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즐거운 일터]멀다 멀어, 회사로 가는 '고행의 길'

입력 2012-02-22 17: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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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시간은 기본, 두시간 세시간…장거리 출·퇴근에 신음하는 직장인

서울 은평구 갈현동에 사는 직장인 김지현(27)씨는 출근을 위해 매일 아침 7시 집에서 나와 서울역으로 향한다. 김 씨의 근무처는 질병관리본부 내 유전체관리센터. 질병관리본부는 지난 2010년 충북 청원군 오송보건의료행정타운으로 이전했다. 이전 초기에는 센터에서 운영하던 셔틀버스를 탔지만 체력적 한계로 1년 전 부터는 KTX를 이용해 출퇴근하고 있다.

출근시간에 맞추기 위해 김씨는 오전 8시 KTX 113호 열차를 탄다. 가끔 지하철이 늦거나 공항철도 내부 엘리베이터를 놓칠 경우 ‘피 맛이 날 정도’로 뜀박질을 해야 한다.

출근도 하기 전에 이미 녹초가 되버리는 김씨. 김씨는 “처음에는 출·퇴근 시간을 이용해 책도 읽고 자기개발을 하려고 마음먹었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하지만 매일 왕복 4시간의 출퇴근길을 경험하다보니 자기개발은 불가능할 뿐더러 앉을 자리가 없어 서서 오는 경우가 다반사”라고 하소연했다.

정부 부처 및 각 기업들이 지방으로 이전하는 경우가 늘어나면서 이른바 ‘장거리 출·퇴근족’이 급증하고 있다. 그들은 출·퇴근하면서 낭비하는 아까운 시간과 고갈되는 체력에 신음하고 있다. 하지만 집값 등 경제적 요인과 재취업의 압박에 쉽사리 회사를 그만두지 못하고 오늘도 지친 몸을 이끌고 기차역과 버스터미널로 향하고 있다.

◇장거리 출·퇴근족 증가…‘힘들고 괴로워도 참고 간다’= 통계청이 지난해 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우리나라의 통근·통학 평균 소요시간은 32.9분인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지난 2005년 조사결과인 30.6분 보다 2.3분 더 길어진 것이다. 서울의 경우에도 2010년 통근·통학 평균 소요시간은 41.2분으로 2005년 38.5분보다 2.7분 길어졌다.

정확한 장거리 출퇴근 직장인 수는 파악하기 어렵지만 KTX정기승차권의 구매인원의 증가 비율을 통해 대략 짐작할 수 있다. 코레일에 따르면 KTX 정기승차권 월평균 이용자 수는 2007년 2755명에서 지난해에는 6000여명으로 늘어난 것으로 나타났다. 4년 사이에 2배 이상 증가한 것이다.

김지현 씨는 30일(주말 및 휴일 제외)동안 승차가 가능한 KTX정기권을 매달 구입한다. 구매하는 시기와 주말의 일수에 따라 다르지만 평균 정기권 구입에 매달 35만~37만원을 지출한다.

교통비도 아깝지만 문제는 또 있다. 자유석만 사용할 수 있는 정기권의 특성 상 빈자리가 없을 경우 통로에 앉거나 서서 와야 된다는 것이다. 1~3량 정도의 자유석 차량이 마련돼 있긴 하지만 이 좌석도 일반석과 동일하게 판매되고 있다.

특히 월요일 오전과 금요일 저녁시간에는 승객들이 몰려 서울까지 오는 약 45~50분 동안 서서 오는 경우가 다반사다. 김 씨는 “사람이 몰리는 걸 알면 배차를 늘리거나 가격을 좀 더 내려줘야 되는데 가격은 오히려 오르고 열차가 제 시간에 도착하는 경우도 거의 없다”고 하소연했다.

경제적인 요인도 장거리 출·퇴근족 증가를 부채질 하고 있다. 특히 비싼 집값과 물가의 차이 탓에 ‘울며 겨자 먹기’로 장거리 출퇴근을 선택하는 직장인도 심심치 않게 찾을 수 있다.

모 방송국에서 작가로 근무하는 A씨(29)는 얼마 전 직장이 있는 서울에서 본가가 위치한 청주로 거처를 옮겼다. 월급 만으로 월세와 생활비를 감당하기 어렵다는 판단 때문이다. 아직 신입인 A씨가 매달 받는 월급은 대략 120만~130만원 정도. 월세 45만원과 각종 공과금을 내고나면 생활하기도 빠듯하다.

이런 이유로 A씨는 장거리 출·퇴근족을 선택했다. 청주 시외버스터미널에서 매일 아침 6시30분 남서울행 버스를 타는 A씨가 하루 동안 출퇴근에 사용하는 교통비는 1만6000원 정도. 왕복 3~4시간의 고된 출근길이지만 A씨는 차라리 마음이 편하다고 말한다. 불안정한 직장과 많지 않은 월급이지만 그나마 매달 조금씩 늘어나는 통장의 잔액을 눈으로 확인할 수 있기 때문이다.

A씨는 “하루 12시간 넘게 택시를 몰면서 나를 키워주신 아버지를 생각하면 3~4시간의 출근길은 아무것도 아니다”라고 말했다. 이어 “지금은 힘들어도 열심히 일해서 부모님을 모시고 꼭 서울에 살면서 편하게 출·퇴근 할 그 날을 위해 열심히 일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피할 수 없으면 즐겨라…‘자기개발에 적극 활용’= 이처럼 ‘장거리 출·퇴근족’이라는 명함은 직장인들에게 결코 달갑지 않다. 하지만 이 시간을 자기개발에 사용하는 직장인들도 있다. 남들보다 1~2시간 하루를 먼저 시작한다는 자기만족이 크기 때문이다.

모 기업 수원 지사에서 일하는 박유은(26)씨의 집은 분당 미금역 근처다. 버스와 지하철을 이용해 출근하는 박 씨는 평균 1시간30분을 출·퇴근에 소비하고 있다.

박 씨는 이 시간을 알차게 활용하기 위해 전화영어를 신청, 5개월째 이용하고 있다. 버스에 탄 뒤 약 15분여 동안 전날 배운 표현을 복습하고 전화가 오면 약 10분간 원어민 강사에게 수업을 듣는다. 이후 5분간 간단하게 복습을 하고 팝송과 영어뉴스를 듣다보면 어느새 버스는 수원에 도착한다.

박 씨처럼 영어공부를 하는 직장인 외에도 독서를 하거나 미리 회사업무를 준비하는 등 효율적인 시간관리를 통해 자신을 한 단계 업그레이드 시키는 장거리 출퇴근족도 찾을 수 있다.

박씨는 “취업준비 과정에서 토익공부를 한 이후 영어에 소홀했던 게 사실이었다”며 “출·퇴근시 짧은 시간이나마 영어공부에 투자하니 자신감도 생기고 영어가 필요한 업무에도 적극 참여하게 됐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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