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명박 대통령의 독도방문으로 촉발된 한·일간 외교갈등이 8.15를 정점으로 격화되고 있다. 이 대통령이 독도방문에 이어 ‘일본의 영향력 저하’, ‘일왕의 사과’ 등 연일 강경 발언을 내놓자 일본은 민주당 정권 각료가 야스쿠니신사를 참배하는 등 맞불을 놨다.
일본은 또 작년 10월 정상회담서 합의한 통화스와프 협정 재검토, 정상간 교차방문인 셔틀외교 일시 중단 등 강경책을 검토 중이어서 한일 당분간 한일 관계 경색은 불가피할 것으로 보인다.
◇李대통령 연이은 강경발언 = 이런 가운데 이 대통령은 8·15 경축사에서 일본군 위안부 문제를 처음으로 언급했다. 이 대통령은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문제는 양국차원을 넘어 전시 여성인권 문제로 인류의 보편적 가치와 올바른 역사에 반하는 행위”라며 “일본의 책임 있는 조치를 촉구한다”고 밝혔다.
앞서 이 대통령은 지난해 12월 교토에서 열린 노다 요시히코 일본 총리와의 정상회담에서 위안부 문제에 대한 일본 측의 진정한 사고를 촉구한 바 있다.
이 대통령이 8·15 경축사에서 위안부 문제를 직접 언급함으로써 ‘독도방문’, ‘일왕 사과’에 이은 한일 과거사 3종 세트를 모두 건드린 셈이 됐다.
이 대통령은 지난 10일 독도 방문 후 12일 열린 국회의장단 오찬에서 “일본같은 대국이 마음만 먹으면 풀 수 있는데 일본 내 정치문제로 인해 소극적인 태도를 보여 행동으로 보여줄 필요를 느꼈다”며 과거사 문제에 대한 일본 정부의 무성의한 태도를 비판했다.
또 일본 정부의 반발을 염두에 둔 듯 “국제 사회에서 일본의 영향력이 예전 같지는 않다”는 말도 했다.
14일에는 “(일왕이) 한국을 방문하고 싶으면 독립운동을 하다 돌아가신 분들을 찾아 진심으로 사과를 하면 좋겠다고 언급하기도 했다.
이 대통령의 이런 발언들은 역대 어느 대통령보다 강경한 것이다. 최금락 청와대 홍보수석비서관은 “위안부 문제는 대단히 분명히 말한 것으로써 과거사 문제에 대한 책임있는 조치도 촉구했다”고 설명했다.
◇日각료 야스쿠니신사 참배로 맞불 = 이 대통령의 강경발언에 일본은 민주당 정권 각료가 A급 전범이 합사된 야스쿠니신사 참배로 맞섰다. 마쓰바라 진 국가공안위원장 겸 납치문제담당사과 하타 유이치로 국토교통상은 세계대전 패전일인 15일 오전 2009년 9월 민주당 정권이 들어선 후 처음으로 야스쿠니신사에 참배했다.
민주당 정권은 출범 이후 한국과 중국 등 주변국과의 외교 마찰을 피하기 위해 각료의 야스쿠니신사 참배를 억제해왔다. 마쓰바라 공안위원장은 야스쿠니신사에서 이 대통령의 일왕에 대한 사죄 요구에 대해 “예의를 잃은 발언이다”고 직격탄을 날렸다.
노다 요시히코 총리 역시 “이해하기 어려운 발언으로 유감이다”고 불쾌감을 표시했다.
일본 정부는 독도문제의 국제사법재판소(ICJ) 재소를 앞당기는 방안도 검토하고 있다. 산케이신문에 따르면 겐바 고이치로 외무상은 15일 독도 제소문제와 관련 “(이 대통령의 독도방문에) 상응하는 조치를 취하지 않을 수 없다”고 말했다.
이 신문은 일본 정부가 이르면 금주중 독도 문제의 국제사법재판소 제소를 정식으로 결정하기로 방침을 정했다고 보도했다.
또 이 대통령의 독도 방문에도 유지하기로 했던 통화스와프 등 금융협력에 대해서도 입장 변화가 감지된다.
요미우리신문은 일본 정부가 이명박 대통령의 독도 방문에 대한 대응 조치로 한일 통화스와프 협정의 재검토와 정상 간 교차 방문인 셔틀 외교의 일시 중단 등에 대한 검토를 시작했다고 전했다.
이명박 대통령과 노다 요시히코 총리는 작년 10월 정상회담에서 금융위기 시 상호 지원할 수 있는 통화 규모를 30억달러에서 700억달러로 확대하기로 합의했었다.
이밖에 조만간 열기로 했던 한일 재무장관 회의 연기와 정상간 교차 방문인 셔틀외교 일시 중단 등도 검토하기 시작했다고 일본 언론들은 보도했다.
◇양국관계 일시적 경색 불가피…‘끝’ 보진 않을 것 = 한일 정부간 유례없는 강경발언이 이어지고 있지만 이번 갈등이 끝장까지 가지는 않을 것이라는 관측이 우세하다.
이 대통령이 8·15 경축사에서 독도문제를 언급하지 않은 것도 독도방문으로 조성된 긴장관계를 관리하겠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이 대통령도 경축사에서 “일본은 우리의 가까운 이웃이자 체제적 가치를 공유하는 우방이며, 미래를 함께 열어가야 할 중요한 동반자”라고 재표명했다.
전문가들 역시 지금까지 구축된 공고한 양국 관계가 대통령의 말 몇마디에 따라 무너지진 않을 것으로 보고 있다. 더욱이 이 정부 들어 경제·문화적인 측면에서 양국은 뗄 수 없는 협력관계를 유지하고 있다는 점도 이런 시각이 설득력을 갖게 한다.
양국관계에 정통한 한 전문가는 “독도나 위안부 문제는 한일 역사의 근본적인 문제로 쉽게 해결될 사안이 아니다”라면서 “이 정부들어 더욱 공고해진 한일 경제 협력이나 문화적 교류 등을 봤을 때 일시적인 경색은 불가피하지만 한일관계의 장기적 동반자 관계에 영향을 주진 않을 것”이라고 전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