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퇴를 준비하면서 가장 저지르기 쉬운 실수 가운데 하나는 경제적인 측면에만 관심을 가지는 것이다. 물론 경제적 여유가 없다면 돈에 쪼들려 하고 싶은 일을 제대로 할 수 없다. 하지만 여러 연구에서 만족스러운 은퇴생활을 하는 데 있어 돈이 차지하는 비중이 생각보다 크지 않는 것으로 밝혀졌다. 은퇴 생활의 만족감은 경제적인 측면 뿐만 아니라 개인적인 성장, 동료나 가족 관계 등 경제 외적인 측면이 더 큰 영향을 준다. 오히려 친구가 없거나 마땅히 할 일이 없는 생활의 지루함, 변화에 대한 부적응 등이 부족한 자산보다 은퇴자들에게 더 좋지 않은 영향을 끼친다는 연구결과도 있다.
만일 기대수명이 80세이고 60세에 은퇴한다고 가정해보자. 매일 8시간 자고, 3시간 밥 먹고, 2시간 볼 일을 보면 나머지 11시간은 자유시간이다. 이를 모두 합치면 은퇴 이후 총 8만 시간의 자유시간이 생긴다. 다가오는 100세 시대를 고려한다면 은퇴 이후의 자유시간은 무려 16만 시간으로 대폭 늘어난다. 은퇴 이후에 맞이하는 도전은 이 ‘막막한 자유 시간’이라고 할 수 있다. 현역시절에는 출근과 업무, 점심시간과 퇴근 등 일련의 스케줄이 정해져 있었지만 은퇴 이후에는 아무도 이를 통제해주지 않는다. 이를 ‘누구와 어디서 어떻게 그려가야 할 것인가’가 은퇴 설계의 주된 줄거리라고 할 수 있다. 이때 기준으로 삼아야 할 주제는 바로 조화와 균형이다. 은퇴 후 삶의 행복은 가족, 취미나 여가, 건강, 사회활동 등이 조화롭게 균형을 이룰 때 비로소 찾아온다.
첫째, 가족은 은퇴 이후 최고의 친구이다. 은퇴 이후에는 사회 활동이 줄어드는 대신 부인이나 자녀 등 가족과 지내는 시간이 늘어나게 된다. 함께 있는 시간이 많아지면 오히려 전에 없던 갈등이나 문제가 생길 수도 있다. 특히 평생을 회사에서 보내면서 ‘회사형 인간’으로 살아온 남편이 부하 직원에게 업무 지시를 하듯 부인이나 자녀에게 이야기하다 보면 오해와 갈등이 발생할 수도 있다. 가족과 원만한 관계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은퇴 전부터 잔소리가 아닌 대화를 나누는 연습이 필요하다.
둘째, 건강은 무엇보다 중요하며 행복한 은퇴 생활의 밑바탕이 된다. 일반적으로 나이가 들면 건강이 약화될 가능성이 높다. 따라서 꾸준한 운동과 적절한 의료서비스를 통해 건강을 유지하고 활발한 노후 생활을 최대한 길게 연장해야 한다.
셋째, 해서 즐거운 사회 활동은 은퇴 생활을 행복하게 하는 중요한 열쇠이다. 은퇴 이후의 일은 단순히 경제적인 도움이 될 뿐만 아니라 삶의 보람과 역할에 대한 만족감을 준다는 점에서 매우 중요하다. 또 일을 통해 사회적 관계를 유지해 나갈 수 있다.
넷째, 자신에게 맞는 취미와 여가활동은 노후를 풍요롭게 만든다. 노후에는 의무적인 일에서 벗어나면서 여가시간이 대폭 늘어나게 된다. 풍부롭게 주어진 여가시간을 어떻게 보내느냐는 큰 과제가 되고 있다. 이 시간의 대부분을 텔레비전 앞에서 허비한다면 은퇴생활은 지루해질 수밖에 없다. 적절한 여가활동은 건강을 증진시켜주며 삶의 질을 높이고 생활의 만족감을 안겨 준다.
끝으로 다섯 번째는 부와 소득이다. 은퇴 이후의 삶을 온전히 즐기기 위해서는 적절한 생활자금을 미리 만들어두어야 한다. 이때 생활자금은 부동산이나 거액의 목돈보다는 매월 얼마씩이라도 일정하게 받을 수 있는 현금흐름(Cash Flow)이 유용하다. 부동산이나 거액의 목돈은 바로 현금화하기 불편할 뿐 아니라 관리의 어려움도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연금 자산을 충분히 확보해야 한다.
현역시절 모범적으로 살았던 사람들이 오히려 은퇴생활에서 실패하는 것은 은퇴 이후에도 많은 일들이 기다리고 있을 것이라 생각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막상 은퇴생활에 접어들면 현실은 그렇지 않다. 은퇴생활을 잘 꾸려가는 것이 바로 자신의 능력과 준비에 달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