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걸핏하면 정부정책 태클, 왜? = 지난 10일 안과의사회가 다음달 1일부터 1주일간 수술거부를 결정한 데 이어 외과·산부인과·이비인후과 의사들도 이에 사실상 동참키로 했다. 대한의사협회는 12일 이들 진료과 개원의사회 회장과 긴급 모임을 갖고 이같은 방안에 합의했다고 전했다.
의협 관계자는 “이번 주내로 각 의사회에서 이사회를 열고 결의한 뒤 내부 조율 후 오는 19일께 기자회견을 열어 공식입장을 발표할 것”이라고 밝혔다.
앞서 안과의사회는 백내장 수술 포괄수가제 강제 적용에 대한 항의표시로 7월 1일부터 1주간 백내장 수술을 거부를 선언했다다. 안과의사들은 포괄수가제 당연적용으로 백내장 수술 수가가 지금보다 10% 낮아져 나머지 6개 수술에 비해 더 큰 수익 감소가 불가피하기 때문이라고 주장했다.
의협이 복지부가 추진 중인 정책에 반대하며 대립각을 세운건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고혈압·당뇨병 환자들이 동네의원에서 관리받을 경우 진찰료 부담을 덜어주는 만성질환관리제와 의료사고 피해를 보다 신속·공정하게 구제하기 위한 의료분쟁조정제도가 지난 4월 각각 시행에 들어갔다. 하지만 반대의견을 밝혀오던 의사협회가 전면 불참 및 거부를 선언하면서 정부와 갈등을 빚어왔다.
의협은 만성질환관리제의 경우 1차 의료기관의 통제, 진료선택권 박탈 등을 이유로 반대하고 있으며, 의료분쟁조정제도에 대해선 불가항력적인 의료사고에 대한 배상금 분담과 손해배상 대불금의 비용의 강제 원천징수가 불합리하다며 법적 대응을 준비 중이다. 최근 식약청이 의약품 재분류를 통해 긴급사후피임약을 일반의약품으로 전환한 데에 대해서도 약사들의 수익 증가를 위한 위한 정치적 고려가 개입됐다는 의혹을 제기하며 반대입장을 분명히 했다.
의협의 정부의 의료정책에 대한 잇딴 반발은 노환규 신임 대한의사협회 회장의 대정부 투쟁 전략에 따른 무리수라는 지적이 일고 있다. 의원급 만성질환관리제는 전임 의협 집행부의 동의로 시행에 들어간 사항이지만 노 회장은 “복지부는 기존 합의사항과 무관하게 신임 집행부와 다시 재논의 해달라”며 반대 결정을 내린 바 있다.
◇집단행동 설득력 적어…환자 생명 담보 실력행사 비난만 = 하지만 이러한 의협의 행보는 결국 의료 소비자들에게 피해가 돌아갈 것이라는 점에서 설득력을 잃고 있다. 만성질환관리제, 포괄수가제 등은‘국민 의료비 경감’을 위한 필수불가결한 조치이기 때문이다.
지난 2월 OECD(경제협력개발기구)가 발표한 보고서에 따르면 우리나라의 2002~2009년 보건의료비 증가율은 연평균 7.7%로 OECD 평균인 3.6%의 2배에 달한다. 이에 OECD는 고혈압과 당뇨 등 만성질환에 대응할 수 있는 의료 체계를 준비해야 하며 행위별 수가제 등의 영향으로 과잉진료가 나타나는 만큼 관련 제도 개선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특히 이번에 의사들이 집단 수술 거부에 돌입하면 상당수 환자들은 ‘수술 사각지대’에서 방치될 수밖에 없다. 2000년 의약분업 이후 사상 초유의 의료대란이 빚어질 것이란 극단적 전망까지 나오는 이유다. 의협 측은 “맹장, 응급제왕 절개 분만 등 응급환자의 경우는 수술을 할 것”이라고 했지만, 국민들의 불안감은 잠재울 수 없을 것이란 지적이다.
시민단체들은 역시 비난 수위를 높이고 있다. 김준현 건강세상네트워크 환자권리팀장은 “복지부와 의료계가 사전에 충분히 이 제도의 시행여부에 대해서 논의를 해왔기 때문에 의협이 이제와서 번복하는 것은 무리”라고 지적했다.
익명을 요구한 다른 시민단체 관계자도 ""국민의 건강을 책임지는 의사들이 정부 정책에 불만이 있다고 본업인 수술을 거부하는 것은 당장의 눈앞의 수익에 급급한 이기주의로밖에 비치지 않는다" 고 꼬집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