이 때문에 막걸리하면 나름대로 추억들을 갖고 있을 터.

막걸리는 문헌상 주조법 책‘양주방’에 혼돈주(混沌酒)라는 이름으로 처음 등장한다.

사전에서 의미하는 막걸리(maggolli, turbid rice-wine)는 찹쌀, 멥쌀, 보리, 밀가루 등을 쪄서 누룩과 물을 섞어 일정한 온도에서 발효시킨 우리나라 고유의 술이다. 한국에서 가장 오랜 된 전통술인 셈이다. 청주(약주)를 거르지 않고 그대로 걸러 짜낸 술이다.

막걸리는 탁주(濁酒), 농주(農酒), 재주(滓酒), 회주(灰酒)라고도 불린다. 지방 방언으로 대포, 탁배기라고 한다. 그리고 구한말까지 규격화되기 전까지는 가가호호 집에서 담궈 막걸리 종류가 수도 없이 많았다.

막걸리는 빛깔이 쌀뜨물처럼 희고 탁하다. 알코올 성분은 6∼7도. 찹쌀을 원료로 하면 찹쌀 막걸리, 거르지 않고 밥풀이 그대로 담긴 채 뜬 것을 동동주라고 한다.

막걸리 도수는 본래 8도였다. 그러다가 1962년도에 6도로 낮췄다. ‘싱겁다’는 반응을 보이자 11도 약주를 넣어 독하게 만들어 특주를 팔기도 했다. 1982년에 다시 막걸리는 8도로 복귀했다. 좋은 막걸리는 단맛과 신맛, 쓴맛, 떫은맛이 조화를 이루고 감칠맛과 시원한 맛이 있어야 한다.

막걸리에 대한 역사에 얽힌 일화도 있다.

‘조선조 광해군 때 왕으로 등극하려는 광해군과 이를 말리려는 나이 어린 영창대군의 모친 인목대비의 비화다. 둘은 심한 알력으로 영창대군은 광해군이 보낸 밀사로 인해 죽는다. 인목대비는 제주도로 귀양을 갔고. 제주도에 귀양 간 인목대비는 갖은 고초를 겪었을 것은 뻔한 일. 문제는 끼니였다. 초근목피로 겨우 연명해 나갔다. 그러던 어느 날 인목대비는 쌀로 빚은 술 즉, 청주를 만들고 난 술 찌꺼기를 버리는 것을 유심히 보았다. 이것이 ‘마구 버리는 술’이라 막걸리였다는 얘기. 이것을 먹고 난 다음에 남는 것을 싸게 팔아 인목대비는 생활고를 이겨낸 것이다. 그래서 임금님의 어머니가 만든 술이라 해서 모주(母酒)라고도 한다.

사실 막걸리는 농주(農酒)나 가주(家酒)로 불리지만 모주라는 말이 가장 잘 어울린다. 막걸리의 빛깔은 유백색. 이것이 어머니의 젖 빛깔이라는 것. 아이가 어머니의 젖을 먹듯 농민들이 이것을 먹어야 힘이 불끈 솟아오른다.’

위 인용문은 작가 최인호가 경향신문 객원기자 시절(1977년) 극작가 이서구(李瑞求)씨와 인터뷰한 내용 중 막걸리의 관한 이야기를 조금 재구성한 것이다.

지친 샐러리맨들끼리 모여 앉아 막걸리. 술잔을 기울 일 때 그 막걸리가 눈만 말똥말똥 어머니를 쳐다보고 젖을 빨던 그 가슴 시린 시절을 생각해 낼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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