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관팀, 법률 분쟁 외부인력 활용 "내 식구 아니더라도 로펌이 있다"

입력 2012-03-05 08: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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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직 제한 공직자윤리법 시행, 고위 공직자들 잇단 로펌행…정부·기업 연결 또하나의 통로

▲대형 담합사건이 발생하면 대기업 대관팀은 과징금을 조금이라도 줄이기 위해 로펌으로 달려간다. 로펌이 고객인 대기업과 정부기관 사이에 연결고리 역할을 해준다는 얘기다.(사진=노진환 기자)
공정거래위원회의 담합 조사가 시작되면 대기업 대관업무를 담당하는 직원은 가장 먼저 대형 법무법인(로펌)으로 달려간다. 공정위 출신 퇴직자들을 보유한 로펌을 통해 리니언시 정보를 얻기 위해서다. 리니언시(자진신고감면제)는 다른 기업보다 가장 먼저 담합 혐의를 인정한 기업에 과징금 전체를, 두 번째로 인정한 기업에는 절반을 면제해주는 제도다. 대형 담합 사건의 경우 과징금이 수천억원에 달하는데, 리니언시를 잘 활용하면 한 푼도 안 내도 된다.

로펌들이 억대의 연봉을 주며 앞다퉈 공정위 출신을 영입하는 이유이자, 대기업들이 로펌으로 달려가는 이유이기도 하다.

대기업들이 자체 대관팀을 운영하면서도 로펌 등 공식적인 창구를 이용하는 것은 그만큼 효과가 빠르기 때문이다.

◇고위 공직자의 로펌행 러시= 국회는 지난해 말 공직자윤리법을 개정했다. 이에 따라 외형거래액 150억원을 넘는 국내 로펌, 회계법인, 외국법자문법률사무소(외국계 로펌) 등에는 고위 공직자가 퇴직 후 2년간 과거 업무와 관련된 역할을 하지 못하도록 하고 있다.

이같은 점을 피하기 위해서 인지 지난해 10월 개정된 공직자윤리법 시행을 앞두고 고위 공직자들이 잇따라 로펌으로 이동했다.

지난해 초 김앤장으로 이동하려다 비난여론을 의식해 유보했던 이정의 전 금감원 자본시장 1국장은 같은 해 9월 법무법인 정률로 재취업했다.

보건복지부에서 사회복지정책실장, 기획관리실장 등을 역임한 문경태 씨는 지난해 5월 법무법인 세종의 고문으로 이동했다. 조홍희 전 서울지방국세청장과 이효연 전 국무총리실 조세심판원 상임심판관은 각각 지난해 6월과 10월 법무법인 태평양의 고문으로 자리를 옮겼다. 김규석 전 서울세관 외환조사과장, 박남규 전 금감원 일반은행 검사국 팀장은 지난해 10월 태평양의 전문위원으로 재취업했다.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경실련)이 지난해 5월 공개한 국내 6대 로펌의 퇴직공직자 취업현황 분석을 보면, 이들 로펌에 고문 등의 이름으로 속해 있는 전문인력은 모두 96명이다. 김앤장이 28명으로 가장 많았고, 율촌이 27명, 태평양이 14명, 세종과 광장이 각각 10명, 화우가 7명이었다.

출신기관 별로 보면, 공정위가 19명으로 가장 많았다. 이어 금감원과 금융위원회가 18명, 국세청과 관세청 출신이 16명이다. 전체 전문인력의 절반 이상이 사실상 ‘경제검찰’ 역할을 해온 이들 기관 출신 인사들인 셈이다. 지난해 10월 공직자윤리법 개정을 앞두고 이들 로펌에 더 많은 공직자가 영입됐다는 점을 보면 현재 그 수는 100명을 훌쩍 넘는다.

