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나라당내 혁신파 의원들은 6일 오후 청와대에 대국민사과와 747공약 폐기 등 ‘5대 쇄신’ 요구가 담긴 ‘대통령에게 드리는 글’을 전달했다.
이명박 대통령은 이 서한을 보고 받고 특별한 언급을 하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청와대는 “언제나 귀를 열고 의원들의 고언을 들을 것”이라면서도 “이런 방식의 문제제기를 한 것은 유감”이라고 밝혔다.
이 서한은 구상찬 김성식 김세연 신성범 정태근 의원 등 당내 모임 ‘민본21’ 소속 5명이 주도해 작성, 동료의원 20명의 서명을 받아 김효재 청와대 정무수석에게 전달했다.
다음은 ‘대통령에게 드리는 글’ 전문이다.
대통령의 대국민 사과와 국정 기조의 전환을 요청 드립니다.
10·26 재보선의 참패 후 모든 언론이 한나라당과 이명박 정부의 위기를 말합니다. 내년 총선에서 한나라당이 패배해 소수당으로 전락하고 이명박 정부는 반쪽 정부로 임기 말을 보내야 한다는 것을 지적한 것입니다. 솔직히 내년 총선에서의 심판이 두려운 것이 사실입니다. 하지만 저희들은 심판 받는 것보다 더 두려운 것이 있습니다.
국민 여러분들께서 지난해 6월의 지방선거와 지난 4월의 재보궐선거에 이어 이번 10월 선거에까지 3차례나 모진 매를 들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번에 또다시 한나라당과 이명박 정부가 국민여러분들께 진정으로 사과하고 질적인 변화를 위해 노력하지 않으면 이명박 정부는 역사와 국민 앞에 실패한 정부로, 한나라당은 국민에게 버림 받은 정당으로 기록될 것입니다. 그 책임은 대통령은 물론 저희들을 포함한 한나라당 의원들 모두가 지게 될 것입니다. 이것은 역사와 국민 앞에 죄를 짓는 것입니다. 저희들은 이것이 진정 두려운 것입니다.
이번이 국민이 허락한 마지막 기회입니다. 6·29선언과 천막당사로 벼랑 끝에서 회생한 역사를 상기해야 합니다. 지금이 그때와 다를 바 없습니다. 어쩌면 더 어려운 상황인지도 모르겠습니다. 대통령님의 과감한 결단으로 이명박 정부와 한나라당이 질적 변화의 물꼬를 활짝 열어가기를 바라는 간절한 마음에서 이 글을 올립니다.
‘나는 (빙판에 바퀴가 헛도는) 차를 몰고 가면서 깨우쳤다.
살다 보면 시련을 당할 때가 있다.
그럴 때는 잠시 호흡을 조절하며 속도를 멈출 필요가 있다는 것을...
돌이켜보면 나는 정말 바쁘게 살아왔다.
정말 누구보다도 열심히 살아왔다.
그러던 어느 날 누군가가 나의 발목을 잡았고 나는 좌절했다.
한때 나는 그를 원망하고 증오했다.
그러나 나를 넘어뜨린 자가 그 누군가가 아니라 바로 나 자신이라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서울시장 선거를 앞둔 2002년 새해 첫날에 대통령이 직접 쓴 ‘절망이라지만 나는 희망이 보인다’의 서문에 나오는 글입니다.
저희들 역시 스스로에 대한 반성에서 길을 찾겠습니다. 저희들의 첫 번째 잘못은 '쇄신파'라는 허울 좋은 이름만 얻은 채 국민의 입장에서 당과 정부의 실질적인 변화와 개혁을 이뤄내지 못했다는 것입니다. 18대 국회에 들어 4번에 걸쳐서 쇄신운동이 있었지만 병만 키운 채 이제껏 시간을 보내왔습니다. 이제 주저함도, 기득권에 연연함도 없이 국민들이 인정하는 수준까지 당과 정부가 변화할 수 있도록 혁신을 위한 노력을 멈추지 않을 것입니다.
둘째로 저희들 역시 국민들의 고통에 둔감하였고 국민들의 바람을 해결하는 데 게을렀습니다. 성장에도 불구하고 낙수 효과가 매우 부족한 채 양극화는 심화되고 중산층마저도 생활고에 시달리는 현실을 목도하면서 수출에 의한 성장 중심의 정책 기조를 바로잡지 못했습니다. 성장과 고용과 복지가 선순환 되는 경제로의 전환을 위한 노력이 부족했습니다.
