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0년대 초, 우리는 완전히 새로운 음악을 접했다. 어딘지 모르게 조폭같은(?) 느낌을 주는 한 남자는 여자에게 버림받은 자신의 심정을 ‘새’가 됐다고 표현했다. 무대 위에서 온 몸으로 엽기를 표현하는 그는 예명도 싸이코(Psycho)에서 따와 싸이(PSY)였다.
전국 고속도로를 도는 관광버스에서 흥겨운 트로트 메들리를 들려주던 가이드는 주류 가요계에 신선한 충격을 안겼다. ‘좋아좋아’ ‘오케이’ 등 쉴 새 없는 추임새 애드리브가 중독적인 노래 ‘몽키매직’, ‘영맨’, ‘학교매점 출출해’ 등을 연달아 히트시키며 신드롬을 일으켰다. 혜성처럼 등장한 이박사는 독특한 패션 감각과 남다른 세계관을 뽐내며 당시 신세대들의 뜨거운 지지를 받았다.
10년 이상의 세월이 흐른 지난 지금, 싸이는 ‘강남스타일’ 한 곡으로 월드 스타(?)가 됐고 이박사는 이름부터 남다른 새 앨범 ‘레알 뽕짝커’를 발표했다.
이박사는 ‘레알 뽕짝커’의 타이틀곡 ‘아수라발발타’를 통해 싸이보다 한 술 더 뜬 B급 정서를 선보인다. 동양적 신비주의 콘셉트를 정신없는 테크노 트로트 사운드로 승화시킨 ‘아수라발발타’에서는 이박사의 트레이드 마크와 같은 추임새 ‘좋아좋아’가 빠지지 않고 등장한다. 긴 세월이 지나도 한결같은 이박사는 알고보면 원조 한류스타다. 90년대 중반 일본에 건너가 유명 음악프로그램과 공연장, CF를 섭렵하며 ‘신바람 이박사’를 널리 알리고 다시 한국으로 돌아와 전성기를 맞았다. 이박사는 싸이의 ‘강남스타일’을 극찬하며 “내 전성기 때도 유튜브가 있었으면”하고 아쉬움을 토로하기도 했다.
2000년대와 2010년대, 나란히 함께 나타난 싸이와 이박사는 주류 문화의 틈바구니에서 솟아나던 대중의 B급 정서를 충족시켰다. 세련되고 정제된 음악 대신 다소 거친 느낌의 가볍게 즐길 수 있는 음악을 찾던 대중은 때마침 나타난 이들에게 열광했다. 이런 B급 정서는 사회적 통념을 벗어난 독특한 문화를 뜻하는 키치(Kitsch) 문화와 이어진다. 배국남 대중문화평론가는 “문화의 서열화가 해체되면서 B급 정서에 대한 사람들의 숨겨둔 욕구가 드러났다. 싸이와 이박사는 고급 문화를 향유해야한다는 강박관념을 무장해제시킨 대표적인 인물이다”고 평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