규제에만 초점 맞춘 법안… 중소기업과 상생 생태계 구축해야

입력 2012-08-17 1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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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으로 가는 경제민주화 3. ‘행위의 민주화’가 먼저다상생·동반성장 틀 마련이 중요

▲한국수출입은행이 지난 9일(현지시간) 러시아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 현지 동반 진출한 기업들을 대상으로 개최한 '대ㆍ중소 ㆍ중견기업 동반성장 간담회'
정치권의 경제민주화 담론이 대기업의 지배구조를 직접 겨냥하는 쪽으로 가닥을 잡아가고 있다. 경제력 집중해소를 넘어 재벌해체 수순까지 밟겠다는 의도다.

새누리당 경제민주화실천모임은 순환출자금지 및 의결권을 제한하는 3호 법안에 이어 금융자본과 산업자본의 분리를 골자로 하는 4호 법안을 추진하고 있다. 재벌총수의 집행유예 차단과 일감몰아주기 금지 등을 골자로 한 경제민주화 1, 2호 법안과는 내용적으로 확연히 다르다.

선거철을 맞은 정치권이 국민적 감정에 호소하는 경제민주화로 대기업의 존재 자체를 부정하는 방향으로 엇나가고 있는 것이다.

재계 관계자는 “1, 2호 법안이 경제정의와 경제력 집중해소에 초점을 맞췄다면 3, 4호 법안은 대기업의 근간이 되는 지배구조를 흔들어 사실상 해체를 기정사실화하고 있다”며 우려했다.

새누리당의 경제민주화 법안은 민주통합당 안보다 더 급진적이라는 평가와 함께 내부에서도 반대의견이 팽배하다. 재벌을 어떻게 규제하는 것이 경제민주화에 부합하는지를 고민해야지 아예 재벌을 해체하자는 것은 본질에서 벗어난다는 것이다.

사실 경제민주화 바람의 발원지는 대기업의 일감몰아주기와 골목상권 진출이었다. 또 대기업의 성과가 중소기업의 실적으로 이어지는 낙수효과로 나타나지 않고 오히려 대기업이 중소기업의 영역을 침범하고, 불공정 거래를 일삼는 한편 납품단가 후려치기 등으로 이를 독식한다는 비난여론에 따른 것이었다.

지난 7년 동안 전국의 전통시장 178개가 문을 닫았다는 조사결과는 그 단면을 보여준다. 최근 중소기업청과 시장경영진흥원 등의 조사에 따르면 2003년 1695곳에 달했던 전통시장은 2010년엔 1517곳으로 178곳이 없어졌다. 영세 슈퍼마켓의 점포수도 매년 4000∼5000개씩 감소했다.

반면 기업형 슈퍼마켓(SSM)은 같은 기간 234개에서 928개로 무려 4배나 늘어났다. 대형마트도 2003년 265개에서 2009년 442개로 증가했다.

매출 측면에서도 전통시장 매출은 2003년 36조원 수준에서 매년 줄어 2010년에는 24조원까지 감소했지만 이마트, 홈플러스, 롯데마트 등 대형마트 3사의 매출은 2003년 19조6000억원 수준에서 2010년에는 33조7000억원으로 전통시장을 앞질렀다. SSM 매출은 2003년 2조6000억원에서 2011년에는 6조1000억원으로 급증했다.

대기업은 배를 불린 반면 영세사업자들은 길바닥으로 나앉은 것이다.

경제민주화의 근거가 되고 있는 헌법 119조는 이 같은 부작용을 막기 위해 정부의 개입을 규정하고 있다. 즉 경쟁을 저해하는 대기업의 행위 규제를 우선시하고 있는 것이다.

대기업이 우월적 지위를 남용해 중소기업과 영세사업자의 성장토대를 해치는 행위에 대한 규제와 함께 상생과 동반성장을 할 수 있는 기틀 마련이 경제민주화의 핵심이 되어야 한다는 의미로 해석이 가능하다.

특히 유럽발 경제위기로 인해 내수경기가 급락하고 있는 위기 국면에서 대기업과 중소기업의 상생과 동반성장 유도가 아니라 재벌해체를 목적으로 한 경제민주화는 본말이 바뀌었다는 게 재계와 전문가들의 한결같은 지적이다.

양준모 연세대 경제학과 교수는 “외환위기 이후 우리나라가 저성장을 지속하며 분배문제가 악화됐다”면서 “중소기업·자영업 등의 문제들은 저성장의 악순환에서 벗어나야 해결되는 문제들”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정치권의 경제민주화 법안은 “이러한 메커니즘은 도외시되고 돌팔이 의사처럼 대증요법만 처방되고 있다”고 양 교수는 꼬집었다.

여야 정치권이 경쟁적으로 발의하고 있는 경제민주화 법안에 재벌 규제만 있고 정작 중요한 중소기업과 영세사업자의 경쟁력 강화방안은 없다는 지적도 설득력을 얻고 있다. 정치권의 관심이 상생과 동반성장보다는 재벌에 고정돼 있다는 반증이다.

재계 관계자는 “경제민주화가 동반성장을 저해하는 대기업의 경제력 집중을 해소하는 차원을 넘어 일방적인 대기업 때리기로 치닫고 있다”면서 “숲이 사라지면 나무도 죽는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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