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최대 PC업체 휴렛팩커드(HP)가 속전속결로 경영진을 갈아치워 이사회 기능에 대한 논란이 일고 있다.
HP는 지난 22일(현지시간) 레오 아포테커 전 최고경영자(CEO)를 내쫓고 새 수장 자리에 멕 휘트먼 전 이베이 CEO를 앉혔다.
이는 CEO 교체설이 나온지 하루 만에 이뤄진 것으로 업계에서는 HP 이사회에 대해 회의론이 커지고 있다고 경제전문지 포춘이 분석했다.
헤지펀드 아이언파이어캐피탈의 에릭 잭슨 이사는 ‘HP 이사회는 한심하다(HP’s Board of Directors Is Pathetic)’라는 제목의 글에서 “HP 이사회는 광대들과 같다”고 표현했다.
HP는 1년 동안 CEO 2명을 잇따라 교체하는 불명예스런 기록을 세웠다.
지난해 10월 성추문 스캔들로 사임한 마크 허드 전 CEO의 후임으로 세계 최대 기업용 소프트웨어 업체인 SAP 출신인 아포테커를 임명했다.
결국 아포테커는 1년을 채우지 못하고 CEO 자리에서 물러난 셈이 됐다.
그가 HP 매출의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하드웨어 사업을 운영한 경험이 없었다는 사실을 감안하면 애초에 영입 자체에 문제가 있었다는 평가다.
뉴욕타임스(NYT)에 따르면 HP 이사회 멤버 대부분이 아포테커를 영입하기 전 그를 만나본 적도 없는 것으로 밝혀졌다.
잭슨 이사는 “지난 10년 동안 HP의 최악의 실수는 아포테커를 CEO로 임명한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번 CEO 교체와 관련해서는 아포테커 스스로 무덤을 판 꼴이라는 주장도 제기되고 있다.
아포테커는 올해 초 임명된 이사회 멤버 5명 중 4명을 자신과 친분이 있는 인물로 임명했지만 결국 이들에 의해 방출됐다고 포춘은 전했다.
당시 새로 부임한 이사 4명은 휘트먼을 비롯해 도미니크 세네퀴 AXA프라이빗에쿼티 대표, 패트리샤 루소 전 알카텔 루슨트 CEO, 게리 라이너 전 제너럴일렉트릭(GE) 최고투자책임자(CIO) 등이다.
RHR인터네셔날 파트너인 데이비스는 “HP 이사회는 회사에 대한 정체성 부족과 리더십에 대한 신뢰 상실로 어려움에 처해 있다”면서 “이 같은 혼란은 회사 전체에 악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말했다.
데이비스는 “이사회 멤버들이 전략을 세우고 리더십을 확보해 회사를 성장시켜 나가야 할 때”라면서 “휘트먼 신임 CEO가 풀어야할 숙제는 산더미처럼 쌓여있는 상황”이라고 강조했다.
전문가들은 휘트먼 신임 CEO가 주로 소비자시장에 경험이 있으며 법인영업 부문에서 일한 경험이 없다는 점에서 HP 이사회의 새 CEO 결정에 대해 부정적인 분석을 내놓고 있다.
일각에서는 태블릿PC 시장이 급성장하는 등 글로벌 IT시장의 급변하고 있다는 사실을 감안할 때 HP 이사회의 최근 행보를 비난할 수만은 없다는 주장도 제기되고 있다.
리더십 컨설팅회사 RHR인터네셔날의 파트너이자 기업지배구조 전문가인 리차드 데이비스는 “지난 수년간 HP에서 일어난 일들을 돌이켜 보면 이사회가 ‘심오한 협상’을 벌이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