셋째로 무상 급식 주민투표를 방치함으로써 사회 갈등의 조정자로서의 역할을 포기하고 국민 간의 갈등을 증폭시키는데 일조 했습니다. 재정 여건을 고려해 단계적 무상급식을 시행해야 한다는 당내 여론이 높았던 것이 사실입니다. 하지만 이 사안을 주민투표를 통해 해결하는 것은 전혀 다른 차원의 문제입니다. 민생과제가 산적한 상황에서 이러한 사안을 정치적 타협으로 해결하는 것이 아니라 주민투표에 부쳐 국민들 간의 갈등을 증폭시킨 것은 또 다른 방식의 국민의 고통에 대한 외면이고, 또 다른 형태의 밀어붙이기로 비춰질 수밖에 없습니다.
앞서 소개한 서문처럼 이명박 정부는 역대 어느 정부보다 바쁘게 일을 했고, 열심히 일했습니다. 많은 업적도 이뤘습니다. 그런데 언제부터인지 업적보다 더 큰 벽에 부딪혔습니다. ‘등 돌린 민심의 벽’입니다. 이제는 속도를 멈추고 호흡을 조절해야 합니다. 지금 민심이 등 돌린 이유가 야당이나 비판적 언론이나 SNS에 있지 않습니다. ‘오만’과 ‘불통’으로 상징되는 이명박 정부 자신과 ‘무감각’하고 ‘무기력’하고 ‘무책임’한 한나라당에 그 원인이 있다는 것을 성찰하고 반성하는 데서 우리 모두는 출발해야 합니다.
국민들은 한나라당과 이명박 정부를 구분해 평가하지 않습니다. 한나라당이 어려운 처지라 해서 이명박 정부와 차별을 시도해도 국민들은 다르게 보지 않습니다. 과거 김영삼 대통령도, 김대중 대통령도, 노무현 대통령도 모두 당의 요구로 탈당했지만 집권당이 국민의 심판을 피할 수는 없었습니다. 저희는 그 길로 가지 않겠습니다. 저희들은 이명박 정부의 공과 과를 함께 짊어지고 가겠습니다. 그래서 정부의 변화를 요청하는 것입니다. 국민들은 한나라당의 변화도 원하지만 그들의 삶에 더 직결돼 있는 정부의 변화를 더 고대하고 있습니다. 대한민국을 대표하고 여권 전체를 대표하는 대통령님의 사과와 국정 기조의 변화가 국민의 마음을 돌리는 첩경인 것입니다.
민심이 불신에 넘어 분노를 이른 것은 전세값, 물가, 실업, 사교육비 등의 생활고 때문만이 아닙니다. 이렇게 힘든 와중에 이명박 정부가 진정으로 국민들과 소통하고 국민들의 고통을 따듯하게 보듬어주는 국민의 편이 아니라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오히려 불공정하고 오만하고 독선적이며 심지어 부자와 대기업 편이라고 느끼기 때문에 분노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잘하고 있는데 국민이 오해하는 것이 많고, 홍보가 제대로 안되고, SNS 등 젊은이들의 뉴미디어를 좌파가 장악하고 있어서 그렇다는 식의 접근이 아직도 정부와 한나라당 내에 팽배해 있습니다. 단언코 저희들이 드리는 말씀은 진정한 성찰과 반성 그리고 확실한 변화에서 출발하지 않으면 민심은 분노를 넘어 체념의 상태에 이를 것입니다. 그래서 다음과 같이 대통령에게 요청드립니다.
먼저 국민들 가슴에 와 닿는 대통령의 사과가 있어야 합니다. '조그마한 허점이라도 남겨서는 안 된다'는 것을 강조하기 위해서 한 말이지만 측근 비리가 연이어 터져 나오는 상황에서 '도덕적으로 완벽한 정권'이라고 말한 것, 공정사회 구현을 외치면서 첫 번째 조각부터 3년 반이나 지난 지금까지 측근 낙하산 인사가 반복되는 것, 내곡동 사저 문제, '성장의 지표'가 아니라 '서민들의 민생고'에 눈높이를 맞추고 더 적극적으로 국민들의 고통을 헤아리지 못한 것 등에 대한 진정성 있는 대국민사과가 있어야 합니다.
