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경원의 여의도1번지]‘나쁜 원칙’무노동 무임금

입력 2012-06-26 08: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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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경원 정치팀장

19대 국회를 보면서 무협지 중 군계일학인 ‘영웅문 시리즈’가 떠오른다. 영웅문은 1980~1990년대에 커다란 인기를 끌었다. 1부 사조영웅전, 2부 신조협려, 3부 의천도룡기로 전개되는 영웅문은 각각 6권씩 모두 18권으로 구성돼 있다. 서로 다른 특징을 갖고 있어 중독성이 강한 책이다.

영웅문 중 3부에서 소년 ‘장무기’가 몸에 부상을 입은 상태에서 약속을 지키는 과정은 눈물겹기까지 하다. 어린 ‘양불회’를 아버지에게 보내달라는 부탁을 받은 장무기는 온갖 고초를 겪으면서 임무를 완수한다. 그는 ‘남아일언 중천금’을 실천했다.

여의도 정치를 보면서 영웅문이 떠오른 이유는 책 전반을 꿰뚫고 있는 ‘남아일언 중천금’이라는 표현 때문이다. 즉 한 번 말한 것은 반드시 지킨다는 내용이다.

이런 내용이 “약속은 실천하고 지켜야 한다”는 새누리당 박근혜 전 비대위원장의 이미지와 겹쳐진다. 그는 비박(非박근혜) 대선주자들이 아무리 흔들어도 약속을 지키겠다는 의지를 보여줬다. 경선 룰을 바꾸지 않은 것이다. 앞서 세종시 원안 수정 논란이 일었을 때도 “원안을 유지해야 한다”며 민생과 신뢰를 강조하기도 했다.

박 전 위원장의 기조는 새누리당 정책의 중심을 관통하고 있다. 새누리당은 최근 6대 쇄신안을 내놨다. 제일 먼저 ‘무노동 무임금’부터 시작했다. 연로회원지원금 제도개선 태스크포스(TF) 팀장을 맡은 이철우 의원도 국회의원 연금제도 개선안 마련에 착수했다. 국회의원 특권 폐지 작업의 일환이다.

이번 쇄신안 실천 과정에서 무노동 무임금은 잘 이해가 가질 않았다. 새누리당 의원 150명 중 147명이 세비를 반납했다. 국회가 개원하지 못했다는 이유에서다. 하지만 그 기간에 새누리당 의원 41명은 82건의 법안을 국회에 제출한 걸 확인했다.

국회의원의 중요한 업무 중 하나는 법안을 만드는 일이다. 그런데도 개원을 못했다는 이유로 일을 안했다는 게 지도부의 생각이었다. 개원이 안 된 원인은 여야 원내대표와 원내수석부대표가 협상력을 발휘하지 못한 탓이다. 모든 국회의원의 잘못이 아니다.

새누리당이 세비를 반납한 지 벌써 한 주가 지나가고 있다. 오는 29일쯤에 ‘원포인트 본회의’ 개최도 염두에 두고 있다. 아직 국회가 개원하지 못한 점을 감안하면 다음달 20일에 새누리당 의원들은 또 세비를 반납해야 할 판이다. 무노동 무임금 원칙을 지키기 위해서다.

기자가 민주당 의원이라면, 당분간 협상테이블에 앉지 않을 것 같다. 개원 협상이 늦어질수록 새누리당 의원들의 수입이 줄어든다는 판단에서다. 다급해진 새누리당 지도부가 민주당에 유리한 협상안을 들고 나오지 않을까?

자신이 ‘한 말을 지키는 것’도 중요하지만 ‘할 수 있는 말을 내뱉는 것’이 필요하다. 국회에서는 지킬 수 있는 말이 넘쳐나야 한다. 단순히 ‘말의 향연’이 아니라 ‘실천 가능한 말’로 가득차길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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