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학을 읽는 여자’‘1조7000억달러를 거머쥔 여장부’‘남자 못지 않은 승부욕의 워커홀릭’
메리 어도스 JP모간에셋매니지먼트 최고경영자(CEO)를 설명하는 말들이다.
어도스 CEO는 ‘워커홀릭’에 ‘불타는 경쟁심’으로 남성들이 주류를 이루는 월가에서 살아남았다.
1967년생인 어도스는 34세에 포브스가 뽑은 ‘40대 미만 젊은 경영인(40 under Forty)’에 이름을 올렸다.
2010년에는 포춘이 선정한 ‘가장 영향력 있는 여성 50’에 뽑혔다.
어도스는 모회사인 JP모간체이스의 제이미 다이먼 CEO의 유력한 후계자로 떠오를 정도로 능력을 인정받고 있다.
어도스가 월가에서 성공할 수 있었던 가장 큰 힘은 수학에 대한 열정이었다.
어도스는 6살에 할머니로부터 개인수표 사용 방법을 배웠을 정도로 수학에 일찍 눈을 떴다.
조지타운대학교에서 수학을 전공한 어도스는 대학 시절 유일한 수학 전공 여학생으로 통했다.
어도스는 시카고 투자기관 스타인로앤드판햄(Stein Roe&Farnham)에서 사회생활을 시작했다.
경쟁심이 남달랐던 어도스는 1988년 애널리스트로 일하면서 투자에 대한 안목을 키웠다.
그는 이후 하버드대학교에서 경영석사(MBA) 과정을 마쳤다.
어도스는 은행 지주사 뱅커스트러스트(BT)에서 기업재무를 담당한 뒤 1996년 JP모간체이스에 합류, 프라이빗뱅킹 부문에서 국채 포트폴리오 업무를 맡았다.
메리는 1998년 여름 JP모간의 고객에게 상당한 규모의 손실을 냈지만 고객에게 사실을 고백하고 원만히 해결하면서 오히려 회사의 신임을 얻는 계기가 됐다.
어도스는 JP모간체이스의 세가지 핵심사업의 CEO 자리에 잇따라 올랐다.
그는 2005년 JP모간 프라이빗뱅킹부문 CEO에 임명됐으며 이후 글로벌자산관리부문 회장 겸 CEO로 초고속 승진을 거듭한다.
JP모간 임원진은 당시 CEO라는 큰 역할을 두 아이의 엄마인 어도스에게 맡기는 것에 대해 탐탁지 않게 생각했지만 어도스는 특유의 당당함으로 이를 극복했다.
그가 당시 “두 아이의 아버지라면 어떻게 그러한 큰 일을 해낼지 상상이 안된다”고 말한 것은 JP모간체이스에서 유명한 일화로 남아있다.
어도스의 강력한 리더십에 힘입어 프라이빗뱅킹 사업의 고객은 1년에 15% 증가세를 나타냈다. 자산은 2380억달러 규모로 성장했다.
그는 2009년 JP모간에셋매니지먼트 CEO로 자리를 옮겼으며 이 때는 아무도 어도스의 능력에 의문을 가지지 않았다.
어도스가 CEO가 된 첫 해에 JP모간에셋매니지먼트의 순익을 17억달러로 전년 대비 20% 끌어 올리는 눈부신 성과를 이룩했다.
어도스는 “자산운용 전문업체 블랙록과 세계 최대 헤지펀드 핌코와의 경쟁이 지금의 JP모간에셋매니지먼트를 있게 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