둘째로 747공약의 폐기를 선언하고, 성장지표 중심의 정책기조를 성장과 고용과 복지가 선순환하는 균형 있고 안정된 국정기조로 전환해야 합니다. 동시에 대기업의 무절제한 시장 확장과 불공정 거래를 엄단하고 830만에 달하는 비정규직 문제에 대한 과감한 해결책을 제시해야 합니다. 이는 예산의 문제가 아니라 정부의 의지의 문제입니다.
셋째로 인사 쇄신을 해야 합니다. 권력은 나눌수록 커집니다. 남은 재임 기간 회전문 측근 인사를 하지 않을 것임을 약속하고 인사권한을 청와대가 독점하는 구조를 개선하는 차원에서 법률에 따라 국무위원들이 제청권을 실질적으로 행사할 수 있도록 해야 합니다. 아울러 직언할 자신이 없는 청와대 참모진은 스스로 물러나도록 해야 합니다. 이미 임명된 인사 중에도 자질이나 도덕성 특히 국민의 정서에 반하는 경력이 있거나 언행을 한 인사는 과감히 교체해야 합니다.
넷째로 권위주의 시대로의 회귀라고 오해받을 수 있는 이명박 정부의 실정을 바로 잡아야 합니다. 대한민국에 대한 공격과 음해는 단호히 대응해야 합니다만 이명박 정부에 대한 비판에 대해서는 법이 허용하는 한 관용해야 합니다. 웃자고 한 '풍자'마저도 법의 잣대를 들이대 처벌하고자 하는, 표현의 자유를 억압하는 정부로 비춰져서는 젊은 세대와 소통할 수 없습니다. 비판적 방송인의 연이은 퇴출, 해마다 발생하는 민간인 사찰 등에 대해서는 엄중한 조사와 책임자에 대한 문책이 있어야 합니다.
마지막으로 정부의 잘못이나 측근들의 비리에 대해 숨김이 없이 명명백백하게 신속하게 처리할 것을 재차 지시해야 합니다. 국민은 검찰을 신뢰하지 않습니다. 권력에는 약하고 약자에게는 강하다는 것이 검찰에 대한 국민의 생각입니다. 검찰에 대한 불신이 이명박 정부가 불신을 받는데 적지 않은 기여를 했습니다. 특히 사회적 약자일수록 공정치 못한 검찰권의 행사에 대한 불만이 매우 높습니다. 검찰 개혁은 최고의 권력기관인 청와대만이 할 수 있습니다.
아울러 대통령이 조금 더 국회를 존중해 줄 것을 요청합니다. 우리 국회는 참으로 문제가 심각합니다. 가장 개혁돼야 할 곳이 국회입니다. 그러나 행정부 역시 국회가 극한 대립과 갈등을 지속하는 데 기여한 일이 없는지 살펴봐야 합니다. 이번 한·미FTA(자유무역협정)의 원만한 비준을 위해 대통령이 더 열심히 정치를 해야 합니다. 비효율적임이 분명하고 시간이 많이 소요되더라도 대화와 타협의 선진 의회로 가기 위한 비용으로 생각하고 의회 정치 복원을 위해 정부도 적극적인 협력을 해야 합니다. 특히 소수당을 포함해 야댱과의 협력에 더 많은 노력을 기울여야 합니다.
"모든 일은 위에 있는 사람이 비록 옳다고 말 할지라도, 아래 있는 사람이 마음속으로 그른 것을 알면, 진언(進言)하여 숨김이 없어야 마땅하다."세종대왕이 승하하기 2년 전인 세종 31년 3월에 하교한 말씀입니다. 저희들은 한나라당의 근본적인 혁신을 위해 최선을 다할 것입니다. 당의 혁신을 추진함에 있어서 저희들은 기득권에 전혀 연연하지 않을 것입니다. 이번이 국민들이 저희들에게 허락한 마지막 기회라고 생각합니다. 그러하기에 대통령의 과감한 결단을 요청하는 것입니다. 불편한 글인지는 잘 압니다만 청와대와 국민, 한나라당과 국민사이를 가로 막고 있는 문의 빗장을 여는 것이 당과 국정을 쇄신하는 출발점이기에 진솔한 저희들의 생각을 담았습니다. 저희들의 충정을 너그럽게 받아주십시오.
죄송하고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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