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민주화 논쟁이 뜨겁다. 얼핏 들어서는 ‘경제’에 ‘민주주의’를 합쳐서 ‘전체주의 성격의 경제’를 민주적으로 풀어내자는 의미로 들린다. 국가나 또 다른 정치권력에 의해 독점적으로 행사되는 경제를 시장에서 자율적으로 작동되도록 만들자는 지극히 자본주의적 개념으로 다가온다.
하지만 현재 대한민국에서 회자되는 경제민주화는 우리의 일반적인 인식과는 달리 부의 집중을 막고, 양극화를 해소하자는데 촛점이 모아진다. 재벌의 골목상권 침투를 막아내고, 대형마트의 의무휴업과 영업시간 제한, 재벌의 지배구조 개선 등 대기업 중심의 경제 체제를 바꾸는 데 목적을 두고 있는 듯 하다.
총선 전 시민단체들은 신년사에서 “소수 재벌과 특권층에 편중된 조세정책과 경제정책을 개선해 경제민주화를 이뤄내야 한다”면서 정치권을 압박했다.
총선에서 부터 입지를 굳혀야 했던 박근혜 새누리당 비상대책위원장도 “출총제의 보완을 고민하고 있다”면서 재벌을 개혁대상에 포함시키려는 의도를 드러냈다. 보수적 색채의 여당은 경제민주화 실현은 정강정책에 포함시키기도 했다.
개념부터 생소한 경제민주화 논쟁은 사실 헌법에서부터 시작된다.
헌법 119조 1항은 ‘대한민국의 경제질서는 개인과 기업의 경제상 자유와 창의를 최대한 존중함을 기본으로 한다’고 적시해 시장경제의 개념을 고스란히 담았다. 하지만 2항은 ‘국가는 경제 민주화를 위해 경제에 관한 규제와 조종을 할 수 있다’고 규정했다. 정부의 시장 개입과 규제를 이야기하기엔 이만한 조항이 없다. 출자총액제한, 순환출자금지, 대형마트 의무휴업과 영업시간 제한 등의 규제를 언급할 때 이 조항이 예외없이 근거로 등장한다.
하지만 모든 규제의 근거로 2항을 언급하는 건 자칫 시장경제 자체를 부정하는 오류에 빠질 수 있다는 게 전문가들의 견해다. 경제적 약자를 보호해야 하는 것은 맞지만 자칫 기업의 효율성과 경쟁력 자체를 무너뜨릴 수 있다는 것이다.
신석훈 한국경제연구원 박사는 1항과 제2항의 관계를 ‘원칙’과 ‘보완’의 관계로 설명한다. 특히 그는 “‘경제민주화’를 시장에 대한 국가 개입의 정당성을 부여하는 만능규범 처럼 인식해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다.
대·중소 기업간 ‘경제민주화’의 경우, 대기업의 경제활동 관련 기본권을 제한하는 형식으로 이루어질 것이 예상되나 이때에도 기본권 제한의 한계인 법치국가의 원리, 적법절차 원칙 등 국가권력의 남용을 통제하는 헌법 원리들은 반드시 지켜져야 한다고 말했다.
현재 경제민주화 논쟁은 시민사회단체의 거센 압박과 정치권의 입법화로 이어지고 있으며, 재계가 방어에 나서고 있는 형국이다. 이 와중에 절충점은 찾아보기 힘들다. 한국경제의 대외여건과 현재 위기의 상황들도 무시되고 있다. 시장경제를 통한 기업활동의 효율성이 저하되고 국가경쟁력이 약화되는 기로에 있다는 목소리도 들린다.
전문가들은 결국 경제민주화는 개념을 떠나 시장개입의 정도의 선을 국가나 정치권이 얼마나 효율적으로 긋느냐에 따라 달라진다고 보고 있다. 민주화라는 ‘명분’에 집착하다 보면 경제 본연의 역할을 해칠 수 있다는 게 대체적인 의견이다. 이번 호에서는 국내에서의 경제민주화 논쟁과 그 실효성, 해외 사례, 향후 대안적 논의구조가 정착될 수 있는 내용들을 담아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