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남편은 외국인…” 이젠 당당하고 싶다

입력 2012-02-03 10: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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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다문화 코리아속 소외되는 한국 여성들

# 김희수(28·가명)씨는 미국인 남자친구와 1년 넘게 교제했지만 결국 이별을 선언했다. 그녀와 외국인 남자친구 W는 한국인 커플처럼 배려하고 아끼는 관계였다. 다만 주변 시선이 희수씨를 괴롭혔다.

예쁘게 연애를 하고 있어 당당하다는 생각에 남자친구를 공개한 것이 화근이었다. 종종 주변에서 ‘어떻게 말이 안 통하는데 사귈 수 있지?’라며 의문을 표하기도 했다. 그럴 땐 ‘말이 통하니까 사귀는거지’라고 대꾸했다.

혹자는 남자친구와의 ‘잠자리’가 어떠냐고 묻기도 했다. 희수씨는 자신을 쉬운 여자처럼 보는 시선을 견디지 못하고 끝내 남자친구와 헤어졌다.

# 정민정(29·가명)씨는 화교 출신 태국인과 결혼했다. 유학 중 만난 그들은 장거리 연애를 하며 돈독한 애정을 쌓았다. 결혼을 결심하고 고민끝에 민정씨가 태국으로 옮겨 가정을 만들기로 했다.

좋은 교육을 받고 잘 생기고 능력 있는 남편이지만 한국에서 그는 한국보다 못 사는 나라에서 온 ‘태국인’으로 인식될 뿐이었다. 국제 결혼을 했지만 그의 남편이 결혼이민자나 한국 국적을 취득한 가족이 아니면 정부의 다문화가정 지원 등을 받지도 못한다.

여성부 통계 자료에 따르면 한국 남성과 외국인 여성과의 결혼은 2011년 기준으로 2만6274건에 달한다. 한국 여성과 외국인 남성과의 결혼 건수는 7961건이다.

세계화로 국제 결혼 및 외국인과의 교제가 긍정적으로 바뀌었지만 여성들은 외국인 남자친구를 공개하기 꺼려한다. 여전히 사회적 편견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다문화가정 시대에 외국인 남편과 살거나 외국인 남자친구가 있는 여성들이 유독 한국 여성에게 국제 교제가 어려운 이유에 대해 입을 열었다.

◇ 양공주, 그리고 문란한 여성이라는 낙인 = 한국 사회가 외국인과 교제하는 여자들을 유독 불편하게 보는 시선은 역사적 배경에 기인한다. 6~70년대 미군기지에서 성노동을 하는 여성들은 양공주라 불리며 손가락질을 받았다. 이들이 미군과 결혼해 낳은 혼혈 아이는 ‘튀기’라 불렸다. 양공주와 튀기는 해방 후 한국 사회의 첫 다문화 가정을 상징한다. 이 때문에 국제 결혼에 대한 부정적 인식이 보편화 됐다.

김희수씨가 교제를 그만 둔 이유도 바로 시선 때문이었다. 외국인과 교제하는 여자를 보는 시선은 생각보다 폭력적이고 편협하다. 한국인 남자친구를 사귈 때 어느 누구도 묻지 않았던 성관계와 관련된 질문이 그녀에게는 조심스럽게, 지속적으로 제기됐다. 이런 질문과 시선을 받은 경험은 비단 희수씨뿐만이 아니다. 심지어 포털사이트의 댓글이나 게시글에서도 외국인과 사귀는 여성에 대한 혐오글을 쉽게 읽을 수 있다.

◇순혈주의…부모반대 = 중국계 캐나다인과 결혼한 A양은 교제 당시 부모님이 지금의 남편을 만나주지도 않았다. 꽤 오래 사귀고 남자친구가 끈질기게 청혼을 하자 부모에게 허락받았다.

순혈주의 성격이 여전히 강한 한국에서 외국인 남자친구와 교제하는 여성은 낙인이 찍힌다. 딸이 외국인과 사귄다고 하면 ‘죽어도 안 된다’며 반대하는 부모들의 생각도 이런 연장선에 놓여있다.

한국인의 피가 흐르지 않는 외국인 남성의 경우 한국사회에서 철저히 비주류로 남게 된다. 민정씨가 한국을 떠나 태국에서 정착하려는 이유는 남자친구에게 가해지는 차별을 직접 목격했기 때문이다. 완벽한 영어 구사력, 중국어, 태국어, 한국어가 가능한 남자친구는 일자리를 구하지 못했다. 태국인이라는 이유로 불친절함을 경험한 적도 있다고 민정씨는 조심스럽게 말했다.

◇문화갈등…한국화 될 수 있는가? = 산업대에서 영어를 가르치는 B씨(41)는 한국인 여성과 결혼했다. 그는 “한국에서 부인과 사귈 당시 한국인들을 만날 때 한국문화를 강요하는 느낌을 받았다”고 고백했다.

미국에서는 오징어를 거의 먹지 않고 멸치처럼 생선 머리가 그대로 나오는 요리가 없다. 한국에서 식사할 때 종종 이런 문화 차이를 배려하지 않고 무조건 몸에 좋고 맛있다는 식으로 낯선 음식을 먹도록 강요를 받을 때 힘들었다고 토로했다.

B씨는 사랑하는 사람의 조국인 한국 문화에 대해 적극적으로 배우고 경험할 생각이었다. 그러나 미국인인 자신의 취향, 문화적 감수성과 한국의 것을 양자택일하라는 식의 강요를 받을 때는 곤혹스럽다.

외국인 남자친구를 둔 한국 여성들은 이런 문화갈등 앞에 속수무책이다. 싫어하는 것을 강요할 수도 없고 그렇다고 남자친구를 옹호하자니 한국인의 정체성을 운운하는 평가가 귀에 거슬린다.

◇외국인과의 교제·결혼의 주체는 ‘한국남성’ = 외국인과 교제하는 여성들이 받는 편견들-문란한 여자라는 낙인, 순혈주의적 태도, 한국문화에의 순종 등-은 일종의 폭력인 셈이다.

문제는 이런 부당한 시선이 사회 전반에 뿌리깊게 박혀있다는 점이다. ‘결혼 이민자나 한국 국적을 취득한 가족’을 다문화가족으로 정의하는 다문화가족지원법만 봐도 알 수 있다. 물론 여기에 한국 여성과 결혼한 외국인 한국 주재원 등은 포함되지 않는다.

편견으로부터 쏟아지는 시선의 폭력. 희수씨가 사랑하는 사람과 이별하고 민정씨가 외국인 남편과 함께 한국을 떠나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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