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밑을 며칠 앞두고 가진 본지와의 인터뷰에서 ‘영화 속 무 존재감이 돋보였다’는 질문에 이정진은 오히려 만족스러워했다. 존재감이 없는 무 존재감이 만족스럽단다. 그런데 이게 그가 이번 영화에서 그리고픈 자신의 모습이었다. 이정진은 “항상 동적인 역할만 해왔었다. 그런데 이번은 정말 다르더라”면서 “조그만 라디오 스튜디오에서 뭘 하겠나. 그냥 손만 올리고 손 내리고, 일어났다 앉았다가…그게 전부였으니 말이다”면서 웃었다.
하지만 그 서포터 역할도 쉽지는 않았을 터. 연출을 맡은 권칠인 감독은 충무로에서 알아주는 ‘방임파’ 감독이다. 출연 배우들에게 별다른 디렉션을 주지 않는 것으로 유명하다. 때문에 촬영 내내 난감함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고 한다. 이정진은 “촬영 전 감독님이 ‘어떻게 할꺼냐’고 물어보신다. 그럼 나와 이민정은 ‘우리 뭐하지?’ 이럴 정도였다”면서 “자연스럽게 애드리브가 많아졌다. 정말 당황스러운 건 권 감독님이 ‘컷’도 잘 안하신다는 점이다”며 촬영 당시를 설명하며 난처해했다.
그럼에도 이정진은 이번 영화에서 정말 자신의 존재감을 영화 속에 철저히 녹여 냈다. 훤칠한 키에 잘생긴 외모는 한때 출연했던 KBS ‘남자의 자격’에서 얻은 ‘비덩’(비주얼 덩어리) 그 자체였다. 하지만 영화 속 그가 맡은 이재혁 PD는 옆집 오빠 정도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니었다. 그래서 너무 좋았다. 힘이 아닌 분위기 속에 자신을 녹여내는 법을 이제야 익힌 듯 했다.
그는 “자꾸 존재감이 없어 보인다고 하니 조금 화도 날려고 한다 (웃음). 하지만 칭찬인 줄 알기에 너무 기분이 좋다”면서 “당초 촬영 전에는 좀더 망가지려 했다”고 귀띔했다.
이정진은 “감독님이 생각하신 이재혁PD는 목이 늘어난 박스 티에 후줄근한 청바지 입은 모습이었다”면서 “내가 ‘홍상수 감독님처럼 리얼리티로 가면 괜찮지만 이건 상업영화에요 감독님’이라며 정말 간곡히 부탁드렸다”고 말했다. 그렇다면 실제 라디오PD들이 그렇게 후줄근할까. 그는 “요즘 PD들 중 정장은 ‘징계위원회’ 갈 때나 입지 않나요”라며 웃었다.
하지만 영화 속 이재혁PD의 세레나데는 신진아(이민정)에 대한 마음을 전하는 데 더 없이 적절했다. 두 사람의 실제 연애까지 기대해도 좋을 정도였다. 한 마디로 정말 잘 어울리는 한 쌍이다. 넌지시 이정진에게 물었다. 이민정과의 연애가 가능할까. 이정진은 “‘여신’과 부담되서 만나겠나. 지금 생각해도 부담 백배다”며 손사래를 친다.
현재 솔로인 그는 연예계 알아주는 마당발이다. 연말과 연초까지는 영화 ‘원더풀 라디오’ 홍보 활동에만 전념한 채 자신만의 시간을 즐길 계획이란다. 아마도 박진영과 함께 그 시간을 즐길지 모른다고 귀띔했다. 이정진은 “박진영은 24시간 언제라도 전화 한통이면 달려나온다. 그 만큼 친하다”면서 “요즘엔 혼자 구준엽-심태윤이 운영하는 양꼬치집에 자주 들린다. 양꼬치맛이 그만이다. 이곳 강추다”며 손가락을 추켜세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