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객석]이은구 한국GM 한마음재단 사무국장 "중년 남성이여, 요리사가 되어라"

입력 2012-07-31 10:20 수정 2012-08-01 07: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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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나이 오십을 넘겼으니 ‘하늘의 뜻을 안다’는 ‘지천’의 나이에 접어들었다.

민주화운동이 치열했던 20여년 전, 소설처럼 수감 생활 중 아내를 알게 됐다. 아내 역시 민주화운동의 한복판에서 치열한 삶을 살고 있었다. 생면부지의 여자에게 감옥에서 편지를 보내고 답장을 받는 동안 애뜻한 사랑이 피었고 우리는 결혼하게 됐다. 그리고 지금 두 남매를 둔 부모가 됐다.

신혼초, ‘평등’이라는 명목 아래 아내에게 가사와 육아 분담을 약속했다.

그러나 남자로서 가장 어려웠던 가사분담은 요리였다. 어렵게 시작한 요리는 손도 베이고 눈물, 콧물 흘리는 동안 익숙해져갔다. 시간이 지날 수록 능숙하게 칼질도 해대고, 가족이 인정하는 요리솜씨도 뽐내게 됐다.

그렇게 요리 잘하는 아빠와 남편으로 살아오던 어느날, 요리에 대한 욕심이 발동했다. 가족의 건강을 생각하다보니 요리의 질적 향상을 고민하게된 것이다.

단순히 한 끼 식사를 해결하는 요리가 아닌, 시각과 후각, 미각 등 오감을 만족시키는 수준 높은 요리에 도전해 보고 싶었다. 그렇게 요리사가 돼보기로 마음먹었다.

요리의 기본은 한식이다. 한식부터 체계적으로 배울 요량으로 요리학원으로 달려가 주말반에 등록했다.

한식요리 자격증은 한식요리 52가지를 모두 실습하고 익혀야 비로소 시험에 응할 수 있다. 시험 당일 두 가지 요리를 지정해주는 데 무엇이 나올 지 모른다. 요구사항도 여간 까다로운 게 아니다. 한 번의 실패 후, 두 번째 시험에서 난 한식 조리사 자격증을 손에 거머쥐었다.

한식에 이어 양식 요리에도 욕심이 났다. 양식조리 도전에도 성공했고, 정식 요리사 반열에 올랐다.

자격증이 많아지니 레시피도 한층 다양해지고 화려해졌다. 이젠 고등학생이 된 아이들도 밥맛이 없을 때 정식 요리사(?)가 된 나에게 특식을 요구한다.

특히 나의 요리 중 궁중식 ‘구절판’을 매우 좋아한다. 연한 살코기를 썰어 양념해 볶고, 계란 지단을 만들고, 각종 야채는 채치고 양념해 볶아낸다. 큰 접시에 담아 가운데 밀전병을 배치해 내놓으면 형형색색의 시각적 화려함은 물론 가족 영양식에 제격이다.

무엇보다 내가 요리를 배워 보람과 행복을 느낄 때는 직접 요리한 음식이 놓여진 식탁에서의 분위기다. 배우는 것이 좋아 배움에 끈을 놓지 않고 현재 박사 과정을 밟고 있는 아내와 여느 아이들과 같이 힘든 학교 생활을 하고 있는 아이들과 함께 음식을 즐기며 떠는 수다는 요리의 수고를 한방에 날리는 일상의 즐거움이요 큰 행복이다.

신혼 때부터 부엌일을 분담하며 우리집의 요리사로 살아온 20년. 주변을 살펴보면, 내 나이 또래의 중년 가장들이 마누라 눈치를 살피기 시작한단다.

그런 면에서 나는 행운아다. 가사 분담을 통해 아이들과 자연스럽게 스킨십이 형성됐고, 이제는 아들이나 딸아이도 아빠의 가사분담과 부엌일이 당연하다고 여긴다.

중년의 남성들이여. 이제라도 늦지 않았다. 요리사가 되어 부엌에서 앞치마를 둘러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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