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고 당기는’ 특허 전쟁= 지난해 4월 처음 특허전을 시작한 삼성과 애플은 한 치의 양보도 없는 공세를 지속 하다가도 협상의 분위기를 내비치는 등 밀고 당기기 전략을 사용하고 있다. 또 협상 분위기가 어느 정도 나온 후엔 여지없이 공세로 전환하는 등 기싸움도 치열하다.
애플은 지난해 4월 미 캘리포니아 북부 지방 법원에서 삼성전자를 상대로 판매금지 가처분신청 소송을 제기했다. 갤럭시 시리즈 등 삼성전자의 스마트폰과 태블릿PC가 애플의 디자인과 UI (사용자 인터페이스)등을 모방했다는 것이 애플의 주장이었다.
삼성전자도 칼을 뽑았다. 애플의 소송 직후 삼성전자는 미국, 한국, 독일, 일본 등 4개국에서 특허 소송을 내며 반격에 나섰다. 이후 양사는 네덜란드, 영국, 프랑스, 이탈리아, 호주 등을 포함한 9개국으로 소송지역을 확대해가며 30여 건의 소송전을 진행했다.
특히 삼성전자는 애플이 신제품 아이폰4S를 공개한 지 15시간 만에 이 제품에 대한 판매금지 가처분 신청을 내는 등 특허전쟁은 점입가경으로 치달았다. 최지성 삼성전자 대표이사(부회장)은 “앞으로 제1거래처로서 존중하는 것은 변함없지만, 우리 이익을 침해하는 것은 좌시할 수 없다”고 하기도 했다.
그러나 지난해 10월 중순 이재용 삼성전자 사장이 고 스티브 잡스 추도식에 참석하고, 팀쿡 애플CEO와 면담한 뒤 특허전이 소강상태를 맞았다.
소송을 내면 맞소송을 내고 다른 지역에 또 소송을 내던 양사는 한달 이상 추가소송을 제기하지 않았고, 공개적 비난도 자제했다.
소강상태는 오래 가지 않았다. 삼성전자는 12월 중순 애플을 상대로 독일에서 추가 소송을 제기했다.
하지만 또 다시 협상 분위기로 바뀌었다.
그 동안 강경 발언을 했던 최지성 부회장은 올 초 미국에서 열린‘CES 2012’에서 애플과 특허전쟁 전망에 대해 “서로 끝까지야 가겠느냐”며 “서로가 큰 회사이고 존중할 부분이 있다”고 말하며 협상 의사를 간접적으로 내비쳤다.
하지만 현재는 또 다시 소송을 이어가며 치열한 특허전을 벌이고 있다. 최지성 부회장도 특허전에 대한 언급을 자제하고 있다. 최 부회장은 지난 16일 “(애플과의 특허전 관련해서는)소송에 영향 줄 수 있기 때문에 발언 하지 않겠다”고 말했다.
삼성과 애플의 특허전쟁은 집단과 집단의 대결로도 변모하고 있다. 스마트폰 등 모바일 제품은 광범위한 특허가 필요하며 운영체제(OS)를 갖고 있는 주요 업체들 모두 통신 기술이 취약하다. 때문에 특허 포트폴리오 확대를 위한 합종연횡이 활발하게 벌어지고 있고 있다. 바로 구글 안드로이드 진영과 애플의 대결이다.
지난해 11월 한국을 방문한 구글 에릭 슈미트 회장이 최지성 삼성전자 부회장과 만나 애플과 특허전쟁을 벌이는 삼성전자를 도울 뜻을 내비친 것도 이같은 이유에서다.
LG경제연구원 손민선 책임연구원은 “이제 특허 소송은 한 기업의 문제가 아니다. 한 기업에 대한 특허 공세는 같은 생태계에 속한 다른 기업에게도 영향을 미친다”고 말했다.
실제로 삼성전자는 같은 안드로이드 생태계 아래 있는 HTC와 모토로라가 애플과의 특허전에서 어떤 결과를 얻어 내는 지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구글이 IBM에서 특허를 사들이고 125억 달러에 모토로라를 인수한 것도 애플 등 경쟁기업의 특허 공세에 대한 방어선을 구축하기 위한 것이다.
◇향후 전망은= 삼성전자도 지고, 애플도 졌다. 두 회사의 특허분쟁은 ‘승자 없는 싸움’으로 전개되고 있다.
독일 만하임 지방법원은 지난 2일 삼성전자가 애플을 상대로 제기한 통신기술 특허침해소송에서 원고패소 판결을 내렸다. 법원은 또 애플이 삼성전자를 상대로 제기한 잠금 해제 특허침해 소송 역시 원고패소를 결정했다. 두 소송 모두 이번 특허전의 분수령으로 생각했던 본안 소송이었다.
업계 관계자는 “본안 소송이기 때문에 법원이 원고측 주장을 받아들여 특허침해를 인정할 경우 상대방 제품을 판매금지 시킬 수 있다”며 “이는 시장에 미치는 파장이 워낙 크기 때문에 법원도 쉽게 특허침해 판결을 내리기 부담스러웠을 것”이라고 말했다.
향후 삼성과 애플의 특허전은 타협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는 분석에 무게가 실리고 있다. 양사의 소모전이 불필요하게 전개되고 있고, 이번 판결을 계기로 “선의의 기술경쟁을 벌이기 보다는 기존 보유기술을 무기로 상대방의 발목만 잡으려 한다”는 글로벌 IT업계 내 비난여론도 점차 높아질 것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결국 크로스 라이선스를 통해 서로의 지적 재산권을 사용할 것을 허용하는 협상에 이를 것이라는 전망이다.
애플과 삼성전자는 최대 경쟁자임과 동시에 최대 파트너다. 삼성전자가 애플에게 프로세서와 메모리 등을 공급하는 최대 부품협력업체이기 때문이다. 애플은 최근 출시한 뉴아이패드의 패널 초도 물량 대부분을 삼성전자에서 구입하기도 했다.
결국 한 쪽을 파국으로 몰아 가지는 않을 것이란 전망이 우세하다.
글로벌 IT기업 특허팀의 한 관계자는 “양사의 특허전이 진짜 상대방의 제품을 판매금지 시켜서 사업을 못하도록 만들겠다는 전략은 아닐 것”이라며 “결국 각각의 특허로 크로스라이센싱 협상에서 우선권을 갖기 위한 소송전인데, 최근 움직임을 봐서는 조만간 합의에 나 설 가능성이 커 보인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