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병원들만 배불리는 ‘시장형실거래가’…정책 실패 '예견'

입력 2011-09-30 10:45 수정 2011-09-30 11: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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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센티브 93%가 상급병원에 집중…정부·병원이 제약사 압박해 경쟁질서 왜곡 우려도

지난해 10월 의약품 리베이트를 막기 위해 도입된 시장형실거래가제(저가구매 인센티브제)가 곳곳에 허점을 드러내면서 폐지를 검토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의약품 시장형실거래가 제도 시행 후 ‘1원 낙찰’의 대형병원에 인센티브가 집중되는가 하면 의약품 ‘1원 낙찰’의 부작용도 만연한 것으로 드러났다. 여기에 인센티브를 보장받기 위해 정부·병원이 제약회사를 압박하는 ‘경쟁 질서 왜곡’현상까지 나타나고 있다는 지적이다.

29일 보건복지위원회 소속 민주당 원희목 의원이 보건복지부 제출 자료를 분석한 결과, 올해 6월까지 국내 요양급여기관이 약을 싸게 구입해 지급받은 약제상한차액(인센티브)은 479억으로, 이중 93%에 해당하는 276억원이 상급종합병원에 집중됐다.

또 1월 낙찰 품목수는 상급종합병원이 582품목, 종합병원 298품목, 병원 48품목, 의원 43품목, 약국 38품목 순이었다. 특히 44곳의 상급병원수 중 87.1%인 37곳이 1원 낙찰을 받은 것으로 조사됐다.

1원낙찰이 가능한 이유는 원외처방에 있다는 게 원 의원의 설명이다. 의료기관에는 1원에 공급하지만, 원외인 약국에는 보험약가와 비슷하게 납품을 하게 된다면 원외처방으로 그 손실을 보전할 수 있기 때문이다. 도매회사가 울며 겨자먹기식으로 1원 낙찰을 하는 이유다.

원 의원은 “시장형실거래가제는 규모가 크거나 원외처방이 많은 의료기관일수록 더욱 유리해 대형병원들만 배불리고 있다”며 “정부는 의약품 거래가 공정하게 이뤄지지 않는 시장형실거래가제도 폐지를 검토하고 새로운 약가지불제도를 마련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시장형 실거래가 상환제는 의료기관과 약국이 정부가 정한 가격보다 싸게 의약품을 구매할 경우 해당 차액만큼 의료기관, 약국, 환자에게 인센티브 형태로 되돌려 주는 제도다. 지난해 10월 건강보험 약값부담 완화를 위해 도입됐지만, 내년 시행 예정인 약가 일괄인하로 1년간 유예됐다.

사실상 이 제도의 실패는 어느 정도 예견됐었다. 국회입법조사처가 지난 8월 내놓은‘2011 국정감사 정책자료’에 따르면 시장형 실거래가제는 여러 근본적인 한계점을 갖고 있는 것으로 지적됐다.

입법조사처는 “의료기관이 약을 싸게 구입하는 경우 고시가와 실제 구매가 차액의 일정 부분을 인센티브로 제공하겠다는 것은 정부와 병원이 의약품 공급자인 제약회사를 압박하는 것과 마찬가지”라며 “이는 결국 경쟁 질서를 왜곡할 가능성이 있다”고 밝혔다.

또한 “인센티브를 받기 위해 의료기관이 고가 의약품의 과잉 투약을 유발해 약값 인하가 아닌 오히려 약제비 증가를 가져올 수 있는데다, 요양기관이 실거래가로 신고한다는 보장도 없다”고 설명했다.

제약업계도 1년 유예를 계기로 시장형실거래가제에 대한 폐지를 강하게 요구하고 있다.

한국제약협회는 “시장형실거래가제는 병원에 우월적 지위를 부여해 저가낙찰로 이어지는 반시장 논리가 적용되고 있다”며 “이로 인해 보험재정절감 효과가 미미한데다, 의약품 저가구매로 5000억원에서 1조원의 제약업계 피해가 예상되고 있다”고 밝혔다.

여재천 한국신약개발연구조합 상무도 "제약사가 경쟁 입찰을 통해 저가로 조정된 가격에 병원에 공급한다는 것은 제약산업의 경쟁력을 떨어뜨리는 출발부터 잘못된 정책"이라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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