맞다. 일명 ‘거꾸로’퍼터다.”
헤드 중심이나 힐쪽이 아닌 토쪽에 샤프트를 단 퍼터가 선보여 눈길을 끈다. 영국골프협회(R&A)가 공인한 퍼터다. 특허까지 냈다. 누가 만들었을까.
남의 눈치 안보고 원 없이 골프를 치는 사람의 상상력으로 탄생했다. 프로골퍼 양찬국(62)의 작품이다. 브랜드는 ‘양사부Y퍼터’다. 7월초 출시한다.
그는 눈뜨고 눈감을 때까지 골프만 한다. 24시간 골프와 산다. 잠도 하루 4시간이 고작이다. “오전 4시30분에 일어나 5시에 스카이72 바다코스에서 신입캐디교육을 합니다. 오전9시부터 오후 4시30분까지 아마추어 골퍼 레슨을 하고서 밤 10시쯤 퇴근하죠. 새벽에야 잠을 청합니다.” 주중에는 18홀을 돌고 주말에는 무조건 36홀이다. 스카이72GC(대표이사 김영재) 헤드프로겸 골프다이제스트 골프아카데미 총괄원장을 맡고 있다.
그가 클럽을 잡은 것은 1970년 월남전이후다. 집은 살만했다. 할아버지가 3선의원이었으니까.
“베트남 지원요? 아버지(양성덕·93·미국거주) 몰래했죠. 30도를 오르내리는 밀림속에서 총격전을 벌이다가 불행히도 오른다리 뒤쪽 종아리에 총탄을 맞았어요. 57일 동안 병원신세를 졌죠. 관통하지 않아 살아남은 것이 천운(天運)이라고 의사가 말하더군요.”
이 때문에 아직도 쌀국수를 못 먹는다. 헬리콥터만 보면 얼굴색이 변하고 자신도 모르게 고개를 숙인다. 일종의 전쟁 ‘트라우마’다.
제대후 집안에 틀어박혀 있는 그를 부친은 골프연습장으로 데려갔다. 1974년 일이다. 서울에 연습장이 4~5개밖에 없을 때. 하루종일 볼을 쳤다. 그해 6월에 머리를 얹었고 4개월17일만에 리베라CC(구 관악)에서 81타를 쳤다. 에머슨CC(구 중앙)에서 친 5언더파 67타가 베스트 스코어다.
부친을 따라다니면서 친구들과 내기골프를 했다. 당시만해도 그린피가 3000원, 캐디피가 200원 하던 시절이다. 그런데 내기는 1타당 1000원짜리였다. 어느 날 부친의 친구들이 그를 골프장에 데리고 오지 말라고 했다. 그래서 1980년 미국으로 건너갔다. 본격적인 골프를 해보고 싶어서. 미국 캘리포니아주 샌프란시스코에 터를 잡았다. “가자마자 내기를 했는데 18홀에 100달러나 땄어요. 미국 하루 최저임금이 2달러 75센트였으니까 엄청난 돈이었죠. 클럽도 변변히 않은 것을 보고 덤벼들은 것 같아요. 이때 친분을 쌓은 사람들과 아직도 연락을 주고 받고 있습니다.”
체계적으로 골프를 다듬은 뒤 미국에서 프로자격을 땄다. 대기업 한국 지사원들의 레슨은 도맡아 했다. 한인방송에서 ‘양사부의 골프세상’을 진행했다. 신나는 것은 주말에 한인들이 친 골프 타수를 공개하고 그들의 골프이야기를 재미있게 풀어간 것.
사실 그는 기본적으로 골프를 잘한다. 무엇보다 장타자다. 1999년 스페인에서 열린 월드골프티쳐스컵 대회에서 312야드가 공인 드라이버 거리다. 지금도 평균 250m는 날린다. 타수는 18홀에 75타를 넘기지 않는다.
그는 그립이 독특하다. ‘베이스볼(내추럴) 그립’을 한다. 그런데도 잘 치는 이유가 궁금했다.
“골프요? 나이가 들면 순응할 줄 알아야 합니다. 몸은 굳어지고 근력은 떨어지는데 타이거 우즈 같은 스윙을 따라하니까 잘 맞을리가 없죠.”
