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력 끝 아닌 ‘쉬어가는 자리’ 전락
측근 보내고 밀어내기 인선도
은행권·상의 민간추천 허울뿐
정권말 4인 선임 또 보은성?
“청와대의 방침 기다리다 시간 지났다. 정부 의견을 받은 뒤 산업계가 보기에 문제 없다고 하면 추천하는게 관행이다.”(손경식 대한상의회장이 2011년 9월 국정감사 때 금통위원을 추천하지 못한 이유에 대한 변)
‘꽃보직’ 관료들 사이에서 한국은행 금융통화위원을 두고 붙인 별칭이다. 3억2000만원에 달하는 연봉에 체어맨 차량이 지원되는 데다 업무추진비도 적지 않다. 결정적으로는 금통위원 자리는 경력의 끝이 아니다. 다시 시작이란 해도 무리가 없다. 금통위원 경력을 안고 장관이나 국회의원 등으로 옮기니 이도 적지 않다.
한은의 중립성을 강화하고 은행감독기능을 분리한 제6차 한은법 개정(1997년) 이후 관료 출신의 금통위원 재직기간은 2년8개월이다. 한은(3년)·학계(3년8개월) 출신에 비해 가장 짧다. 임기 4년을 채우지 못하는 것은 ‘쉬어가는 자리’라는 반증이기도 하다.
이 때문일까. 대통령의 금통위원 임명권을 두고 잡음은 끊이지 않는다. 지난 2006년, 노무현 정부 때도 그랬다. 당시 청와대는 “남은 금통위원 한 명은 관료출신이 될 것”이라고 지레 밝혔다. 청와대의 이 발언은 추천몫은 대한상의에 있지만 “이미 내정된 인사가 있다”는 얘기나 다름없었다.
청와대는 김태동 위원 후임으로 박봉흠 위원을 임명했다. 박 위원은 청와대 정책실장 출신이다. 노 전 대통령이 탄핵 가결(2004년3월)로 직무가 정지됐을 때 정부 현안을 실어나르는 대통령의 복심 역할을 했다.
박 위원이 임명되기 17일 전인 2006년 4월8일. 심훈 전 부산은행장이 금통위원으로 올랐을 때도 말들이 많았다. 그는 금통위원으로 오기 전까지 부산은행장을 2연임했다. 3연임을 앞두고 자진사퇴했다. 후임 부산은행장으로는 이장호 현 BS금융 회장이 임명됐다. 이 회장은 노무현 정권 탄생에 일조했을 뿐 아니라 노 전 대통령의 부산상고 1년 선배이다. 당시 “선배를 행장으로 올리려고 심훈을 금통위원으로 데려왔다”는 정설에 가까운 낭설이 금융권에서 나돌았다.
한은 관계자는 “당시 2년 앞서 선임된 강문수, 이성남, 이덕훈 위원이 민간 출신인 데다 심훈이 한은 출신이라 노조가 박봉흠만 두고 강하게 투쟁할 명분은 크지 않았다”라고 회고했다.
심훈은 노조의 극심한 반발을 샀던 김종창 전 금감원장의 후임으로 온 탓에 “오히려 나아졌다”는 평가가 있기도 했다.
이명박 정권 들어서도 금통위원을 임명을 둔 뒷말은 무성하다. 강명헌 위원은 MB대선캠프 정책자문위원장과 인수위원회 자문위원을 거쳤다. 임승태 위원은 민간기관인 은행연합회가 차관보급의 현직관료를 추천해 한은 노조의 반발을 샀다.
노조 관계자는 “수평 이동이 아닌 승진 개념으로 금통위원이 온 데다 민간기관의 관료 추천도 적절치 못했다”라고 평가했다.
대통령의 인사권과 금통위원. 이를 둔 혼선은 MB정권 말기에 갈수록 커지고 있다. 다음달 20일 세 명의 위원이 임기를 마치는 데다 2년 째 공석인 대한상의 추천분까지 모두 4명을 선임해야 하기 때문이다.
전직 정부 고위 관계자는 “인사권이란게 있으면 휘두르고 싶은 것”이라며 “임기 말기라 해도 정권과 연관 있는 인물의 보은성 인사를 하지 못할 이유가 없다”라고 내다봤다.
청와대가 4년 간의 일자리 나눠주기에 그치지 않고 화룡점정(畵龍點睛) 할 수도 있다는 것이다. 금통위원 추천권은 기획재정부, 한은, 대한상의, 은행연합회, 금융위원회에 나눠져 있다. 그러나 청와대와 연줄이 없으면 오르지 못할 나무라는 것이 손경식 회장의 고백을 통해 이미 드러났다.
최중경 전 지식경제부 장관 등 MB코드에 맞는 관료 출신들이 금통위원 하마평에 오르내리고 있다. 청와대와 김중수 총재가 머리를 맞대고 내외부 반발이 적을 ‘최적의 4인 시나리오’를 만들고 있다는 얘기도 들려온다.
한 민간연구소의 박사급 연구위원은 “금통위원이 시장에 영향력이 없는 것은 자질이나 능력의 문제만은 아니다”며 “누구에 의해, 누구와 연줄이 있어서 왔다는 얘기가 사라지지 않는 한 능력과 업적을 곧이곧대로 인정받긴 어려울 것”이라고 말했다.
최병선 동덕여대 교수는 “한은이 독립성을 유지해야 하는 조직이어서 정부와의 협의에 한계가 있을 수 밖에 없다”며 “금통위원이 정부와의 협의 결정체로 남는 한 신뢰성은 높이기는 힘들다”라고 평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