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사법부의 오만

입력 2012-02-21 10: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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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승연 한화그룹 회장의 선고공판이 돌연 연기됐다. 연기가 아니라 선고 재판이 취소되고 종결됐던 변론이 재개되는 등 사실상 재판이 원점으로 되돌아갔다. 오랜 검찰 조사 및 재판 과정으로 회사 경영에 차질을 빚었던 한화그룹은 처음부터 다시 재판을 받게 된 셈이다. 이로 인해 김 회장과 한화그룹 임직원들이 감내해야 할 정신적, 물질적 피해는 전혀 고려되지 않았다.

이번 선고공판 연기는 그동안 한화의 재판을 맡았던 서울서부지법 형사 제12부 한병의 부장판사가 오는 27일자로 인천지법으로 이동함에 따라 이뤄졌다. 서부지법 측은 “공소장이 무려 100페이지, 기록이 5만페이지로 사건이 복잡하고, 기록이 방대해 충실한 결론을 위해서는 추가 심리가 필요하다고 판단됐다”고 연기 이유를 설명했다.

법원이 검토시간이 부족하다는 이유로 사건 전부를 다음 재판부로 미룬 꼴이다. 그러나 법조계에서 조차 피고인이 아닌, 재판부가 자체 사정으로 재판을 연기하는 경우는 드물다며 의아해하고 있다.

어떻든 새 재판부는 변론 재개에 따라 심문 절차 등을 다시 거쳐야 하기 때문에 선고까지는 최소 6개월 이상이 더 걸리게 됐다. 지난해 1월부터 시작된 재판이 앞으로 얼마나 더 길어질 지 아무도 예상치 못하는 황당한 상황이 됐다.

아무리 선고기일 이전에 인사이동이 있다고 해도 자신이 맡은 사건에 대해선 책임을 지고 결론을 내는 것이 옳다. 이번 선고 연기가 사법부의 직무유기는 아니라고 하더라도 피고인의 인권은 철저히 무시됐다.

한화그룹은 오는 23일 예정된 선고공판 기일에 맞춰 모든 준비까지 마친 상태였던 것으로 알려졌다. 재판 연기로 한화그룹의 경영이 또 다시 차질이 불가피해진 것이다.

영화 ’부러진 화살’이 내용이 사회적 이슈가 될 수 있었던 것은 내용의 사실 여부 보다는 법원의 오만한 태도가 이유가 됐음을 사법부는 깨달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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