그의 티칭 철학은 이렇다.
가장 중요한 것은 ‘배워야겠다는 생각이 강해야 한다’는 것. 그래야만 제대로 가르치고, 습득이 빠르다는 얘기다. 돈내고 배우면서 왜 자기자랑만 실컷하는지 알수 없다고 한다. 기술을 체득하러 와서는 어디서 보고 들은 골프이론만 장황하게 늘어놓으면 도대체 뭘 배우겠다는 것인지 알 수가 없다고 했다.
그는 기술을 교습도하면서 화나는 것이 있다. 도대체 티칭프로를 우습게 안다. 아마추어는 물론 토너먼트 프로도 마찬가지다. 미국에서는 티칭프로를 존중한다. 가르치는 것과 볼을 쳐서 점수를 내는 것은 엄연히 다르기때문이다. 그런데 국내에서는 잘 인정을 안 해주는 것이 안타깝다고 했다.
“세월의 흔적을 막을 수가 있나요. 나이가 들면 급격하게 변화가 오는 것이 바로 스윙이죠. 유연성이 떨어지니 부자연스러울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면 스윙을 플래트하게 변화를 줘 보는 겁니다. 어깨대신 등을 돌려보고, 자세를 조금 낮춰 턱 밑으로 오른팔을 던져 스윙스피드를 내보는 방법도 있죠. ‘왕년의 내’가 아니라 ‘지금의 내’가 중요하다는 뜻이지요.”
이런 레슨법이 통했다. 골프전문채널 J골프에서 시니어 대상으로 인기를 끌었던 ‘양찬국의 노장불패’를 방송했다. 노(NO) 대본, 노 코디, 노 분장. 모든 것을 스스로 했다.
“주니어나 젊은 프로들은 진행형이죠. 하지만 시니어는 복습형입니다. 이미 배운 것을 반복하면 돼요. 알고 있으면서 못했던 것을 즐겁고 재미있게 연습하면서 기량을 늘리면 스코어는 자연히 줄어들게 된다는 겁니다.”
그는 2009년 그동안 길러낸 4000명 제자 중 168명을 초대해 함께 라운드를 했다. 이순(耳順)잔치였다. 고희(古稀) 이벤트는 2019년에 한다. 300명을 초청해 드림레이지에서 원포인트 레슨을 한 뒤 라운드를 할 계획이다. 돈을 받고 레슨을 했으니까 되 돌려주겠다는 것이다.
내기골프에서 이기는 법을 물었더니 “밑천이 두둑하면 이겨요”하며 웃는다. “‘내기꾼’ 말고요”하자 “연습장가서 땀 흘리고, 라운드 중에는 절대 술이나 포만감이 들 정도로 먹지 말것”을 주문했다.
장타에 대해서는 “하체는 주니어나 젊었을때 고정하는 것입니다. 스웨이를 막고 몸을 움직이면서 치면 편해지죠. 야구선수가 볼을 때리듯 해보세요. 또 기술이 늘면 이론도 그만큼 무장을 해야 합니다. 80타를 치면서 100타의 기술이론을 갖고 있으면 멋진 장타가 나올 수 없겠죠.”
그는 레슨을 참 편안하게 잘한다는 것이 주변의 평가. 얼마전 티칭 프로들을 모아놓고 교수법도 전수했다. 호평을 받았다. 틈나는 대로 그는 기업체 임원을 대상으로 단체특강도 한다.
그도 이루고 싶은 것이 있을까.
지난해 그는 한국프로골프협회 프로자격을 획득했다. 그리고 지난 4월 챔피언스 투어 시드권을 따냈다.
“국내 시니어 챔피언스 투어가 10개입니다. 5, 6월에 나갔는데 성적이 안 좋았습니다. 상금이 걸려 있으니 역시 다르더군요. 반드시 한번은 올해안에 우승해야죠.”
7월 10, 11일 이틀간 용인 프라자CC에서 챔피언스 투어가 열린다. 그가 우승컵을 손에 쥐는 것을 볼 수 있을지 궁금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