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강 둑방 위로 하늘이 쓰러지고 있다
저녁 6시의 둑방을 붙잡고 있는 노을
이게 아니야 외쳐대는 모든 물소리가
검붉은 옷자락에 감싸인 채,
천천히 멀어지고 있다 살며 닦아온
눈물로 흘러 넘치는 물결 속으로,
기댈 언덕배기 하나 거느리지 못하고
골짜기를 걸어 내려오는 동안
강의 가슴속으로 햇살들 첨벙첨벙 뛰어든다
햇살들 무게를 이기지 못하는
가로수들도 성근 머리칼 강물에 빠트리고 있다
이젠 가슴속의 갈증마저
던져 넣어버려야지 산골짝 여기저기
수해 입은 뿌리에서 희뿌연 마음 꺼내들고
지난 영욕의 세월 지워내며
남은 흙 털어내고 있는 나무들
을씨년스럽다 그것도 내 육신이지
달은 마음을 추스르지 못하고 이리저리 굴러다니는데
드러낸 나와 감춰진 내가
한 몸뚱어리로 뒤섞여 지나가는 둑방길
언제나 나의 바깥에서 흐르고 있는 강물도
이젠 그럭저럭 침묵을 껴안을 줄 알고 있다
쓰러져 가는 하늘 저편,
흘러가는 강 위로 또 다른 강이 놓여
나, 서 있는 쪽으로 세월은 역류하여
버리고 온 발자국을 움켜쥔 채,
해묵은 다짐들 닦아내고 있는 둑방길
출렁거리는 강물 안에서
별들이 뚜벅뚜벅 걸어 나오고 있다
내 안에 밀려드는 어둠 속으로
별빛이 쏟아지기 시작한다
(길영효 시집 ‘바람아, 너는 나를 밟고 가벼울 수 있는가’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