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극장 개봉 전 영화 담당 기자 대상 시사회가 열렸다. 재난 영화라는 ‘핸디캡’ 때문일까. 문정희는 “조마조마했다”며 당시 심경을 전했다. 다행스럽게도 영화는 잔재미와 같은 장르에선 느낄 수 없는 현실감으로 보는 이들의 몰입도를 높였다.
그는 “재난 영화라면 비주얼의 압도 또는 스토리의 탄탄함 둘 중 하나는 분명히 가져가야 하는데 다행스럽게도 ‘연가시’는 후자의 비율이 높았다”면서 “김명민이란 걸출한 배우와 김동완과 이하늬 같은 믿음직한 후배들이 너무 잘해줬다. 나야 뭐 한 게 뭐 있나. 물만 마셨지”라며 겸손해 했다.

문정희는 “출연 배우들 중 내가 맡은 역은 가장 동선이 짧다. 반면 연기의 진폭은 가장 크다”면서도 “유일한 감염자 역할이다. ‘재혁의 고군분투에 정당성을 부여하기 위해 경순은 그런 모습이어야 한다’는 감독의 설명을 듣고 이해가 갔다”고 전했다.
하지만 영화 속 문정희가 맡은 경순은 그의 이미지를 단 번에 깨버린다. 이른바 ‘스위치 연기’로 벌써부터 영화팬들의 입소문을 타고 있다. ‘연가시에 감염된 환자는 물에 대한 욕구가 강하다’는 설정 상 촬영을 하면서 엄청난 물을 들이켰다. 그 모습이 흡사 좀비를 연상케 할 정도다. 실제 자신의 촬영 분 가운데 물을 들이키는 체육관 장면 촬영에선 커다란 생수통 6명을 마셨단다. 공교롭게도 영하의 한 겨울이었다.
그는 “아마도 평생 먹을 물을 다 마셨을 것이다”면서 “그 커다란 생수통을 들이키는데 코로 물이 쏟아져 들어와 정말 죽는 줄 알았다. 그런데 감독님이 ‘컷’을 안 해 미치겠더라. 나중에 ‘껄껄걸’ 웃으며 달려는데 너무 얄밉더라”며 입을 삐죽인다. 당시 물에 젖은 옷이 그대로 얼어붙어 고생도 이만저만이 아니었다고. 얼어붙은 옷이 갈라지는 소리가 동시녹음으로 잡힐 정도였단다.

문정희는 “‘감염자’ 역할이다 보니 참고할 만한 데이터가 전혀 없었다”면서 “결국 본 촬영 전 수십 번의 테스트를 통해 영화 속 경순의 캐릭터를 잡아나갈 수밖에 없었다. 머릿속에 스위치가 있다고 생각하고 물을 보면 자동적으로 그 스위치가 켜진다고 스스로 설정했다”며 웃는다.
영화 처음부터 끝까지 주야장천 뛰고 또 뛰는 김명민의 고생도 피부로 와 닿지만, 문정희의 고생도 엄청났음이 느껴졌다. 하지만 그는 “몸이 힘든 건 의외로 별로 없었다”면서 “장면 장면에 대한 표현이 너무 어려웠다”고 하소연했다. 문정희는 “시나리오를 보면 경순의 경우 대사가 몇 마디 없다. 반면 해당 장면을 설명하는 지문만 매 장면마다 한 페이지가 넘었다”면서 “오히려 세세한 부분까지 지문으로 묘사 해놔서 너무 신경이 쓰였다”며 고개를 저었다.
가만히 듣고 보니 참 독한 면이 있는 것 같았다. 인터뷰 초반 참한 모습이 인상적이었는데 시간이 지날수록 강한 포스가 느껴져 왔다. ‘참 독한 것 같다’는 말에 “내가 생각해도 그런 것 같다”며 맞장구를 쳐준다.

문정희는 “아마 그때는 미쳐있었던 것 같다”면서 “지금 다시 하라고 하면 절대 못한다. 그런데 나도 ‘천생배우’인가 보다. 너무 힘들고 끙끙 앓다가도 촬영장만 나오면 힘이 펄펄 난다”며 너털웃음이다.
올해 초 한가인의 소속사로 옮긴 문정희. 일부 언론을 통해 ‘첫사랑의 아이콘 두 명이 만났다’는 기사가 나왔다. 그는 “‘연가시’도 ‘건축학개론’ 만큼은 터지면 좋겠다”면서 “아직 가인씨와 직접 만나본 적이 없다. 조만간 만날 예정인데 흥행 기운을 듬뿍 받아야겠다”며 웃는다.
최근 여배우들의 노출 연기가 대세다. 노출에 대한 생각을 묻자 “정말 고민될 것 같다. 거리낌은 없지만 작품만 좋다면 정말 심각하게 고민해 볼 것 같다. 근데 내가 벗는다면 많이 들 보러 와 주실까”라며 진지한 표정을 짓는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