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뒤집기 한판?’(박성현 한화증권 연구원 보고서 제목). 레슬링 경기를 진행하는 해설자의 멘트가 아니다. 60개가 넘는 증권사에서 하루에 쏟아지는 보고서는 300개가 족히 넘는다. 이들 보고서 중에는 투자자의 선택을 받기 위한 애널리스트의 고민이 잔뜩 배여있는 보고서들이 많다.
그럴듯한 제목이 내용을 담보하진 않지만 보다 정확한 예측과 이색적인 분석을 제공하고자 하는 애널리스트들의 노력을 고려한다면 특이한 제목을 가진 보고서를 눈여겨볼 필요는 있다.
한 증권사 연구원은 소위 ‘잘뽑힌’ 타이틀로 보고서를 낼 때 투자자들에게 보다 잘 어필되는 경향이 있다고 귀띔했다.
지난 26일 발표된 이국환 한화증권 연구원의 보고서 제목은 ‘태양은 원래 동쪽에서 뜬다’. 서유럽에서 시작한 태양광 산업 열풍(태양)이 중국, 일본 등 동쪽으로 옮겨가고 있음을 비유했다.
김현준 IBK투자증권 연구원은 지난 20일 ‘매수타이밍 딱 정해드립니다’라는 제목의 리포트를 내놓았다. 이 보고서는 최근 투자 방향성을 잡지 못하고 있는 투자자들의 눈길을 사로잡기에 충분했다.
김영일 대신증권 연구원은 지난 13일 ‘스페인, 작은 마트로시카 인형이 아닐까?’라는 보고서를 내놨다. 스페인과 이탈리아 위기에 대해 조정의 빌미는 줄 수 있지만 주식시장의 상승 흐름을 바꾸지 못할 것이라는 게 요지다. 이해를 돕기 위해 큰 인형 속에 작은 인형이 계속 들어있는 러시아의 전통인형 마트로시카 사진도 게재했다.
‘실적의 중심에서 IT·증권·은행을 말하다’(메리츠증권), ‘불편한 진실’(동양증권)처럼 영화 제목 페러디도 눈에 띈다. ‘한동안 뜸했던 유럽 이슈 점검’(동양증권)은 노래 제목을 연상케 한다.
분석 부문에 따라 제목의 유형도 다르다. 투자전략 보고서는 ‘주가는 옛집으로 돌아간다’, ‘팽팽한 줄다리기는 진행 중’ 등과 같은 비유적 표현이, 기업분석의 경우 서술형 보다는 ‘영업 레버리지 효과 톡톡!’같이 단어로 종결하는 경우가 많다. 산업과 경제분석 리포트는 ‘국내 수출, 정말 나쁠까?’, ‘미국 연준의 QE3 시행 가능성은?’ 등 의문형 제목을 선택해 답을 내놓지 않음으로써 보고서를 한 번 들춰보게 하는 센스를 엿볼 수 있다.
증권업계 관계자는 “열심히 분석해 작성한 내용을 투자자들이 많이 봤으면 하는 게 솔직한 마음”이라며 “물론 보고서 내용의 질이 우선이지만 제목도 이제는 무시할 수 없는 경쟁력”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