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무늬만 외국의료기관?…“국내 영리병원 도입 위한 꼼수?” = 지난달 20일 지식경제부는 경제자유구역 내 외국의료기관 도입을 허용하는 ‘경제자유구역의지정 및 운영에 관한 특별법 시행령(이하 경자법 시행령 개정안)’을 공표했다. 오는 6월부터 외국자본 50% 이상의 상업자본이 경제자유구역에 병원을 설립할 수 있는 법적 근거가 마련된 셈이다.
곧이어 30일 보건복지부는 시행령에 따라 병원설립 기준 등 세부내용을 담은 시행규칙을 입법예고했다. 이에 따르면 경제자유구역내 의료기관 은 외국의 의사·치과의사 면허소지자 비율이 최소 10%를 넘어야 하고, 진료과마다 외국 면허자를 1명 이상 둬야 한다. 또 해외병원과 운영협약을 체결해야 하며 병원운영과 관련된 의사결정기구의 과반을 해외병원 소속의 의사로 선출하도록 규정했다.
하지만 이같은 정부 발표에 시민단체들은 크게 반발하며 즉각 시행령 폐기를 요구하고 나섰다. 지난 10년간 계속돼 온 영리병원에 대한 논쟁이 재점화된 것도 이때부터다. 시민단체들은 이번 시행령이 국내 영리병원 도입의 물꼬를 터주기 위한 꼼수라고 주장한다. 무늬만 외국의료기관이지 한국에서 허용되지 않는 국내 영리병원 설립을 사실상 허용한 것이나 다름없다는 얘기다.
나연명 보건의료노조 정책실장은 “이번 시행규칙안은 경제자유구역 내 투자개방형병원에 한정되는 법이지, 전국적으로 건강보험이 당연 적용되지 않는 영리병원을 세울 수 있도록 허가해 달라는 요구가 빗발칠 것”라고 지적했다.
이상윤 건강권실현을 위한 보건의료단체연합 정책위원도 “외국의료기관에 국내자본이 49%까지 투자할 수 있고 한국인 의사가 90%가 내국인을 진료할 수 있는 병원은 사실상 국내 영리병원”이라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복지부 관계자는 “외국의료기관은 기본적으로 경제구역에 거주하는 외국인들의 의료서비스 이용 차원에서 설립되는 것”이라며 “설립주체를 상법상의 법인으로 한 것은 자본조달을 용이하게 하기 위한 것으로 국내투자개방형 의료법인과는 성격이 다르다”고 설명했다.

국내 자본의 참여가 많다는 점도 내국인 진료를 위한 국내병원이 아니냐는 의구심을 낳게 하고 있다. 현재 가장 유력한 외국 영리병원 1호는 600병실 규모의 인천 송도국제병원. 이 병원은 일본다이와증권캐피탈과 삼성증권, 삼성물산 등이 참여한 컨소시엄이 우선협상 대상자로 선정돼 내년 착공을 목표로 사업을 추진 중이다. 이에 일각에서는 이번 개정법이 30~40% 가까이 지분 투자계획을 갖고 있는 ‘삼성’을 위한 영리병원 특혜 법안이라는 의혹까지 제기하고 있는 상황이다.
무상의료국민연대, 의료민영화저지 범국민운동본부, 보건의료단체 등 시민단체는 지난 1일 경자법 시행령 개정안 폐지를 촉구하는 결의대회를 열었다. 이들은 “정부가 편법과 꼼수로 영리병원을 도입하려는 수순을 밟고 있다”며 전보다 더욱 비판의 수위를 높였다. 이들 단체는 이번 집회를 시작으로 관련 입법예고안 철회 및 시행규칙 폐기를 위해 강력 대응한다는 방침이어서 개정법 시행까지는 적지 않은 난항이 예상되고 있다.
◇용어설명
△영리병원 vs 비영리병원 = 현재 의료법상 국내 병원들은 비영리병원이다. 비영리법인이나 의료인 개인만 설립할 수 있는 것이 원칙이다. 수익을 낼 수는 있지만 의료기기 구매나 인건비 지출 등 병원 재투자에만 쓸 수 있다. 이에 반해 영리병원은 상업자본이 병원을 세울 수 있다. 이에 따라 말그대로 기업처럼 이윤을 추구할 수 있다. 부동산에 투자하거나 각종 다른 이익사업을 벌여도 된다. 일반 회사처럼 주식을 발행해 주주들에게 배당금을 지급해도 된다. 현재 국내 비영리병원은 진료비 중 40%가 국민건강보험 적용을 받지 않은 비급여가 차지하고 있지만, 영리병원은 전체 진료가 건강보험적용이 되지 않아 일반 병원에 비해 매우 비싼 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