판매수수료 인하가 백화점 등 유통업체 영업이익에 미칠 악영향은 불 보듯 뻔하다. 대형 유통점의 높은 판매수수료는 어제오늘 문제가 아니다. 판매수수료 인하에 대해 대형유통업체는 물론 사회전반적으로 인하가 이뤄져야 한다는 공감대도 어느 정도 형성됐다. 문제는 압박해서 얻어낸 반(反)시장적 동반성장 합의라는 것이다. 한쪽을 압박해서 반강제적으로 얻어낸 동반성장은 결국에는 부작용을 일으키기 마련이다. 예고된 부작용은 벌써 시작됐다. 정부의 안하무인역 횡포에 업계는 차라리 버티겠다며 날선 신경전을 지속하고 있다. 지난해 9월29일 ‘동반성장 종합대책’을 수립·발표하고 올해 10월 ‘1년 성적표’를 화려하게 장식하고 싶었던 공정위의 바램이 물건너갔다. 잔뜩 독이 오른 공정위는 더 날카로운 칼을 뽑아들 작정이다. 글로벌 업체로 성장하기 위한 유통업계는 성장을 도모하기는커녕 현재의 영업이익 지키기에도 급급한 실정이다. 이미 신용평가사인 무디스는 한국 백화점들이 판매수수료를 인하하면 신용등급에 부정적 요소가 될 수 있다는 내용의 보고서를 발표했다.
◇왜 월마트가 될 수 없는가= 영국의 브랜드 컨설팅 기업 ‘브랜드 파이낸스’가 매년 전 세계 브랜드 가치를 조사해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올해 1위에 구글, 2위 마이크로소프트, 3위 월마트가 올랐다. 이와 관련해 동반성장위원회(위원장 정운찬)는 월마트가 수많은 협력업체들과의 발전적인 파트너십 관계, 즉 동반성장을 바탕으로 시장장악력이 높아진 것으로 분석했다. 월마트는 손쉽게 할 수 있는 납품단가 후려치기가 아니라 직거래를 늘리는 방법으로 원가절감노력을 계속한다는 것. 또 P&G, 존슨앤드존슨과 같은 회사와 공동으로 물류협력체제를 갖추어 경쟁업체들을 압도, 진정한 동반성장을 통해 성장을 꾀했다는 것이다. 이는 국내 유통업체들에게 월마트와 같은 글로벌업체로 성장하기 위해서는 정부가 제시하는 동반성장에 적극 참여해야만 ‘월마트가 될 수 있다’는 것을 에둘러 표현한 것이다.
유통업계 고위 관계자는 “글로벌 업체로 발돋움하기 위해 비전을 발표하며 성장을 도모하고 있는데 정부의 비현실적 중소기업 우대정책으로 인해 영업환경 악화가 불가피한 상황”이라며 “왜 월마트가 될 수 없느냐를 논하기 전에 중소기업이 높은 수수료율로 인해 손해를 보는지 이익을 내는지에 대해 조사할 생각을 안하고 당장 수수료가 높다는 점만 강조하고 있는 공정하지 못한 공정위부터 눈여겨봐야할 것”이라고 말했다.
지난달 6일 김동수 공정위원장은 11개 대형유통업체 최고경영자들과 명동 은행회관에서 간담회를 가진뒤 ‘판매수수료 3~7% 인하’·‘신규 중소입점업체 의무 거래기간 2년으로 연장’등의 내용을 골자로 하는 ‘유통·협력업체간 동반성장’합의안에 사인을 받아냈다. “도장 찍어라”라는 김 위원장의 무조건적인 요구에 유통 CEO들이 두손 두발 다 든 것이다. 대형 유통사들은 공정위가 제시한 수수료 인하가 과도하다는 점을 적극적으로 주장했지만 소귀에 경읽기였다.
3~7%의 수수료율 인하를 수용했을 경우 백화점3사의 영업이익은 적게는 200억원에서 많게는 700억원 가량 줄어들게 된다. 롯데백화점은 500억원 이상, 현대백화점과 신세계백화점은 각각 250억원 이상의 영업이익 손실이 발생한다.
