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형유통업체들의 판매 수수료를 인하하기 위한 공정거래위원회의 요구가 도를 넘어서고 있다. 지난 6일 반강제적으로 ‘판매수수료 3~7%포인트 인하 합의안’을 도출한 이후 이번에는 ‘영업이익의 5~8% 포기’라는 새 카드를 들고 나와 유통업계는 당혹스러움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21일 관련업계에 따르면 공정위는 각 유통업체에 영업이익 5~8%에 상당하는 액수만큼 판매수수료를 인하하라고 요구했다. 중소업체 판매수수료를 3~7%포인트 인하하기로 합의했으나 이후 유통업체들이 실행 계획을 내놓지 못한 데 대한 후속 조치다.
특히 중소기업에 대한 매출 기준이 없어 유통업체들이 미그적거리는 모습을 보이자‘영업이익 일정 부분’으로 판매수수료 인하기준을 제멋대로 바꾼 셈이다.
대형 유통업체들은 주주가 있는 상장기업에 영업이익을 포기하라고 공정위가 압박하는 것은 도가 지나치다며 분노했다.
예컨데 지난해 영업이익 7948억원을 달성했던 롯데백화점의 경우 8% 수준인 635억원, 5%라면 400억원을 부담해야 한다는 뜻이다. 신세계그룹 역시 작년 영업이익 9941억원(이마트 포함)을 올렸던 것을 감안하면 497억~795억원을 내놔야 한다.
한 유통업체 관계자는 “반강제적 합의안 발표 이후 공정위에 몇 차례 계획을 전달했으나 공정위 기대치에 못 미쳐 받아들여지지 않았다”며 “새로운 계획안을 제시하는 것을 포기하고 사실상 손을 놓고 있는 상태인데 갑자기 판매수수료 인하 기준을 영업이익의 5~8%안으로 바꾼 것은 납득하기 어렵다”고 토로했다.
공정위는 합의안 발표 이후 구체적인 실행안이 도출되지 못하는 것 역시 보여주기식 발표에만 신경을 쓴 나머지 상세한 적용 기준이 마련되지 않았기 때문이라는 지적을 피할 수 없을 것으로 보인다.
한 유통업계 고위관계자는 “공정위가 유통업태별 특성에 대한 이해도 없이 충분한 논의를 거치지 않고 조급하게 수수료 인하 계획을 발표한 것은 문제가 있다”고 주장했다.
공정위는 유통업체의 수수료 인하 폭이 생색내기에 그친다면 ‘대규모 소매업에서의 거래공정화에 관한 법률안’으로 규제 칼날을 휘두르겠다고 엄포를 놓은 상태다. 이에 유통업체들은 차라리 직권조사에 응하는 게 낫다는 의견까지 보이고 있다.
공정위와 유통업체들이 의견 차이를 좁히지 못함에 따라 10월부터 적용할 예정이었던 판매수수료 인하는 차질이 불가피할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