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액티브 시니어’가 뜬다]배우자 빈자리 남친, 여친…사랑은 끝나지 않았네

입력 2012-04-26 08: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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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년을 행복하게 하는‘황혼의 로맨스’

여전히 옛 정취를 품은 종로의 풍경은 지난날과 크게 다르지 않지만 어르신들은 더 젊어지고 있다. 인구 고령화로 수명이 늘면서 남은 삶을 적극적으로 즐기는 노인들이 늘기 시작했다. 요즘 어르신들은 ‘연애’를 통해 삶을 젊고 건강하게 즐긴다. 종로를 찾은 어르신들에게 “애인 없이 나들이 나오셨냐”고 물으면 ‘늙어서 무슨 주책’이라며 손사래를 치던 전과 달리 “어제 만났어”라고 받아치신다.

◇연애는 나의 힘…‘자식보다 여친이 좋다’= 오후 1시 30분께 종로 3가 파고다 공원 뒷 골목. “이 친구는 이따 애인 만나러 간대”

말쑥한 어르신 세 분이 식사를 하는 도중 ‘애인’ 이야기를 꺼낸다. 고운 얼굴을 가진 어르신 세 분은 껄껄 웃으며 연애 이야기로 테이블을 채운다.

경찰 생활 35년을 마치고 은퇴한 김정호(72·가명)씨는 4년 사귄 여자친구가 있다. 친구들과 인천에 놀러갔다 거기서 우연히 이순복(67·가명)씨를 만났다. 10년 전 남편과 사별한 이씨와 이야기를 하다 통하는게 있어 전화번호를 교환한 뒤 지금까지 만남을 이어오고 있다.

김 할아버지는 “며느리랑 아들 모두 의사지만 자식들 잘 돼도 다 필요없다”며 “자식들은 자주 보지도 못하고 오히려 괄시하지만 여자친구는 나를 이해해주고 참 잘해준다”고 웃으며 말했다.

길모(76·가명)씨는 “우리는 일제 시대와 한국전쟁을 경험하고 정신없이 돈 벌며 지낸 세대다”며 “지금 살아있는 것이 기적일 정도로 치열하게 지냈지만 늙고나니 친구도 가고, 낙도 없었는데 이젠 여자친구와 연애하는 즐거움이 생겼다”고 설명했다.

다시 로맨스를 즐기면서 삶도 더 풍성해졌다. 어르신께 ‘연애하기 전과 가장 크게 달라진 것이 무엇이냐’고 묻자 김씨는 “참 행복해, 5월 25일이 우리 4주년”이라고 자랑을 했다.

◇성(性)스러운 생활은 계속된다= 어르신들의 연애는 젊은이들과 다를바 없다. 김씨는 “지난번에는 친구들이랑 맛있는 것 먹고 어제 여자친구와 안양유원지에서 모처럼 오붓한 데이트를 즐겼다”고 말했다.

이야기가 깊어지자 그는 “요즘 젊어지는 기분”이라며 말문을 열었다. 할아버지는 “어제도 여자친구랑 만나서 꼭 껴안고 왔어”라며 부끄럽게 웃는다.

나이가 들면 성생활을 안 한다는 생각은 오해다. 어르신 3명 중 2명은 성생활을 하고 있다. 보건복지부가 지난 1월 실시한 ‘노인층 성생활 실태조사’결과 응답자 전체 500명 중 66.2%인 331명이 ‘현재 성생활을 한다’고 응답했다.

김씨도 “섹스 안 하면 만날 이유가 없지, 젊을때만큼 안 되지만 여자친구가 적극적으로 잘 해준다”고 말했다. 옆에 계신 장호준(72·가명)씨도 “연애하니 스트레스 안 받고 살 것 같다”며 한 마디 거든다.

연애를 즐기는 노인들은 비단 할아버지뿐만이 아니다. 할머니들도 황혼 로맨스에 대해 긍정적으로 생각한다.

장사를 하고 있다는 김효숙(57·여)씨는 “남자친구를 만나야 일할 때도 콧노래가 나온다”고 연애예찬론을 늘어놨다. 이어 “기자양반 순진한 척 하는 것 보소, 나이들어도 (섹스하는 것은) 똑같다”며 “요즘 누가 손만 잡고 연애하나? ”고 되묻는다. 연애 이야기를 하는 동안 어르신들 얼굴에서 내내 미소가 떠나지 않았다.

고금자 인구보건복지협회 노인 성 상담사는 “예나 지금이나 어르신들도 관계를 갖는다, 다만 요즘에는 성을 수치스럽게 여기는 대신 긍정적으로 보고 있다”고 말했다.

고 상담사는 이어 “노인들에게 성은 단순히 섹스만이 아니라 이해가 동반된 인간관계를 의미한다”며 “이런 변화에 맞춰 노인들을 위한 성 지식 교육, 노인전화 상담전화가 더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정부 주관 ‘실버미팅’도 늘어= 어르신들의 로맨스를 긍정적으로 보는 시각이 보편화되면서 아예 정부와 지자체가 만남의 자리를 주관하고 나섰다.

지난 17일 인천 하버파크 호텔. 호텔에는 하얀 머리와 느릿한 몸가짐의 어르신 40명과 송영길 인천광역시장, 이기인 대한노인회인천연합회장 등이 한 자리에 모였다. 어르신들의 얼굴에는 웃음이 호텔 안 공기는 든뜬 설레임으로 가득찼다. 이 날 호텔에서는 어르신들의 ‘만남의 날’이 열렸기 때문이다.

인천시는 전국 최초로 합독사업을 벌여 홀로 계신 노인들의 건전한 만남을 주선하고 있다. 인천시 노인종합복지관 관계자는 “송영길 인천시장이 지난해 직접 아이디어 내 시작됐으며 어르신들의 반응도 좋고 참여자들도 점점 늘어나는 추세”라고 말했다.

인천시와 커플매칭 업체 듀오가 함께 개최한 만남의 자리는 여느 젊은이들의 모임과 다를바 없었다. 와인 스탠딩 파티와 커플댄스를 통해 서먹함이 사라질 즈음 서로의 친밀감 형성을 위해 ‘로테이션 대화’가 진행됐다. 훈훈한 분위기 덕분에 이날 참여자 40명 중 절반이 넘는 12커플이 만들어졌다.

그러나 어르신들 대부분은 ‘이성교제=재혼’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노년기에 대화상대가 부족하고 여가활동 장소도 마땅치 않은 상황에서 이성교제는 좋은 대안이 된다.

실제로 실버미팅 참가 동기를 묻자 남여 공통으로 △대화 상대가 필요 △노년의 외로움 △여행·운동 등 여가생활이 주된 답을 이뤘다.

전문가들은 이같은 변화를 두고 여성노인의 의식변화와 자기 인생을 찾아야겠다는 자아실현 욕구가 높아졌기 때문이라고 분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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