그렇다면 바뀐 공직자윤리법이 고위 공직자의 로펌행을 막을 수 있을까. 공직자윤리법이 개정된 이후에는 외국로펌으로 고위공직자 출신 몰리는 풍선효과(한 쪽을 막으면 다른 쪽이 부풀어 오르는)가 생길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외국계 로펌 중에는 매출액이 150억원을 넘는 곳이 없기 때문이다.

또 외국에서 유학하던 공직자가 미국이나 영국, 홍콩 사무소에 우선 취업한 뒤 한국에 진출해 법망을 피해갈 지 모른다는 지적도 있다.

◇로펌, 대기업과 정부기관의 연결고리(?)= 경실련은 “대형 로펌들이 대기업의 소송을 주로 전담하고 있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소송을 많이 제기하는 정부 부처 출신 인사들을 주로 영입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로펌 쪽에선 이들의 인맥이나 네트워크, 관련 정보를 소송에서 유리하게 활용할 가치가 높다. 공직 때 구축한 인적 네트워크와 정보를 이용한 사건 수임과 출신 부처를 통한 정보 수집, 고객 기업을 위해 제재 수준을 낮추도록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기 때문이다. 로펌이 고객인 대기업과 정부기관 사이에 연결고리 역할을 해준다는 얘기다.

경실련 관계자는“대형 로펌은 불공정 로비 등으로 전관예우 관행 문제점이 더 심각하게 드러날 수도 있다”고 지적했다.

그렇다면 로펌으로 옮긴 공직자들은 어떤 혜택을 얻을까.

장·차관이나 1급 등 고위 공직자들은 로펌에서 고문이라고 한다. 중·하위 공무원들은 전문위원으로 불린다. 고문들은 수억원의 고액 연봉을 받는다. 권도엽 국토해양부 장관은 지난 2010년 차관을 그만두고 김앤장에 들어가 5개월 동안 1억2000만원을 받았다.

2011년 초 당시 감사원장 후보였던 정동기 씨는 로펌에서의 전관예우 논란으로 낙마했다. 정 씨는 2007년 법무부 차관과 대검찰청 차장검사를 지내다 같은 해 11월 20일 퇴직했고, 6일 뒤 법무법인 바른으로 옮겼다. 그 후 7개월 만에 6억9943만원을 벌어들였다.

이처럼 로펌이 고액 연봉을 주고 퇴직 공직자들을 영입하는 것은 그들이 받은 돈 이상의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대형 로펌의 한 변호사는 “공정위 관련 사건에서 과징금을 절반으로 줄이는 데 성공했다면 3~5% 정도를 성공 보수로 받는 게 일반적”이라고 밝혔다. 1000억원의 과징금이 예정된 사건이 최종적으로 500억원으로 줄었다면, 성공 보수만 15억~25억원에 달하는 셈이다.

◇법조계 인맥을 사외이사로= 삼성전자는 오는 16일 주주총회를 열고 사외이사로 윤동민 김앤장 법률사무소 변호사를 재선임할 예정이다. 윤 변호사는 대전고검 차장검사를 거쳐 법무부 기획관리실장, 법무부 보호국장을 지냈다. 제일모직도 같은날 주총에서 김성진 법무법인 태평양 변호사를 재선임한다.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시스템에 따르면 100대 기업의 사외이사와 임원 중 법조인 출신은 76명이다.

이중 차관급 이상의 법조계 최고위직에 있었던 인사들은 19명에 달한다. 법무부 장관(1명), 검찰총장(3명), 헌법재판소 재판관(2명), 서울고법원장(4명), 법무부 차관(3명), 법제처장(2명), 지법원장(1명), 고등검사장(3명) 출신들이 대기업의 사외이사로 대거 포진했다.

특히 이들 중 상당수는 로펌에서 고문 역할도 함께 맡고 있다. 송정호 전 법무부 장관은 고려아연의 사외이사이자 법무법인 한중의 고문이다. 이명재 전 검찰총장은 법무법인 태평양 고문 역할을 하면서 두산인프라코어의 사외이사도 맡고 있다. 삼성테크윈 사외이사인 석호철 전 서울고법 부장판사는 법무법인 바른의 변호사다.

