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정유업계가 내우외환에 시달리고 있다. 안으로는 대규모 영업손실 등 실적악화가, 밖으로는 석유혼합판매허용 강행 등 정부 기름값 압박이 정유업계를 안팎으로 옥죄고 있다.
30일 정유업계에 따르면 올 2분기 국내 정유사들은 실적악화를 면치 못하고 있다. 특히 국제유가 하락으로 인한 정제마진 악화로 정유사 대부분이 적자로 전환하면서 정유업계에 비상이 걸렸다.
국내 1위 정유사인 SK이노베이션은 2분기 10년 만에 처음으로 적자 전환했다. 매출은 전년 동기 대비 10% 증가한 18조8774억원을 기록했지만, 1054억원의 영업손실을 냈다. 4위 정유사인 에쓰오일도 영업손실 1612억원을 기록하며 적자 전환했다. ‘어닝쇼크’다.
정유업계 관계자는 “나머지 정유사인 GS칼텍스와 현대오일뱅크도 적자로 전환했을 것”이라며 “정유부문 적자를 나머지 사업부문이 얼마나 메워주는 지가 관건”이라고 말했다.
2분기 정유업계의 어닝쇼크는 국제유가 하락에 따른 정제마진 악화와 재고평가손실 증가 때문이다. 실제 지난 3월 배럴당 120달러였던 두바이유가 지난달 말 90달러대까지 내려가면서 과거 8~10달러 수준이었던 정제마진은 지난 5월 이후 5달러 수준까지 내려갔다.
이와 함께 최근 이란산 원유 비중을 줄이고 수송기간이 긴 북해산 원유 비중을 늘린 것도 한 요인이 됐다. 보통 두바이유의 경우 수송기간이 약 20일인데 비해 북해산은 40일~45일 정도 소요된다. 국제유가 하락 국면에선 수송기간이 길면 길수록 정유사 손실이 크다. 여기에 보통 배럴당 2달러 수준인 두바이유 수송비에 비해 약 0.5~0.7배 정도 비싼 북해산 수송비도 영향을 미친다. 현재 SK이노베이션과 GS칼텍스가 북해산 원유를 들여오고 있다.
이에 정유업계는 비상경영에 나서고 있다. SK이노베이션은 구자영 사장 주재 회의가 기존에 비해 급격히 늘어났다. GS칼텍스는 희망퇴직을 실시하고 있고, 현대오일뱅크는 예산을 감축하는 긴축경영에 들어간 상황이다.
하지만 정유업계의 근심은 내부 실적악화만으로 끝나지 않는다. 기름값 관련 정부의 외부 압박이 여전히 정유업계를 내리누르고 있어서다. 특히 정유사들의 경영전략 자체를 뒤바꿀 수 있는 석유혼합판매로 인해 정유사들의 속은 시커멓게 타들어가고 있다. 석유혼합판매는 특정 정유사 간판을 달고 있는 주유소가 다른 정유사의 석유를 공급받을 수 있도록 하는 제도다.
정유업계 관계자는 “지식경제부가 조만간 석유혼합판매 활성 방안을 발표할 것으로 알고 있다”면서 “그동안 큰돈을 들여왔던 정유사 브랜드 마케팅이 한순간에 무용지물로 바뀔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상표권 침해 문제, 유사석유 발생 시 책임 등은 어떻게 처리될지 걱정”고 우려했다.
여기에 하반기 대선을 앞두고 대권주자들의 공약으로 기름값 안정이 언급되면서 정유사들이 ‘공공의 표적’이 되고 있는 것도 부담이다. 특히 김두관 전 경남지사는 기름값 안정을 대표공약으로 내세우며, 유류비 원가 검증, 주유소 상표표시제 폐기 등을 검토, 정유사들을 직접적인 표적으로 삼았다.
정유업계 관계자는 “올해는 그야말로 안팎으로 악재가 겹쳤다”면서 “정치권 표심잡기용으로 정유사 때기기가 사용되는 게 아닐지 우려스럽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