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포]쪽방촌 주민, “시원한 경로당은 그림의 떡”

입력 2012-08-09 18:26 수정 2012-08-13 16: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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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담센터 24시간 운영 사실 대다수 주민 몰라…쪽방촌 주민 쫓는 경로당

8일 오후 5시 서울 중구 남대문5가 614번지. 매끈하고 웅장한 서울스퀘어 뒤편 언덕길에 오르면 창들이 빼곡히 박혀있는 낡은 건물이 보인다. 폭염이 한 풀 꺽였지만 쪽방촌인 이 곳 주민들은 여전히 더위에 지쳐 있었다. 서울시복지재단이 준비한 쿨매트는 1.5평짜리 좁은 방안에서는 쓸모가 없었다. 에어컨이 있는 경로당은 쪽방촌 주민이 아닌 회비를 내는 형편 좋은 사람들만 이용할 수 있었다.

▲사진=연합뉴스
◇쪽방촌에서는 쓸모없는 쿨매트= “쿨 매트는 무신, 무겁고 금방 뜨거워삐러 오히려 짐이라 내빌끼다(내버릴 것이다)”

기초생활수급자인 홍상수(56·남·가명)씨가 쿨 매트를 기자에게 건넨다. 겉모습과 달리 묵직하고 따뜻한 온기가 느껴진다. 홍씨는 “냉장고에 넣다 빼면 시원하다는데 여(냉장고가) 작아 안 들어가, 못 써”라며 “모시 이불이 더 좋지"라고 말했다.

서울시복지재단은 지난 3일 쿨매트 3000개를 무상 제공받아 남대문 쪽방주민을 돌보는 남대문지역상담센터에 710개를 전달했다. 센터에는 쿨 매트 이외에 지원품이 들어온다. 단 3명의 직원이 신분증을 갖고 직접 방문한 사람들에게만 물품을 준다. 한 쪽방촌 주민은 “새벽에 노가다 갔다 늦게 오는데 통장한테 주면 안되나”고 토로했다. 그러나 센터관계자는 “관리인이나 통장이 물품을 가져가 본인이 챙기는 경우가 많다”며 “정말 지원품이 필요한 사람들에게 도움을 주려면 이렇게 직접 줄 수 밖에 없다”고 설명했다.

더위가 한 풀 꺽인 저녁 10시 11분. 센터는 여전히 불을 밝히고 주민들을 기다리고 있었다. ‘무더위 쉼터’로 지정돼 24시간 동안 쪽방촌 주민에게 개방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센터 내 샤워실과 세탁실은 24시간 이용이 불가능하다. 당직 도우미는 “관리가 어렵기 때문에 오후 4시30분까지 이용토록 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쪽방촌 주민 대부분은 남대문지역상담센터가 지난 2일부터 24시간 개방한다는 사실을 몰랐다. 그도 그럴것이 건물에 붙여있는 공고문에는 센터 운영 시간이 ‘오전 9시30분~오후 10시’라고 적혀있기 때문이다.

◇경로당 이용 못 하고 도시락 지원도 끊겨= 쪽방촌 한 가운데 에어컨이 설치된 경로당이 있지만 모두 아스팔트 위에서 폭염을 피하고 있었다.

통장 김인혜(가명)씨는 “거긴 부자들만 가는 곳이야, 여기(쪽방촌) 사람들이 들어가는 것 싫어해”라며 “1년에 2만5000원씩 내야하는데 하루 벌어먹는 사람들이 무슨 회비를 내”라고 설명했다.

쪽방건물 바로 옆에 위치한 ‘중구 남대문로5가 경로당’에 들어가니 에어컨으로 찬 기운이 느껴졌다. 약 50~60평의 건물에는 어르신 4분만 앉아 화투를 치고 계셨다.

경로당을 나오자 후끈한 열기가 목을 감았다. 건물 밖에는 쪽방촌 주민 몇몇이 뜨거운 온기가 가시지 않은 아스팔트 위에 앉아 부채질을 했다.

주민 권재진(55·남·가명)은 폭염보다 당장 먹는게 고민이다. “고혈압 때문에 더운 날씨에는 일을 못 해요”라며 “잡일이라도 알아보러 매일 나가지만 날이 더워 (일거리가) 없네요”라고 말했다. 권씨는 지난달 중순부터 일을 못 나가 방세도 밀리고 끼니도 제대로 해결 못 하고 있다. 교회에서 매주 화요일과 수요일 저녁에 도시락을 주지만 이 마저 끊겼다. 그는 “날이 더워 밥 해주는 사람이 없데요”라고 말했다. 쪽방 주민들은 냉장고가 없어 반찬이나 밥이 금방 쉬거나 변질되기 때문에 밥을 해 먹는 일이 드물다. 라면이나 소면으로 끼니를 때우는데 이마저 어려운 사람들은 무료로 나눠주는 도시락이 큰 힘이 된다. 권씨는 “이번처럼 더운 적은 처음이다”며 말끝을 흐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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