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正論]정덕현 대중문화평론가 "우리사회 축소판 '골든타임'"

입력 2012-09-06 10:33 수정 2012-09-06 18: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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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얀거탑’의 천재 외과의사 장준혁(김명민)은 마치 예술가처럼 그려진다. 수술대에서 배를 가르고 외상을 봉합하는 모습은 마치 오케스트라를 지휘하는 지휘자 같다. 하지만 장준혁의 우아함은 환자라는 대상을 하나의 사물처럼 소외시키기도 한다. 장준혁이 그의 라이벌로 등장하는 해외파 의사 노민국(차인표)과 한 환자를 두고 마치 대결하듯 수술을 하는 장면은 겉으로 보기엔 멋져 보일 수 있겠지만 사실은 끔찍하다. 드라마가 의사들에게 초점이 맞춰져 있기 때문에 그들의 행위와 대결의 스펙터클에 집중하게 만들지만, 시각을 바꿔서 만일 당신이 그들이 대결하는 수술대에 누워있는 환자라면 어떨까.

시선을 환자쪽으로 좀 더 돌려보면 병원에 정작 필요한 존재가 장준혁 같은 천재외과의가 아니라는 사실을 알게 된다. 환자들은 과연 의사들의 한계(무능력, 생명의 한계) 때문에 죽음에 이르게 되는 걸까. 과거라면 아마도 그런 경우가 더 많았을 것이다. 살리고 싶어도 의료 환경이나 설비가 혹은 의료종사자들이 여의치 않아 살릴 수 있는 환자를 놓치는 경우도 많았을 테니까. 하지만 요즘처럼 병원이 도처에 널려 있고, 과거에 비해 성능이 좋아진 의료장비를 갖춘 병원에서 환자가 사망하게 되는 것은 단지 의료 환경 때문만은 아닌 일이 되었다. ‘골든타임’이 그리고 있는 응급실 풍경은 바로 이 점을 명확히 보여준다. 여러 과의 공조가 무엇보다 환자의 생명과 직결되는 응급실이라는 특수성 속에서 이기주의와 성과주의, 관료주의에 의해 깨져버린 공조체계는 환자를 죽음에 이르게 하는 병원의 불편한 진실을 끄집어낸다.

교통사고를 당한 한 여중생은 책임을 회피하기 위해 누가 먼저 수술할 것인가를 놓고 실랑이를 벌이는 의사들 앞에서 죽음에 이르게 된다. 반면 VIP의 전화 한 통에 평상시도 잘 보이지 않던 의사들이 주말에 모여 이른바 ‘얼굴도장’을 찍는다. 이 드라마 속의 과장들은 자신이 필요한 환자만 돌본다. VIP라면 제 간이라도 꺼내줄 것처럼 정성을 쏟지만, 힘도 없고 백도 없는 가난한 서민들이라면 당장 죽음이 경각에 몰려 있어도(아니 오히려 그렇다면 더더욱) 손 하나 까닥하려 하지 않는다. 도대체 이런 병원이 실제로 있을까 싶지만 의외로 이런 병원들이 많다는 것을 아마도 대중들은 경험을 통해 알고 있을 것이다.

‘하얀거탑’이나 ‘골든타임’같은 병원 내 권력을 다루는 드라마를 보다가 화가 나는 이유는 거기서 정작 소외되어 있는 우리네 서민들의 몸을 보기 때문이다. 이들 드라마들 속에서 환자는 마치 의사를 돋보여주기 위해 수술대에 누워있는 재료처럼 보인다. 심지어 목숨을 내놓고 누워있는 이 환자를 통해서 누군가는 천재의사로 불리기도 한다. 그렇게 수많은 환자들의 몸을 담보로 그들은 권력의 꼭대기로 올라간다. 이것은 그대로 우리네 사회의 한 단면을 상징적으로 그려낸다. 신문을 펴면 등장하는 수많은 문구들의 이면에는 어쩌면 저렇게 수술대 위에 몸을 누이고 있는 수많은 서민들의 고통이 있는 지도 모른다. 정치인들은 그렇게 수술대 위에 몸을 눕히고 있는 서민들을 끝없이 호명하지만, 진정 그것이 그들의 생명을 살리겠다는 진심인지 자문해봐야 할 것이다. 그들의 호명이 생명이 아닌 권력이 될 때 사회의 비극은 시작된다.

‘골든타임’이 보여주듯 몸이 자꾸만 하나의 상품처럼 대상화되는 세태는 안타깝게도 이미 그 몸을 생명으로 다루어야할 병원에서마저 일어나고 있다. 같은 병이라도 돈이 있으면 고칠 수 있지만 돈이 없으면 죽음을 감수해야 하는 세상이다. 이런 사회에 희망이 있을 리 없다. 모든 것을 수치화하고 계량화하는 사회가 만들어낸 물화는 생명마저 상품처럼 다루는 비극적인 현실을 낳았다. 생명 앞에서 돈과 권력을 저울질 하는 세태는 시쳇말로 멘붕(멘탈붕괴)의 사회로 가는 지름길이다. 그런 점에서 이제 그 사회가 얼마나 건강한가를 보려면 그 사회의 병원을 들여다보는 것만으로도 충분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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