반강제적으로 ‘3~7%포인트 인하 합의안’을 도출한 이후에는 지난달 중순 ‘영업이익의 5~10% 포기’라는 카드를 들고 나왔다. 판매수수료를 3~7%포인트 인하하기로 합의했으나 이후 유통업체들이 실행 계획을 내놓지 못하자 보여주기에 급급한 공정위가 ‘영업이익 5~8%, 많게는 10%에 상당하는 액수만큼 판매수수료 인하’하라는 후속 액션이었다.
지난해 영업이익 7948억원을 달성했던 롯데백화점의 경우 8% 수준인 635억원, 5%라면 400억원을 부담해야 한다. 신세계 역시 작년 영업이익 9941억원(이마트 포함)을 올렸던 것을 감안하면 497억~795억원을 내놔야 한다.
백화점 고위 관계자는 “수수료 인하 범위 축소 등을 주장하는 업계의 요구를 전혀 받아들이지 않았고 갑자기 판매수수료 인하 기준을 바꿨다”며 “백화점·대형마트 등 유통업종별 특성을 전혀 반영하지 않은 반강제적 합의안과 더불어 사회주의 국가에서도 보기힘든 기업의 영업이익에 관여를 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이병기 한국경제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동반성장 정책 자체가 시장원리에 위배된다”며 “대기업의 경쟁력을 저해하지 않으면서 협력 중소기업의 경쟁력도 향상시킬 수 있는 방향으로 대·중소기업의 상생 정책을 재정립해야한다”고 지적했다.
동반성장지수는 지수산정방식의 차이에 따라 그 순위가 크게 변동하는 특성이 있기 때문에 동반성장지수 순위산정 결과를 이용해 정책을 추진하는 데는 한계가 따른다는 게 전문가들 지적이다. 목표초과이익공유제의 경우 생산에 필요한 투입요소에 대한 대가를 지불하고 난 후 남은 순이익을 가질 수 있는 잔여청구권을 침해한다는 점에서 자본주의의 근간을 흔들 가능성이 크다. 중소기업 적합업종·품목 제도도 대기업의 재산권을 침해할 가능성이 높고 진입장벽의 역할을 함으로써 중소기업 고유업종 제도의 실패를 답습할 가능성이 크다.
박영범 한성대학교 경제학과 교수는 “중소기업적합업종지정제도란 벽을 만들어 대기업의 진입을 규제하는 것은 단기적으로 중소기업에게는 이익이 되겠지만 궁극적으로는 해당 업종 전체의 경쟁력을 떨어뜨릴 가능성이 크다”며 “또한 외국의 대기업과 비교해 국내 대기업을 역차별하는 모순이 발생한다”고 지적했다.
이어 “정부가 대기업을 반강제적으로(?) 참여시킬 수밖에 없는 현실은 지난 몇 십년간 정부정책의 최우선 과제로 추진되어 온 대·중소기업 상생협력의 현주소를 보여 준다”며 “글로벌 경쟁시대에 정부의 지원만으로 중소기업의 경쟁력이 강화되어 동반성장이 될 수는 없다”고 덧붙였다.
이와 관련해 이병기 연구원은 △중소기업의 기술능력 개발을 위한 대·중소기업 간 기술협력 및 공동연구개발 활성화 △대기업의 중소기업 기술이전에 대한 인센티브 강화 그리고 △하도급법의 본질인 대기업과 중소기업 간 계약이 잘 이행될 수 있도록 하는 등의 제안을 제시했다.
한상린 한양대 경영학부 교수는 “정부는 중소기업이 자체 경쟁력을 갖추도록 지원하는데 힘써야지, 기업만 규제해서는 안된다”며 “자발적인 상생협력을 적극적으로 끌어내기 위해 중소기업은 혁신노력을 적극적으로 하고 대기업은 강한 중소기업으로 발전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파트너십이 형성되어야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