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성찬의 그린인사이드]김인경의 27cm ‘골프눈물’

입력 2012-04-03 10:45 수정 2012-04-03 10: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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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비스코 최종일 18번홀 그린에서 27cm 파퍼팅을 놓치고 망연자실해 있는 김인경. JNA 정진직 포토
“앗! 한손으로 쳐도 들어가는데...·

크래프트 나비스코 챔피언십(총상금 200만달러) 최종일 경기를 본 골퍼라면 이렇게 생각했을 것이다.

맞다.

27cm면 기브(give) 거리다. 아마추어 골퍼들끼리 라운드하면 “오케이(ok)~”를 시원하게 부를 거리다.

이런 말도 안되는 거리를 김인경(24·하나금융그룹)은 뺐다.

사실 퍼팅에서 1m 거리 이내면 웬만해서 라이를 볼 필요가 없다. 홀(hole) 뒤를 보고 치면 99.99% 들어간다.

미국 캘리포니아주 란초 미라지 미션힐스 CC(파72·6702야드) 18번홀(파5·485야드) 그린. 김인경은 3온을 시켰다. 거리도 5m이내. 첫 퍼팅은 홀을 지나쳤다. 그런데 두번째 퍼팅이 오른쪽 홀 라인을 타더니 360도 휘돌아 나왔다. ‘버디’의 동생이 ‘보기’가 됐다. 유선영(26·정관장)과 연장전 첫번홀. 유선영은 버디, 김인경은 파로 졌다.

우승상금은 30만달러. 2위 상금은 18만2538달러. 김인경은 마지막 홀 보기로 1cm에 6761달러를 날렸다.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할까.

사실 아마추어골퍼들은 기브를 받아서 그렇지 흔히 범하는 일이다. 프로골퍼도 마찬가지다. 특히 우승퍼팅을 앞둔 상황이라면, 그것도 메이저대회라면 압박감이 이만 저만이 아닐터. 생각없이 툭 쳐도 들어갈 거리가 선수에게는 순간적으로 천길 물속보다 멀어 보일 수 있다. 이런 거리를 놓쳐보라. 아마추어는 땅을 치고, 퍼터로 그린을 찍기도 한다. 열(熱) 받아서.

타이거 우즈(37·미국)조차 그랬다. 짧은 거리 퍼팅을 놓치면 우즈도 퍼터를 집어 던진다.

경기를 마치고 김인경은 “사실 오늘 라운드 시작할 때 어떻게 진행될지는 아무도 몰랐다. 전반에 퍼팅이 잘 안돼 마음 고생이 심했다. 그러다가 후반에 마음을 비우고 플레이 했더니 거짓말처럼 퍼팅이 잘 되면서 선두까지 갔었다. (서)희경이 언니가 잘 되어서 한 때 4타차까지 났는데, 나비스코니까 끝까지 모른다고 생각하고 열심히 쳤다. 기회가 왔다. 희경이 언니도 아쉽고, 나도 아쉬운 경기다. 어쨌든 (유)선영이 언니에게 축하한다는 말을 해주고 싶다”말했다.

김인경은 놓친 퍼팅에 대해 “18번홀에서 퍼팅을 왜 놓쳤는지 잘 모르겠다. 사실 마지막 그 퍼팅은 바로 보고 쳤는데, 살짝 오른쪽으로 흐르면서 돌고 나온 것이다. 마크 안해도 될 정도로 짧은 퍼팅이었다. 그런데 마크를 했다. 이것이 잘못된 것이다. 아쉽다”고 전했다.

연장전에서 진 것에 대해 김인경은 “누구나 마지막에 찬스가 있었지 않았나. 어쨌든 결과에는 만족한다. 다 잘 한 것 밖에 생각나지 않는다”고 덤덤하게 말했다.

사실 말은 그렇게 해도 이번 보기 퍼팅의 충격은 아마도 오래 가지 않을까 싶다.

지난해 US여자오픈에서 상황과 비슷하다. 최종일 유소연(22·한화)이 3개홀을 남기고 파-버디-버디를 하는 사이 선두였던 서희경(26·진로하이트)은 파-보기-파로 타수를 잃어 연장전에 갔고 유소연이 이겼다.

서희경은 이번 나비스코에서도 12번홀까지 버디만 5개 골라내며 선두였다. 우승을 눈앞에 뒀다. 그러나 15번홀부터 4개홀 연속 보기를 범하며 US여자오픈에서의 악몽이 재현됐다.

기량이 비슷하면 상위권에 든다. 그런데 우승은 운이 따라주어야 한다.

파3에서 티샷이 오른쪽으로 확 꺾여 OB(아웃 오브 바운스)가 나는가 했더니 나무맞고 홀로 빨려들어가 홀인원이 되기도 한다.

세상에서 가장 무서운 놈이 운좋은 놈이라 했다. 실력이 아무리 좋아도 운좋은 놈 못따라 간다는 얘기다.

이것이 골프의 묘미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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