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문화 사회 현주소]중구난방 예산 집행에 다문화정책 실질 수혜자 단 5%

입력 2012-06-28 09: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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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원법도 문제 많아

2000년 결혼이주여성이 한국 사회에 처음 등장한 이래 다문화가정 역사는 10여년에 이른다. 이들을 위한 정책이 본격적으로 시작된 것은 참여정부 시절인 2006년. 다문화가정 지원법이 마련된 것은 2008년이다. 뒤늦게 마련된 정책과 지원법에서 알 수 있듯 부처별로 각자 사업을 진행해 경험의 축적과 전수가 잘 이뤄지지 않는 점, 매년 중복되는 예산이 문제로 지적되고 있다.

▲한국어가 익숙치 않은 이주여성들을 위해 경찰청과 지역 다문화가정센터가 운전면허 필기시험을 돕고 있다.
◇ 느는 예산만큼 중복되는 다문화가정 사업 = 지난해 7월 국회 소회의실에서 열린 ‘외국인 근로자 및 다문화 예산 정책 토론회’에서 중점적으로 논의된 것은 부처별 예산 중복 문제였다. 다문화가정 관련 예산은 2011년 865원에서 2012년 925억원으로 60억원 늘었다. 올해도 예산이 늘었지만 효율적으로 사용되지 않고 각 부처에서 중복되는 사업 남발로 낭비되고 있었다.

이주여성을 위한 한국어 교육은 여성부의 다문화가정지원센터와 법무부의 사회통합지원프로그램에서 동시에 진행되고 있다. 각 지자체는 또 개별적으로 한국어 교실을 운영한다.

이주여성에게 취업의 기회를 주는 언어강사 양성 프로그램도 여성부(언어영재교실)와 교육부(이중언어강사양성 방안)에서 진행하고 있다. 여성부와 교육부는 이 사업을 위해 올해만 각각 12억7000만원, 2억여원의 예산을 배정받았다.

이주여성을 위한 콜센터 역시 부처마다 따로 개설했다. 여성부는 다누리콜센터(1577-5432)와 이주여성 긴급전화(1577-1366)로 상담을 받고 있다. 법무부는 외국인종합 안내센터(1345)에서 외국인 비자신청·출입국 상담뿐 아니라 다문화가정 상담을 받고 있다. 고용노동부는 안산 외국인 지원센터를 폐쇄하고 15억원을 들여 콜센터(1350)를 운영해 외국인 근로자와 이주여성의 고용관련 상담을 진행하고 있다.

안대환 한국이주노동재단 이사장은 “부처별로 협조해야 하지만 예산 집행을 위해 경쟁적으로 사업을 벌이는 것이 문제”라며 “외국인 콜센터를 일원화하고 119와 연계해 외국인근로자, 다문화가정 등을 위한 상담을 체계적으로 해야 한다”고 말했다.

현장 전문가들은 이같은 문제의 원인으로 총괄부서의 부재를 꼽고 있다. 다문화가정 정책을 총괄해 부처별로 사업을 조정하는 총괄기구는 없다. 여성부가 주무부처이지만 부처별로 다문화사업을 기획해 기획재정부에 예산을 배정받아 따로 진행하고 있다. 조정기구가 없고 부처별로 소통도 안 되다 보니 다문화가정 정책과 예산 집행이 중구난방으로 이뤄진다는 것이다.

정기선 이민정책연구원 연구실장은 “부처별 사업 중복은 총리실에서 그나마 관리를 해 나은 편이지만 광역, 기초자치단체로 내려가면 중복 정도가 더 심하다”며 “현재 총리실과 같이 다문화가정 정책을 통합적으로 관리하는 컨트롤 기구가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다누리센터 언어강사양성.
◇ 지원 사각지대는 혜택받기도 힘들어 = 다문화가정 지원이 특정계층에게만 반복돼 수혜 사각지대를 위한 맞춤 정책이 시급하다는 지적도 나온다.

이주민지원단체전국연합회에 따르면 가장 많은 예산을 집행하고 있는 여성부의 다문화가정지원센터의 혜택을 받은 비율은 2011년 기준 전체 이주여성의 약 21%뿐이다. 한국이주노동재단이 추산한 다문화정책 실질 수혜자는 2~3만여명에 불과하다. 이는 다문화가정 구성원 57만명(2011년 기준) 의 5%에 불과하다. 경제활동을 하지 않는 이주여성은 소수다. 지원 프로그램을 운영하면 주로 이들이 반복적으로 서비스를 받는다.

서울의 한 다문화가정지원센터 관계자는 “이주여성 시어머니들은 며느리가 외부활동 하는 것을 꺼리는 경우가 많고 대부분 일을 하기 때문에 주중에 시간을 내기 힘들다”고 말했다.

여성부가 조사한 ‘2009년 전국 다문화 가족 실태조사 연구’ 결과를 보면 여성결혼이민자 중 현재 일하는 비율은 36.9%, 과거에 일했던 사람까지 포함하면 59.1%로 절반이 넘는다. 농촌에서 농사일을 돕는 경우는 통계에서 제외됐다. 농사일을 포함하면 실제 일하는 이주여성의 비율을 80~90%에 이를 것으로 한국이주노동재단은 추정하고 있다.

이렇듯 대다수 이주여성들은 지원 프로그램을 수강할 시간도 없고 정보를 얻는 통로도 제한돼있다. 한국어가 서툴기 때문에 인터넷이나 공고를 참고하는 대신 알음알음 소개로 프로그램에 참여한다. 현장 전문가들은 이처럼 사각지대에 놓인 이주여성을 위한 맞춤 서비스가 필요하다고 입을 모은다.

또 다문화가정 지원 현황 정보가 공개되지 않고 부처별로 교류하지 않고 있는 상황도 이같은 상황의 원인으로 꼽았다.

모경환 서울대 사회교육과 교수는 “근본적인 문제는 누가 어떤 지원을 받는지 관리가 안 되고 현황 자료가 있어도 부처별로 정보교류가 안 되는 것”이라고 꼬집었다.

정기선 이민정책연구원 연구실장은 “최근에 법무부가 정보공개를 통해 여성부의 다문화지원센터로 이주여성 정보를 넘기는 등 나아지고 있지만 이주여성의 지원 현황 시스템을 마련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정 실장은 “이주여성들이 여러 프로그램을 반복적으로 참여하는 것을 문제 삼는 것이 아니라 참여 실태가 이뤄지지 않고 있다는 점이 문제”라며 “지원이 시급한 사람이 누구인가, 이들을 어떻게 지원할 것인가에 대한 논의가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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