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건설 '허와실']발주사는 허송세월, 정부는 뒷짐만…속도 못 내는 고속철 수주

입력 2012-03-22 08: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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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조 브라질 고속철도 사업, 6월 예정 입찰제안서 공개 연기 가능성

한국형 고속철도 해외 수출이라는 환상에 젖어 정부 주도아래 지난 2008년 출범한 브라질고속철도 한국사업단. 코레일 한국철도시설공단 현대중공업 삼성 SDS LG CNS 등 민관이 사업협약을 맺고 의기투합한 이 사업단은 지금은 사실상 활동이 중단됐다. 한달에 한번 정례회의가 활동의 전부다.

시작 당시 참여했던 코오롱건설(현 코오롱글로벌) 현대엠코 삼환기업 한신공영 등 건설사들은 아예 사업단에서 탈퇴해 오간데 없다. 2011년 4월 이후 단장 자리도 공석인 데다 일부 기관은 정례모임 조차 참여를 않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더구나 당장 이라도 수주할 듯이 뛰어다니던 정부는 꿀먹은 벙어리다. 고속철도 국산화 성공을 기반으로 브라질에 고속철도를 수출하겠다며 국토해양부 장관까지 나섰던 당시와는 크게 대조적이다. 요새는 아예 “민간이 판단해야 하는 사안” 이라며 떠넘기기에 급급해 보인다. 브라질 고속철은 리우~상파울루~캄피나스를 잇는 511㎞ 구간에 건설될 예정이다.

◇30조 자이언트급 프로젝트 해당국가 정치 리스크에 발목 = 총 사업비만 약 380억 헤알(25조8000억원)에 이르는 사업이 어쩌다가 이 지경이 됐을까.

22일 관련업계에 따르면 지난 2010년 11월 이후 입찰 연기와 유찰을 반복하던 이 사업 발주처인 브라질 육상교통청(ANTT)의 청장 자리가 공석이다. 줄곧 이 사업을 이끌던 베르나르도 피게이레도 청장의 연임이 부결되면서 사업을 발주해야 할 기관의 수장이 자릴 비운 것이다. 이렇다보니 오는 6월에 예정된 입찰제안서 공개 마저도 또다시 연기될 가능성이 높다는 보도가 속속 나오고 있다. 정치 리스크에 이미 발목을 잡힌 셈이다.

사업성 논란도 끊이지 않고 있다. 초기투자비가 과다하다는 이유에서다. 아직 새로운 사업제안요청서(RFP) 내용이 공개되지 않아 판단하기는 이르지만 현 상태로는 수익성이 크게 떨어진다는 평가가 많다. 관련업계에 따르면 브라질 고속철 사업은 지난해 기존 사업제안 기준으로 약 30조원에 육박하는 사업비 가운데 약 3분의 1가량을 민간제안자가 선투자하고 40년간 운영해 사업비를 회수해야 한다. 흔한 운영수익 보장도 아직 확정된 게 없다. 브라질 정부가 운영과 건설을 분리해서 입찰한다는 얘기가 나오고 있지만 어디까지나 ‘설’에 불과하다.

게다가 브라질 국산화율을 80%까지 내걸은 점도 골칫거리다. 이는 자칫 토목사업의 대부분을 브라질 건설업체가 가져갈 수 있다는 얘기와 일맥상통한다. 국내 건설사들이 사업단에서 발을 빼고 있는지 대번에 알 수 있는 대목이다.

사정이 이렇다보니 정부가 지나치게 호들갑을 떨었다는 지적이다. 국토부 관계자는 “민간사업으로 기업들에 참여를 강요한 적이 없다”면서 “민간기업들의 리스크 테이킹의 문제”라고 밝혔다. 전혀 틀린말은 아니지만 2009년 당시 정종환 국토부 장관이 취임시부터 브라질 현지를 찾아 정부 등 관계자를 만나는 등 공을 들이는 과정에서 국내 기업들의 참여를 독려했던 점은 사실이다. 대형 프로젝트 수주라는 성과에 목을 멘 나머지 섣불리 달려든 것 아니냐는 평가도 이 때문이다.

초기 사업단에 참여했던 한 건설사 관계자는 “브라질 건설환경 자체가 한국이 진출하기 쉽지 않은 데다, 사업단의 독불장군식 운영도 도가 지나쳤다”며 “앞으로도 사업에 참여하는 일은 없을 것”이라고 잘라 말했다.

◇미국 캘리포니아 고속철 사업 곧 수주할 듯 하더니 = 총 1290㎞ 구간으로 450억달러(약 50조원) 규모의 캘리포니아 고속철도 사업도 크게 다르지 않다. 지난 2010년 9월 아놀드 슈워제네거 캘리포니아 주지사 방한 당시만 해도 곧 수주가 기대된다며 떠들썩 했다. 그러나 최근 분위기는 정반대다. 관련업계에 따르면 최근 캘리포니아 고속철 사업에 대한 참가자격 심사(RFQ)가 있었으나 우리 기업들은 참여조차 하지 못했다. 200㎞구간의 시범사업만으로 진행되면서 토목공사 위주로 발주해 매력이 크게 떨어졌기 때문이다. 이 사업 역시 당초 브라질 고속철도와 같이 철도, 차량, 시스템 등 패키지로 발주가 예상됐으나 사업구조가 바뀌면서 참여를 포기해야 했다.

선진 시장인 미국 진출에 한껏 기대가 부풀었던 우리기업들로서는 ‘닭 쫓던개 지붕쳐다보는 겪’이 된셈이다. 업계에 따르면 미국 컨소시엄 4곳과 스페인 컨소시엄 1곳이 최종 입찰제안서를 조만간 제출할 것으로 알려졌다. 이 사업에 참여를 준비했던 한 관계자는 “시범사업이 토목위주여서 미국 기업에 경쟁력이 떨어지는 우리 업체들은 참여가 사실상 불가능해 진 것”이라며 “향후 추가 발주를 기대하고 있지만 이 역시 언제 발주할 지 모른다”고 말했다.

이처럼 해외 수출의 선봉장 역할을 할 것 처럼 왁짜지걸하게 떠들어 댔던 고속철 해외진출이 사실상 연거푸 무산되면서 한국형 고속철도 수출이 실현 가능하겠느냐는 회의적인 시각이 나오고 있다. 특히 해외 수출의 선봉에 서야하는 KTX-산천의 경우 크고 작은 고장에 시달리더니 리콜까지 진행되는 등 안전성 문제까지 대두되고 있어 우려가 커지는 분위기다. 고장철 오명으로 수출이 가능하겠느냐는 소리다.

KTX산천 수출에 정통한 한 관계자는 “해외 바이어들이 깐깐하다. 아직 해외에 선뵌 적이 없는 KTX-산천 차량이라면 더욱 엄격한 잣대를 들이댈 것”이라며 “게다가 사고까지 잇따라서야 수출이 가능하겠느냐”고 반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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