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일 서울 삼청동의 한 카페에서 곽 감독을 만났다. 지난 22일 ‘미운 오리 새끼’ 언론시사회가 열렸다. 다행스럽게도 반응이 좋다. 일반 시사회를 통해 30일 본 개봉 전 일반 관객들과도 만나봤다. 온라인 평점이 생각 이상으로 좋단다. 하지만 첫 마디는 의외로 걱정이었다. 물론 농담이 섞였다.
곽 감독은 “영화의 타깃층이 30대 중 후반 이상의 남성 관객들이었다. 그런데 이 분들이 영화를 본 뒤 일종의 트라우마를 겪더라. 군 시절 고참이나 상관에게 구타당하던 안 좋은 기억을 떠올린다. 일부 지인들은 내게 ‘왜 내 아픈 기억을 끄집어냈냐’며 애교 섞인 푸념까지 하더라”며 호탕하게 웃는다.
절대 악평은 아니다. 그만큼 군 시절의 경험과 기억을 리얼하게 그렸다. 모두 실제 곽 감독이 경험한 얘기라 가능했다. 방위병 복무 시절 겪은 그때의 기억이 일부 남성 관객들이 호소하는 트라우마로 나타나듯 곽 감독에게도 그 시절의 얘기는 아직까지 쓴 기억이다.
그는 “지금과는 달리 그때는 영창에 여러 등급의 수감자들이 있었다. 단순 징계와 실제 재판을 기다리는 수감자들로 나뉜다. 뭐 구타나 가혹행위는 영화 속 그대로였다. 정말 잔인하고 힘든 시간이었다”고 토로했다.
수감자나 징계의 경우 매일 같이 영창 근무자에게 구타를 당해 피칠갑이 되기 일쑤였다. 반면 ‘빽’이 있는 사람은 제외됐다. 권력의 논리가 잔인하게 적용된 공간이었다. 하수상한 시대의 모습 역시 영창과 별반 다르지 않았단다. 결국 2012년 오늘의 시간에서 1987년이란 영화적 시간 배경을 택한 이유가 됐다. 최근 유행하는 ‘힐링’ 코드 역시 비슷한 이유라고 단정한다.
곽 감독은 “386으로 불리는 기성세대와 달리 요즘 젊은이들은 현실의 벽에 너무 쉽게 포기를 한다. 스스로를 미운 오리 새끼로 단정 짓고 현실에 안주하려만 든다”면서 “유행하는 힐링 역시 반대로 생각하면 그만큼 상처를 많이 받고 있단 소리다. 세상에 안되는 게 어디 있나. 곽경택이도 번듯한 영화감독으로 살아가지 않나. 허허허”라며 웃는다.
한국영화의 대표 흥행작 ‘친구’를 만든 감독 아닌가. 그런데 ‘곽경택이도’란 말을 스스로가 서슴없이 한다. 조금만 깊게 생각해보면 ‘군 시절 찌질했던 곽경택이도’란 말이었다. 대체 얼마나 찌질했을까.
그는 “찌질의 극치였다. 다니던 의대를 중퇴하고 군에 갔는데, 장교로 들어갈 줄 알았는데 방위였다. 하는 일이라곤 정말 별의 별일을 다했다. 닭 모이주기, 정화조 치우기, 설거지하기, 이발소에서 장교나 고참들 머리깎기, 여기에 영창 근무까지 정말 전천후였다”고 손사래와 고개를 도리질 쳤다.
그래도 당시 경험이 지금 영화의 자양분이 됐고, 남을 이해하는 데 큰 도움이 됐다. 세상을 바라보는 시선도 넓어졌다. 영화감독으로서의 밑거름이 완성된 시기였다. 영화 속 낙만의 시선이 곧 그의 시선이었다.
이어 그는 “하지만 문득 그런 생각이 들더라. ‘나도 억울한데 민주화 운동하다 고문당해 상처를 받으신 분들은 얼마나 더 억울할까’란 생각을 하니 오히려 나의 억울함은 비교 대상도 되지 못한단 결론을 얻었다”며 숙연한 표정을 지었다. 영화 속 고문 피해자로 나오는 낙만의 아버지 모습 역시 한 지인의 실제 모습이었고, 자신의 그런 생각이 투영돼 탄생한 캐릭터다.
영화 ‘미운 오리 새끼’는 이처럼 곽 감독에겐 일종의 자기 치유를 위한 결과물이다. 잠시 자신을 ‘힐링’하기 위해 세상에 내 놓은 열 번째 자식이다. 자신이 선택한 진짜 ‘미운 오리 새끼’들을 위한 무대이기도 하다. 곽 감독에겐 여러 모로 의미가 큰 영화다.
그는 “흥행? 정말 잘됐으면 한다. 돈을 벌기 위한 흥행이 아니다. 내가 선택한 신인 배우들이 프로 배우로서 제대로 된 첫 발을 내딛을 수 있는 발판이 되야 한다”면서 “이 영화가 안되더라도 나는 살아 갈 수 있다. 하지만 이 친구들은 다르다. 아버지의 입장에서 내 새끼들이 잘 될 수 있는 디딤돌 역할을 이 영화가 해줬으면 한다”고 말했다.
곽 감독이 심사위원으로 출연한 한 배우 오디션 프로그램 도전자들이 이 영화의 주요 배역을 맡았다. 충무로 최고 배우 조련사로 알려진 곽 감독의 지휘 아래 모두가 영화 속에서 신인답지 않은 연기를 펼쳤다. 곽 감독은 “영화가 실패하면 온전히 내 책임이지만 성공하면 모두 배우들의 몫이다”고 선을 그었다.
곽 감독은 “1980년대 군대 얘기에 투자를 할 사람이 누가 있겠나. 영원히 묻혀질 영화였다. 그런데 오디션 프로그램 심사위원을 맡고 옥석 같은 친구들이 하나 둘씩 보였고, 내 기억 속에서 잊혀진 이번 영화 시나리오가 떠올랐다. ‘마지막이다’는 생각으로 뛰어들었고 다행히 결과물이 나온 것이다”고 안도했다.
수백억의 블록버스터부터 저예산의 이번 ‘미운 오리 새끼’까지. 충무로 최고의 자리를 지키던 곽 감독도 어느덧 자신의 이름 앞에 ‘흥행’이란 단어를 때어낸 지 오래다. 그의 말에 따르면 흥행은 영화적 완성도만으론 결코 이뤄질 수 없다. 주변 모든 시스템의 톱니가 완벽히 물려 있을 때 따라오는 부수적인 보너스다. 문득 ‘친구’때의 곽경택과 ‘미운 오리 새끼’를 선보인 지금의 곽경택이 달라진 것은 무엇일까. 궁금해졌다.
그는 “‘친구’때는 정말 비장했다. 어떻게 해서든 상대방을 이기자는 생각뿐이었다”면서 “지금은 그냥 ‘즐기자’ 그리고 ‘그 순간에 최선을 다하자’란 생각이다. 참 나도 많이 바뀐 것 같다”며 멋쩍어 했다.
바람이 있다면 ‘미운 오리 새끼’에 대한 브랜드화다. 신인 배우들의 등용문으로서 자기 역할을 할 수 있는 기반을 만드는 것이다. 조만간 드라마 '아이리스2'의 연출도 맡을 것으로 보인다. 물론 결정된 것은 아니다. 잠시 제작이 보류된 영화 '적'의 연출과 다른 아이템의 구상도 진행 중이다.
영화감독 곽경택, 영화 ‘미운 오리 새끼’를 통해 그는 이미 스스로를 ‘힐링’한 상태였다. 또 영화를 보는 모든 관객들이 그러길 바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