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대표는 충남 논산에서 1948년 소농의 아들로 태어나 서울 경복고와 서울대 법학과를 졸업했다. 이후 사법고시에 합격해 대전지법 판사로 법조인 생활을 시작한 뒤 변호사 생활을 하면서 노동계 문제에 관심을 가졌다.
정계에 첫발을 내딛은 것은 1987년이다. 당시 통일민주당의 중심에 있던 김영삼 전 대통령과 인연을 맺으면서 부터다. 13대 국회의원으로 정치권에 입문한 이 대표는 당시 노무현 의원과 함께 국회 광주민주화운동 진상조사 특위 청문 위원으로 활약하며 ‘국감 스타’로 떠올랐다.
그는 1993년 문민정부에서 최연소인 45세 나이로 노동부 장관에 오른데 이어 1995년 민선 경기지사를 지내는 등 탄탄대로를 걸었다. 당시에는 최고의 차세대 정치 유망주로 주목을 받았다.
1997년 대선은 그의 정치 인생에서 최대의 분기점이었다. 신한국당 대선후보로 당시 이회창 후보에게 패한 뒤 국민신당을 창당해 대선에 도전한 그는 2002년 대선에서 다시 동교동의 전폭적인 지원속에 출마했지만 당시 노무현 후보에게 고배를 마셔야 했다.
자민련, 국민중심당을 거쳐 2007년 민주당에 복당한 그는 제17대 대통령 선거 출마를 선언, 당내 경선에서 승리해 후보로 결정됐다. 하지만 이회창 후보가 무소속으로 등장하면서 다시 한번 대선 패배를 경험했다.
이후 무소속으로 활동하던 그는 2011년 통합 자유선진당에 입당, 지난 4·11 총선에서 6선에 성공했다. 각종 정치적 위기 속에서도 끝내 국회에 입성한 그에게는 '피닉제'(불사조를 의미하는 피닉스와 이인제의 합성어)라는 별명이 붙기도 했다. 탈당, 입당, 복당으로 점철된 그의 행보는 10차례 당적 변경이라는 진기록을 남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