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계 "살아남아야 한다"…부채 줄이고, 현금 확보 총력전

입력 2012-07-24 11: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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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계 경영위기, 이렇게 극복한다]②재무보수성 강화

▲전세계적인 철강산업 불황으로 포스코는 올해 투자비를 전년대비 26% 줄인 4조2000억원 수준으로 축소조정했다. 포스코 현장 직원이 근심스러운 표정으로 쌓여가는 재고를 쳐다보고 있다.(사진=연합뉴스)
박재완 기획재정부 장관은 지난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를 ‘태풍’에, 최근의 경제위기를 ‘장마’로 표현했다. 최근의 경영위기가 매우 길고 지루하게 이어질 것이라는 비관적 전망이라는 뜻으로 해석할 수 있다.

기업은 ‘돈(자금)’으로 움직인다. 기업에게 자금은 인체의 혈액과 같다. 혈액순환이 원활해야 신체가 건강한 것처럼 기업 자금이 원활하게 순환돼야 건강한 기업을 만들 수 있다.

특히 최근처럼 대내외 경영환경의 악화가 장기화 되는 경우는 더욱 그렇다. 이에 따라 기업의 재무담당부서는 막강한 권한을 행사한다. 재무담당부서를 중심으로 한 최고경영진은 위험을 감수한 투자보다는 안정적 수익창출과 현금확보를 위한 재무계획을 수립한다.

결국 재무건전성 확보가 영속기업의 가장 중요한 요건으로 자리매김하게 되고, ‘재무건전성’은 ‘재무보수성’이라는 이름으로 탈바꿈해 경영전략의 최우선 순위가 되고 있다.

◇부채비율↓·유동성↑= 국내 대형 건설사 자금담당 임원인 손 모씨는 “최근 경영환경을 보면 ‘강한 자가 살아남는 것이 아니라, 살아남은 자가 강한 것’이라는 말이 무색하지 않다”고 말했다.

유럽에서 시작된 세계경제위기가 장기간 지속될 것으로 예상되면서 ‘생존’이 가장 큰 화두가 됐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기업이 존속해야 투자, 고용창출, 사회공헌 등 사회가 원하는 기업의 역할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기업들은 유동성을 최대한 확보하고, 부채비율을 최소한으로 낮추기 위한 전략수립에 한창이다.

정갑영 연세대 총장은 “장수기업의 비결은 재무구조 건전성에 있다는 연구는 수없이 많다”고 누차 강조했다.

재무구조가 튼실해야 위기 상황에서 ‘다각화’ 또는 ‘집중화’ 등 다양한 대처방안을 마련할 수 있기 때문이다. 또 자금이 원활하게 순환돼야 우수인재를 확보하고, 설비투자 및 연구·개발(R&D)도 지속적으로 확대할 수 있다.

재계는 이에 따라 보수적인 재무계획을 수립, 자산 매각과 회사채 발행 등을 통해 현금성 자산을 최대한 확보한다는 전략이다.

현금성 자산을 늘리면 재무제표 상의 부채비율이 하락하고 유동성이 올라가게 된다. 이렇게 되면 위기상황에서 버틸 수 있는 체력이 비축될 뿐만 아니라 추후의 회사채 발행이나 금융권으로부터의 차입이 원활하다는 효과를 거둘 수 있다.

하지만 기업의 이같은 현금확보 총력전에 대해 부정적인 시선도 존재한다. 정치권이나 정부에서 일부 대기업들이 현금을 쌓아놓기만 하고 시장에 풀지 않기 때문에 내수경기도 침체된다는 논리에서다.

재계 관계자는 “보유현금이 지나치게 많아지다 보면 자기자본이익률이 감소해 수익성 지표가 나빠지는 부작용도 있는 것은 사실”이라면서도 “위기상황에서의 생존과 위기 이후의 상황을 내다본다면 재무계획을 보수적으로 잡을 수밖에 없는 것이 현실”이라고 강조했다.

◇“필요 없다면 팔아라”= 국내 대표 통신기업인 KT는 자회사들의 지분 매각을 검토 중이다.

지난 23일 KT는 해저케이블 공사 전문 자회사인 KT서브마린에 대한 지분매각을 검토 중이라고 공시했다. 장기적인 재무구조 개선과 자금확보가 목적이다.

또 비씨카드 지분도 매각을 검토 중인 것으로 전해졌으며, KT캐피탈의 유상증자와 KT테크의 매각 재추진 등 현금확보를 위한 노력을 전방위적으로 실시하고 있다.

KT그룹 고위 관계자는 “노조와의 협의 등 선결과제가 있기는 하지만 그룹 재무구조 개선과 향후 네트워크 투자자금 확보 차원에서 다각도로 검토 중”이라고 설명했다.

포스코는 이미 SK텔레콤, KB금융, 하나금융지주 등 보유지분 일부를 매각해 현금화했다. 또 대우인터내셔널의 자회사 매각을 지속적으로 추진하고, 교보생명 지분매각도 추진한다는 계획이다.

결국 그룹 전체의 재무구조 개선을 위해서는 불필요 자산을 정리, ‘선택과 집중’의 논리에 따른다고 볼 수 있다.

재무계획을 보수적으로 정하면서 투자 축소와 M&A 시장 진입도 자제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SK네트웍스는 3600억원 규모의 호주 석탄개발 전문회사인 코카투를 인수하려던 계획이 이사회에서 부결되면서 기업 인수에서 한 발 물러섰다. 이사회에서 인수안을 부결시켰기 때문이다.

포스코는 올해 투자비를 전년대비 26% 줄인 4조2000억원 수준으로 조정했으며, 연초 계획보다도 3000억원 가량 더 줄었다. 재계 관계자는 “포스코의 투자계획은 철강업계 뿐만 아니라 재계 전반의 관심이 높았던 대표적인 투자지표였다”며 “포스코의 투자비 축소는 상징성이 있다”고 설명했다.

이는 비단 포스코의 문제는 아니다. 한국거래소가 최근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상장기업의 올해 신규시설 투자는 지난해에 비해 71%나 급감하는 등 지출을 최소화하는 것이 오늘날 우리 기업들의 현주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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