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엘리 기자의 게임이야기] 게임사들의 무분별한 계정 정지

입력 2011-09-13 1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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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날 기자의 e메일로 게임사 네오플로부터 메일 한 통이 들어왔다.

다름 아닌 지난해 10월 기사를 쓰기 위해 만들었던 ‘던전앤파이터’ 게임 계정이 일명 ‘오토’라고 불리는 불법 프로그램 사용으로 영구 정지 된다는 통보 메일이었다. 오토는 자동으로 사냥 등의 행위를 계속 할 수 있도록 하는 게임 자동 사냥 프로그램이다.

기사를 작성한 이후로 한 번도 게임을 하지 않고 1년이 가까운 시간이 흐른 지금, 그것도 오토프로그램을 사용했다는 이유로 계정 압류를 당하는 황당한 일이 기자에게도 일어난 것이다.

게임사들은 약관을 통해 불법프로그램 사용과 아이템 현금 거래를 금지하고 있으며 적발시 그에 대한 제재를 가한다. 하지만 약관을 자의적으로 해석해 게임 이용자들이 피해를 보는 사례가 빈번히 발생하고 있다.

굳이 이용료를 지급하고 게임을 즐기는 월정액제 게임이 아니더라도 사용자가 수년 동안 시간과 돈을 투자해 만들어놓은 게임 캐릭터는 일종의 재산이라고 볼 수 있다. 하지만 게임사들은 아무 사후 구제절차 없이 이를 압류하고 타당한 근거 자료도 제시하지 않는 경우가 많아 이용자들의 불만이 고조되고 있다.

심지어 게임사들은 사용자들의 계정 자료를 3개월간 보관하는데 소송을 제기할 경우 3개월이 지났으므로 자료를 파기할 것이라고 협박한 사례도 있었다.

게임사들은 불법 프로그램 사용, 현금 거래에 대해 강력히 규제하고 제한 사유가 명확히 확인된 경우엔 계정 제한 해제가 불가능하다는 입장이다. 하지만 이용자들은 게임사들이 적발 시 사용하는 프로그램이 완벽할 수는 없다며 정확도에 의구심을 품고 있다.

사용자가 억울함을 호소하고 게임사에게 자료 제출을 강제할 수 있는 방법은 소송을 제기하는 것 밖에 없다.

불법프로그램 오인 계정 압류와 관련해 소송을 제기할 경우 실무상 입증 책임은 원고인 이용자와 피고인 게임사 양측 모두에게 있지만 사실상 ‘오토프로그램을 사용하지 않았다’라는 것은 입증하기가 쉽지 않다. 따라서 게임사들이 제시하는 증거 자료에 의존할 수밖에 없는 것.

Next Law 법률사무소의 박진식 변호사는 “과거 오토프로그램 사용 계정 압류 소송에서 피고인 게임사 엔씨소프트 측이 적발 프로그램을 법정에서 직접 구동해서 보여주는데 원고측 대리인과 관련인은 밖에 나가 있도록 했다”면서 “결국 아무것도 보지 못하고 법원은 엔씨소프트에게 손을 들어주었고 사실상 게임 회사의 주장이 그대로 받아들여지고 있어 문제”라고 말했다.

최근 대법원에서 게임회사의 무분별한 계정 이용정지조치의 위법성을 확인한 의미있는 판례가 나왔다.

대법원은 손 모씨 등 다중접속역할수행게임(MMORPG) ‘리니지1’ 게임 이용자들이 엔씨소프트의 계정 압류로 피해를 봤다며 청구한 소송에서 원심판결을 깨고 사건을 고등법원으로 돌려보냈다.

엔씨소프트는 게임 약관을 통해 현금거래를 금지하면서 1차 적발 시 30일간 이용정지, 2차 적발시 영구이용정지가 가능하도록 규정했다. 하지만 최초 1회 적발이라고 하더라도, 해당 계정으로 과거 현금거래를 한 사실이 추가로 확인되는 경우에는 영구이용정지를 할 수 있도록 하고 있었다.

법원은 ‘2회 적발’은 현금거래 행위가 2회 있는 것이 아니라 2회 적발된 경우에 해당된다고 해석될 여지가 충분하다며 엔씨소프트의 계정이용정지 조치가 위법하다고 판시했다.

엔씨소프트 측은 계정 이용 정지 건마다 요건이나 사항이 다 다르기 때문에 일괄적으로 적용될 수 없으며 약관에 문제가 있을 경우 검토를 할 것이라고 밝혔다.

한 게임 이용자는 “게임사들의 약관은 ‘귀에 걸면 귀걸이 코에 걸면 코걸이’ 식으로 돼 있어 사용자에게 불리하게 해석되는 경우가 많다”면서 “게임사들은 아이템 현금 거래를 하지 않고는 게임을 할 수 없도록 만들어놓고 그 책임은 전부 이용자들이 지도록 하고 있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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