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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5일 삼청동 한 카페에서 만난 그는 “그런 부분이 솔직히 너무 어색했다”며 힘들었던 촬영 기간을 되뇌었다.
김효진은 “감독님께 ‘대사가 어색한 것 같다’고 말씀드리면 ‘어색하지 않게 해주세요’라고 딱 잘라 말씀하신다”면서 “그럴 때는 정말 황당하기도 하고 감독님이 얄밉기도 했고”라며 피식 웃음을 터트렸다.
‘돈의 맛’에서 김효진이 맡은 ‘윤나미’를 보자. 돈의 노예로 전락한 백씨 집안사람들 가운데 유일하게 이성적 사고가 가능한 인물이다. 집안의 비서 ‘주영작’(김강우)에겐 끊임없이 구애를 펼친다. 엄마 ‘백금옥’(윤여정)과 동생 ‘윤철’(온주완)에게 화도 내고 비난도 한다. 모든 것을 버리고 떠나는 아버지 ‘윤회장’(백윤식)에겐 유일하게 마음의 문을 열기도 한다. 물론 이 모든 장면에서 ‘윤나미’를 포함한 모든 구성원들은 감정이 통제된 일종의 로봇처럼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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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도 솔직히 김효진의 숨을 막히기 했다고. 검은색과 회색빛의 모던한 세트는 보기에 따라선 상당히 고급스러워 보인다. 하지만 그 안에서 촬영기간 동안 살아왔던 그는 “정말 감옥이 따로 없었다”면서 “인간미라고는 눈꼽만큼도 찾아보기 힘든 그 공간. 다시는 가고 싶지 않다”며 고개를 저었다.
그런 공간 속에서 ‘윤나미’로 살아오면서 ‘윤나미’의 심리를 풀어가는 것도 보통 일이 아니었단다. 이질적인 공간과 그 공간에 하나의 부속품으로 전락한 인간이 돼야 했기 때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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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봉 전 언론에 공개된 ‘돈의 맛’은 소소한 재미와 유머 코드도 가득했다. 하지만 김효진의 설명대로 결코 쉽지만은 않은 영화였다. 김효진이 말한 ‘이해가 가질 않았다’ ‘납득이 안됐다’의 말뜻을 알 수 있었다. 불편한 진실에 대한 너무도 솔직한 표현이 그에게 거부감을 일으킨 것이다. 물론 이 같은 방식은 각본과 연출을 맡은 임상수의 전매특허 아닌가. 더욱이 ‘쎈 표현’으로 정평난 그의 영화에 출연을 결정한 배우라면 노출은 안고가야 할 옵션이다. 올해 66세인 윤여정이 임 감독의 설득에 밀려 아들보다도 어린 김강우와 온 몸 열연을 펼치지 않았나.
김효진은 “노출도 신경이 쓰였지만 오빠(유지태)의 격려가 도움이 됐다”면서 “감독님 역시 알려진 데로 심한 노출을 좋아하시진 않는다. 정말 극중 필요한 장면에서 적절한 노출만 나온다”며 귀띔했다. 그럼에도 공개된 영화 속 그의 노출신은 만만치 않았다. 그는 “나보다야 두 선생님(윤여정, 백윤식)이 더 화끈할 것”이라며 크게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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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효진은 “솔직히 감독님의 이름 값이 출연 결정을 하는 데 컸다”면서 “무엇보다 감독님이 여배우들이 갖고 있는 모습과는 다른 면을 끄집어내시는 능력이 탁월하지 않나. 첫 미팅때도 나보다 더 내 장단점을 잘 파악해 오셔서 요목조목 말씀해 주셨다. 출연 결정? 망설일 필요가 있겠나”라며 말했다.
현장에선 혹독하기로 유명한 임 감독이다. 윤여정이 이번 영화 속 노출신에 대해 불편함을 토로하자 “불편하라고 넣은 장면이다”며 관록의 여배우를 한 순간에 이해시킬 정도로 타협에선 양보도 없다.
김효진은 “나도 엄청 무섭다고 들었다. 하지만 ‘돈의 맛’ 현장에선 굉장히 배우들 배려를 잘해줬다”면서 “물론 힘든 점도 있었다. 여러 가지가 있었지만 이번 영화, 콘티가 없었다. 처음에는 적응하기 힘들었지만 시간이 지나자 내 방식의 표현이 더 확대되는 느낌을 받아서 좋았다”고 설명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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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효진은 “말씀하신 대로 나에 대한 시각이 분명 달라지긴 할 것 같다”면서도 “그냥 꾸준히 좋은 시나리오가 들어오는 발판이 됐으면 한다”는 바람을 전했다.
최근 10대들의 '워너비 직업' 1순위에 꼽히는 연예인으로서만 벌써 13년을 살아왔다. 한때 여성팬들의 로망이던 유지태를 남편으로 맞아 들였다. 영화 속이긴 하지만 재벌가의 일원으로도 살아봤다. 배우라면 꿈꾸는 칸 영화제 레드카펫도 밟을 예정이다.
행복한 여자. 배우 김효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