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미 자유무역협정(FTA)의 폐기와 재협상을 요구해 온 민주당의 고민이 깊어졌다. 한미FTA가 4·11 총선 이슈로 부상하면서 관심이 높아진 가운데 예상과 달리 부정적 여론이 확산되고 있기 때문이다.
민주당의 한미FTA 폐기와 재협상 요구는 당초 한미FTA에 비판적인 2030세대와 대표적 피해지역인 농촌 지역의 표, 그리고 야권의 결집을 위한 것이었다. 하지만 민주당이 미국 측에 요구한 10가지 재협상 요구 항목 중 9개가 이미 2007년 노무현 정부 때 체결한 한미FTA에 포함되어 있는 것으로 드러나면서 비판이 일고 있다. 특히 당시 총리였던 민주당 한명숙 대표를 비롯한 주요 인사들의 말바꾸기 논란까지 더하며 궁지에 몰렸다.
이에 따라 민주당은 총선 전까지 한미FTA를 어떤 방향으로 몰아갈지 대응책 마련에 고심을 거듭하고 있다. 한미FTA의 폐기까지 주장한 마당에 갑자기 ‘없던 일로’ 할 수는 없기에 발언 수위를 조정하자는 의견이 다수 제안된 것으로 알려졌다.
현재 당내에선 한미FTA 폐기 주장에 대해 “너무 앞서 나갔다”는 문제제기와 함께 한 대표의 처신을 비난하는 목소리 또한 높아지고 있다.
당의 한 고위관계자는 16일 기자와의 통화에서 “19대 국회에서 한미FTA 폐기안을 제출한다던가 정권교체를 통해 폐기시키겠다는 등의 발언은 나가도 너무 나갔다”며 “한미FTA 재협상을 요구하는 서한을 보낸 것에 대해서도 당내에서 말이 많다”고 불만을 표시했다.
이 관계자는 “민주당에 대한 반감을 줄이면서도 한미FTA의 잘못된 부분을 차분히 지적해 나가는 전략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실제 한 고위당직자는 최근 기자들과 사석에서 만나 “한미FTA 폐기를 주장하는 건 총선에서 이득보다 실이 많을 것”이라고 했다. 이용섭 정책위의장도 비슷한 주장을 한 바 있다.
전문가들도 한미FTA 폐기 요구가 총선에서 민주당에 부정적으로 작용할 가능성이 높을 것으로 내다봤다.
강규형 명지대 교수는 “한미FTA는 양날의 칼”이라며 “민주당이 선거구도로 반FTA 프레임을 내세우는데 궁극적으로 표가 될지 모르겠다. 극렬세력을 끌어안아야 하는데 (FTA 반대 여론이 높은 곳은) 농촌 빼고는 없다”고 말했다.
성민섭 숙명여대 교수는 “한미FTA를 일방적으로 파기할 수는 있겠지만, 그렇게 되면 앞으로 누가 국가 간 체결을 하겠느냐”며 “이는 엄청난 파장을 몰고 올 것이며 국가 간 암묵적 강제력을 고려할 때 매우 위험한 생각”이라고 밝혔다.
이런 가운데 오는 3월 한미FTA가 발효되면 폐기를 주장했던 민주당의 주장에 대한 심판론이 작용해 여론이 더 크게 출렁일 것이란 관측도 제기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