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간 이들은 거의 칩거에 가깝게 드러나지 않게 활동해 왔으며 정태춘은 사실상 절필하고 언론과의 접촉도 끊었다.
특별히 2009년에 '정태춘 박은옥 30주년 기념 콘서트'와 중견 미술인들이 마련한 '정태춘 박은옥 30주년 기념 헌정 전시회'가 있었고 이 자리를 통해 잠시 얼굴을 비췄다.
정태춘은 2010년 하반기 다시 집중적으로 새 노래들을 썼고 2011년 여름과 가을에 녹음 작업을 끝냈다.
그는 앨범 가사집 '후기'에서 "지난 30여 년을 함께 해 준 아내 박은옥을 위해 다시 노래를 만들게 됐다"며 "새 앨범을 너무나 오랫동안 기다려 준 감사한 벗들을 생각하며 녹음 작업을 했다"고 전했다.
이 앨범은 이들이 다시 적극적인 발언과 활동을 도모하기 위해 대중들에게 던지는 새로운 화두의 '노래 모음'이라기보다 이들 부부가 거의 사적으로 주고 받는 다소 우울하지만 담담한 대화로서의 시집의 분위기를 띈다.
가사들은 주로 '물'과 관련하고 있다. 인적없는 바다, 강의 풍경이 거의 수록곡 전편에 등장하며, 시적인 서사법이나 운율들은 저 칩거 기간 초기에 발표한 시집 '노독일처(2004년 실천문학)'의 연장선에 있어 보인다.
단지 그 분노와 직설을 버리고 다시 관조와 서정, 새로운 그리움의 어법으로 가사로서만 보자면 정태춘은 지금 여기 우리들의 현실 안이 있지 않고 벌써 어느 먼 물 가로 떠나 있다.
가사 안에 직접 등장하지는 않지만 이 앨범에는 5명의 이들 부부의 지인들이 등장한다. 시인 박남준과 이원규와 백무산 그리고 소설가 박민규와 사진가 김홍희다.
이들은 지난 10년 사이에 그와 더욱 가까워진 사람들이고 그에게 새로운 노래들의 주인공이 되어주거나 새 노래들을 만들라고 그의 창작 충동을 흔들어 주었던 사람들이다.
수록곡들의 멜로디 라인은 기존의 서정성에서 조금 더 차가워지고 더 가라앉았다. 편곡은 정태춘이 직접 로직 프로그램을 통해 더 청량하고 여백 많은 소리들을 찾아 구성하고 변주했으며 그 중심에는 여전히 어쿠스틱 기타 핑거링이 자리함으로서 그 자신 또는, 한국 포크 가요의 전통적인 맥을 이어가고 있음을 알린다.
연주는 '정박'의 오랜 밴드 연주자들이 주로 맡았고 특별한 일부 음원은 시퀀싱 프로그램의 것들이 동원되었다.
박은옥은 3곡의 신곡으로 다시 그만의 특별한 색조인 투명한 페이소스로서 얼마간은 몽환적인 풍경과 정황 들을 애잔하게 그려내면서 이 앨범 전체에 깔린 '그리움'의 토대를 만들고 있으며 정태춘은 오히려 그 안에서 5곡의 새 노래들 속에 각기 다른 풍경과 정황들을 제시한다. 더 무겁게 절망하거나 떠나가나 뒤돌아보거나.
노래 가사는 문학이 아니라지만 새 노래 가사들은 더 문학에 가까워졌고, 음악은 시가 아니라지만 새 앨범은 시집에 더 가까이까지 왔다.
정태춘은 이번 앨범에서 작사 작곡과 편곡 (박은옥의 노래 2곡은 '정박'의 오랜 밴드 동료 박만희가 편곡) 외에도 처음으로 얼후('눈 먼 사내의 화원')와 일렉 기타('서울역 이씨')의 연주, 앨범 쟈켓과 가사지 안의 8장의 사진도 선보인다.
'날자, 오리배...'에서는 가까운 동료들인 강산에, 김C, 윤도현이 독특한 코러스로 함께 참여하였다.
또 이 앨범에는 지난 1993년에 발표했던 '92년 장마, 종로에서'를 더 차분해진 편곡으로 부부가 다시 불러 '헌정 트랙'으로 올려 놓았다.
'정박'과 그들의 소속사 다음기획은 오는 3월 초 앨범 발매 기념 콘서트를 준비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