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 칼럼]보험, 그 불편한 진실들

입력 2012-06-15 09: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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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혁 금융부장

보험의 역사는 꽤 오래됐다. 좀 과장되게 말하면 인간사회 역사와 같다. 기록에 남아있는 세계 최초 보험은 기원전 1750년 바빌로니아 함무라비 법전이다. 법전에 보면 당시에 이미 선박과 화물에 대한 임대차 계약이 존재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런 점에서 보험은 인간의 본능적이고 합리적인 경제행위의 부산물이다.

국내에서는 계(契)를 대표적인 보험으로 볼 수 있다. 위험을 십시일반으로 나누는 행위가 바로 보험의 본질이기 때문이다.

이처럼 인간사회와 함께 해온 보험이 최근 들어 수난을 당하고 있다. 금융소비자연맹이 변액보험수익률에 거품이 있다고 지적하자 소비자들이 들고 일어난 것이다. 소비자들은 “그동안 속아온 게 아니냐” 며 울분을 토로하고 있다. 이는 행동으로 이어져 변액보험을 외면하는 소비자들이 큰 폭으로 늘어났다.

비단 이번 사태 때문만이 아니라 그동안 상당수 소비자들이 보험사를 차가운 시선으로 바라본 게 사실이다. 이들은 ‘보험은 보험사만 도와주는 상품’ 이란 비딱한 인식을 갖고 있다.

색안경 끼고 보는 감독당국

왜 보험은 소비자들에게 믿음을 주지 못하는 것일까.

일단 판매 주체인 보험사에 1차적인 책임을 묻지 않을 수 없다.

보험 본질에 맞는 영업을 해야 하는데 그동안 이를 소홀히 했다. 외형경쟁을 하려다보니 팔기 쉬운 상품에 먼저 손이 갔다. 지금 문제가 되고 있는 변액보험의 경우 판매율을 높이기 위한 감언이설(甘言利說)식 마케팅도 동원됐다. 변액보험에 가입하면 높은 수익을 보장받을 수 있다고 유혹했다. ‘수익률’ 이란 단어가 주는 매력을 알기에 문제점을 알면서도 이를 남용했다. 그러면서 정작 소비자에게 고시해야 할 상품정보나 안내에는 소홀히 했다.

심지어 일부 보험사는 변액보험으로 회사 덩치를 키워나가다가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곤욕을 치르기도 했다.

감독당국도 책임에서 자유스럽지 않다.

감독당국은 일반 국민도 느낄 수 있을 정도로 보험사를 하대(下待)하는 경향이 있는 것 같다. 감독당국이 보험사를 신뢰하지 않고 함부로 대하니 소비자들은 오죽하겠는가.

보험사도 색안경을 낀 감독당국의 따가운 시선을 느끼고 있다. 사적인 자리에서 만나면 “보험사가 감독당국의 밥이냐” 며 서운함을 토로한다.

변액보험만 해도 그렇다. 감독당국 입장에선 보험사만 궁지에 몰아넣어 속죄양으로 만들 처지가 아니다. 상품이 팔리기 시작한 게 언제인데 그동안 손 놓고 있다가 사회적 이슈가 되니 난리법석(?)을 떠는가. 이제 와서 어려운 약관을 뜯어고치겠다고 하는데 전시용으로 밖에 생각이 안 된다.

감독당국과 보험사간의 관계가 이렇다보니 생산성 있는 대화나 논의가 이뤄지면 그게 이상한 것이다.

그러나 정작 중요한 것은 보험에 대한 소비자들의 인식이 변해야 한다는 사실이다. 이번 사태 이후 보험업계에서는 ‘금융당국이 소비자들의 자기책임을 인정하지 않는 것이 근본적인 문제’ 라는 볼멘소리가 나온다. 수긍이 가는 불만이다.

보험은 저축이 아니라 소비

금융당국이 소비자편에 있다는 점을 믿고 소비자는 스스로는 변하지 않은 채 보험사만 비난하는 건 성숙하지 못한 행동이다.

다시 말하지만 보험의 본질은 위험보장이다. 저축도 아니고 투자는 더 더욱 아니다. 보험은 풍요로운 인생을 설계하는 데 꼭 필요한 제도다.

이런 점에서 보험은 저축이 아닌 소비다. 선진국 소비자들은 ‘보험은 소비다’ 라는 인식을 확고히 하고 있다.

물론 저축성 기능을 아예 무시하는 건 아니다. 보험을 통해 돈을 불릴 순 있지만 이건 보험의 1차적인 목적이 아니다. 내가 낸 돈이 다 없어진다 해도 꼭 필요할 때 충분한 보상을 받으면 그걸로 충분한 것이다.

이번 기회에 보험에 대한 인식을 바꾸자.

자기에게 돌아갈 보장은 생각하지 않고 원금대비 수익률만 따지고, 중도에 해약했는데 왜 원금을 주지 않냐 불평을 하고, 가입한지 1년 밖에 안 됐는데 수익률이 왜 이 모양이냐고 불만을 터뜨리지 말자. 이런 것들은 다 보험 본질에 맞지 않는 얘기다.

성숙한 소비자가 많아질 때 보험사도 보험산업도 발전해 나갈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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