대기업이 이처럼 판·검사 출신 사외이사를 영입하는 이유에 대해 4대 그룹의 한 관계자는 “준법 경영이라는 시대적 요구를 담당하는 데 법조인 출신 만한 인재가 없기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하지만 일각에서는 준법경영 목적 뿐 아니라‘로비용’이라는 의심의 눈초리를 갖고 있다. 선후배 관계가 확실한 법조계에서 검사장·법원장 등의 경력은 그 자체 만으로 영향력이 크다. 기업이 검찰 수사 등으로 곤란을 겪을 때마다 도움을 줄 수 있다는 얘기다.

좋은기업지배구조연구소 이지수 소장은 “선임하려는 사외이사가 법조인이라면 기업은 해당 인물 또는 그가 소속된 로펌과의 계약관계 일체를 공개하는 방안이 마련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평가위원단 교수도 대기업 ‘타깃’= 대기업들은 자신에게 유리한 결과를 얻기 위해 정부가 발주한 큰 계약에 대한 심사를 담당하는 평가위원(교수)에게 접근하기도 한다.

“등록된 평가위원 후보자의 명단을 입수한 후, 개별적으로 관리합니다. 그러다가 발주 건이 있을 때마다 평가위원과 뒷거래를 하는 식이죠. 평가위원 후보자에게 일일이 문자를 보낸 후, 답변이 오면 접촉을 시도합니다.”

대기업의 금품 로비를 세상에 폭로하며 지난 2010년 국민권익위원회로 부터 국민훈장까지 받은 이용석 연세대 전기전자공학과 교수의 얘기다.

이용석 교수는 이투데이와의 인터뷰에서 “기업들은 심사에서 도와주면 컨설팅이나 연구과제를 주겠다는 식으로 접근한다”고 말했다. 여기서 ‘컨설팅’은 기술 자문과 같은 명목으로 매달 돈을 얼마씩 준다는 얘기. 또 연구과제를 주고 연구비를 지원하기도 한다. 현금으로 지불하면 나중에 문제가 생길 수 있기 때문에 연구비 또는 자문료 등의 형태로 지급한다는 얘기다. 이 교수는 “예전보다는 나아졌지만 주변을 살펴보면 아직도 기업들의 로비는 근절되지 않았다”고 밝혔다.

“주변을 보면 아무것도 아닌데, 컨설팅과 자문을 해주는 경우가 꽤 있습니다. 이런 게 바로 로비의 일환입니다.”

이에 따라 최근엔 평가위원을 아예 외부에 공개하고 있다. 평가위원이 책임감을 느끼게 하기 위해서다. 하지만 더 교묘하고 은밀한 접촉이 이뤄질 가능성이 크다는 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또 다른 문제는 로비가 적발돼도 기업의 처벌이 거의 이뤄지지 않는다는 데 있다.

검찰은 지난해 1월7일 SK텔레콤 박 모 팀장을 배임증재 혐의로 불구속 기소했다. 결국 벌금 150만원으로 끝났다. 금호건설로비 사례에서도 직원들 모두 집행유예로 풀려났다. 더 중요한 것은 외국 사례를 보면 이같은 일이 발생했을 경우 개인보다는 법인을 처벌한다. 향후 입찰 명단에서 아예 참여를 배제하는 것이다. 기업으로는 가장 큰 사형선고다. 하지만 우리나라는 개인에 대한 처벌만 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용석 교수는 “대기업이 로비를 하다 적발되면 대형 로펌으로 달려간다. 결국 큰 처벌 없이 끝난다. 기업으로서는 겁 날 게 없는 것”이라며 “로비가 또 다른 로비를 낫는 악순환이 이어지고 있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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