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 년 전까지 고도 성장을 구가해온 베트남 경제가 은행권의 부실채권에 발목이 잡혔다.
은행 시스템이 안고 있는 문제를 해결하지 않으면 베트남 경제는 인근 경쟁국에 뒤처지게 될 것이라고 월스트리트저널(WSJ)이 11일(현지시간) 보도했다.
베트남 정부는 최근 부실채권이 은행 전체의 10%에 달한다고 밝혔다. 이는 각 은행이 보고한 부실채권 비율을 큰 폭으로 웃도는 수치다. 신용평가사 피치는 이 비율이 15%에 달할 것으로 추정했다.
하노이와 호치민 같은 대도시에서는 수많은 기업이 파산, 중단된 건설 프로젝트가 우후죽순처럼 늘고 있다고 WSJ는 전했다. 업체의 자금이 바닥났거나 아파트 및 사무실 수요가 말라 건설 작업에도 차질을 빚은 것이다.
심지어 베트남이 국제 기구에 도움을 요청했다는 루머까지 나돌고 있다.
베트남은 최근 국제통화기금(IMF)에 은행 시스템 구제를 요청했다는 소문을 일축했다.
IMF 대변인도 베트남으로부터 지원 요청을 받은 적이 없다고 말했다.
그러나 IMF는 베트남 내 자금을 통해 은행 건전화를 지원하도록 조언했다고 WSJ는 전했다.
WSJ에 따르면 IMF는 최신 경제 심사에서 취약한 은행 기반을 강화해 경제를 더 확고히 하기 위해선 신속하고 포괄적인 행동이 필요하다고 권고했다.
이처럼 베트남 경제 전체를 흔들고 있는 은행권에 대한 불안은 지난달 은행 재벌인 응웬 둑 키엔이 비리 연루로 체포되면서 불거졌다.
그가 체포된 후 베트남 증시의 VN지수는 계속 하락, 5월초 대비 18%나 떨어졌다.
VN지수는 10일에도 2.2% 빠졌다.
부동산 개발업체가 아파트 분양을 촉진하기 위해 가격 낮춘다고 발표하면서 부동산 관련주에 매도세가 폭주한 영향이다.
현지건설업체인 송다탕롱JSC도 예외는 아니었다.
송다는 지난 7월 베트남국영 투자개발은행(VIDB)에서 3000억동을 추가로 빌렸다.
자금은 하노이 교외에서 진행하는 13동짜리 타워 주택단지 개발에 투입될 예정이었다.
이 사업은 베트남의 부동산 붐이 정점에 달한 2009년에 시작됐으나 이후 부동산 경기 침체와 금리 상승으로 중단됐었다.
프로젝트 진행에 대한 불안감에 송다의 주가는 지난 6개월간 60% 가량 주저앉았다.
이코노미스트들은 베트남이 ‘위험한 사이클’에 진입했다고 진단하고 있다.
부실채권을 안고 있는 은행들이 대출을 꺼리고, 그것이 기업의 투자를 한층 어렵게 하는 악순환에 빠졌다는 것이다.
이는 성장 둔화로 연결돼 기업의 대출금 상환을 어렵게 하면서 다시 은행에 타격을 주고 있다.
전문가들은 은행을 건전화하려는 강력한 조치를 강구하지 않는 이상 베트남 경제는 향후 수년간 잠재 성장률을 밑도는 수준으로 성장할 것이라고 우려하고 있다.
캐피털이코노믹스의 가레스 리더 이코노미스트는 “이런 문제에 만병통치약은 없다”며 “해결되려면 시간이 걸릴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향후 수 년간 베트남 경제는 5% 정도의 성장에 그쳐 지난 10년간 평균치인 8% 성장을 밑돌 것으로 내다봤다.
WSJ는 성장률 5%는 베트남과 같은 선상에 있는 아시아 국가에 비해 낮은 수준이라며 늘어나는 인구 수 만큼의 고용을 창출하기엔 불충분하다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