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행 3개월 지났지만…표류하는 만성질환관리제

입력 2012-07-30 17: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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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와 의료계 심한 엇박자로 일선 의원 참여 지지부진

#대구에 사는 52세 김모씨. 평소 당뇨병을 앓아오던 김씨는 의원에 지속적으로 관리받겠다는 의사만 밝히면 진료비가 좀 더 싸진다는 얘기를 듣고 다니던 동네병원에 문의했다. 하지만 병원 측은 절차나 내용 등을 잘 모르겠다며 제대로 안내조차 해주지 않았고 김씨는 한순간 난감해졌다.

지난 4월부터 시행돼 온 의원급 만성질환관리제가 ‘유명무실’한 제도로 전락할 위기에 처했다. 일선 의원들의 자율적 참여가 지지부진한데다, 의료계 반대에 부딪혀 한의원에 대한 확대 실시마저 난항을 겪고 있다. 정부와 의료계의 엇박자에 정작 수혜자인 환자들은 혼란스럽기만 하다.

◇의료계 불참 선언…식물 제도로 전락 = 통합진보당 김미희 의원은 지난 25일 국회 업무보고에서 의원급 만성질환관리제가 의료계의 불참 선언으로 제대로 진행되지 않고 있다고 지적했다. 김 의원은 “의료계가 여러 가지 불편함을 호소하며 불참을 선언하고 지난 4일 참여의원에 인센티브를 제공한다는 내용을 고시했지만 별반응이 없다”고 말했다. 이어 김 의원은 “시행 주체가 정상적으로 참여하지 않는다면 아무리 좋은 제도라도 제 기능을 할 수 없다”며 정확한 현황 파악과 관련 대책 마련을 촉구했다.

만성질환관리제란 고혈압과 당뇨병 환자가 동네 특정의원을 지정해 꾸준히 관리를 받으면 진찰료 본인부담률을 30%에서 20%로 깎아주는 것이다. 정부는 이 제도로 대형 병원으로 환자가 몰리는 문제를 개선하고 1차 의료 활성화에 기여할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실제 만성질환관리제가 시행된지 3개월여가 지났지만 동네 병원들의 반응은 시큰둥하다. 애초 대한의사협회가 환자 개인정보 유출 위험성, 신규 개원의 진입 제한, 진료선택권 박탈 등을 이유로 제도 시행을 반대해온 탓이다. 현재 대한개한내과의사회도 의협 지도부의 방침에 따라 일단 참여 거부를 공식화한 채 어떠한 홍보나 참여 독려도 하지 않고 있다. 상황이 이렇자 청구코드(AA250) 조차 모르는 개원의도 상당수인 것으로 전해졌다. 현재 별도 등록 절차 없이 환자가 해당 의원을 계속 내원하겠단 의사를 밝히면 건강보험공단에 진료비 청구시 병원들은 관련 고시에 따른 코드로 산정만 하면 된다.

김종률 개원내과의사회 보험이사는 “현재 내과 개원의들은 환자들이 원하는 경우에만 참여하는 소극적인 경우가 대부분”며 “참여 의원 수가 늘고는 있지만, 전체 등록 환자 수로 따지면 참여율은 저조한 편”이라고 말했다.

한 내과병원 원장은 “의원에서 5월분 본인부담금 경감 진료비를 신청하는 6월 이후라면 참여 환자 수 파악이 가능한데도 정부에서 아직까지 공개하지 않은 걸 보면 참여율이 낮은 것은 기정사실 일 것”이라고 전했다.

◇ 의협-한의협 싸움에 참여주체 확대 불투명 = 의원들의 참여율이 제자리걸음을 면치 못하자 정부는 만성질환관리제를 한의학 분야에 확대 추진하는 복안을 내놓았다. 이조차도 최근 깊어지고 있는 의사와 한의사간의 갈등으로 쉽지 않은 분위기다. 한의사들은 고혈압, 당뇨 등은 원인치료가 중요하며 평생 관리해야 할 질환이기 때문에 제도 참여는 당연하다고 주장하는 반면, 의사들은 한의사에게 고혈압과 당뇨 등의 관리를 맡기는 것은 현대 의학을 부정해 현 의료체계의 붕괴를 조장하는 일이라며 크게 반발하고 있다. 여기에 병원 이외에 약국도 참여하도록 돼 있지만 약국의 역할에 대한 확실한 규정이나 참여 독려방안이 아직 마련돼 있지 않다는 점도 문제다.

이처럼 정부가 손을 놓고 있는 사이 그 피해는 하루하루 만성질환으로 고통받는 환자들에게 고스란히 돌아가고 있다. 특히 지속적인 관리 서비스 없이 단순히 병원비만 할인해주는 것은 반쪽자리 제도일 뿐이란 목소리도 높다. 안기종 환자단체연합회 대표는 “만성질환관리제는 고혈압·당뇨로 인한 합병증을 예방하고 나아가 중증질환 관리에도 도움이 된다는 점에서 반드시 확대시행해야 할 제도”라며 “정부는 효율적인 대국민 홍보로 제도 정착에 적극 나서야 하며, 의사들은 자신들의 이익을 환자들의 병원비 경감 혜택을 막고 다른 의료주체들의 참여를 막는 집단이기주의를 하루 빨리 버려야 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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