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연경은 흥국생명 소속으로 4시즌을 뛰었고 자유 계약 선수가 되기 위해서는 아직 국내에서 두 시즌을 더 뛰어야 한다. 흥국생명에서 4시즌을 뛴 김연경은 이후 일본에 진출해 JT 마블러스에서 두 시즌, 터키 페네르바체에서 한 시즌을 활약했다.
하지만 바로 이 과정에 대한 해석에서 김연경과 흥국생명간에 이견이 발생했다. 김연경과 김연경의 에이전트사인 인포스포츠코리아는 임대로 뛴 세 시즌을 합쳐 이미 FA 자격을 획득했다고 주장하고 있다. 반면 흥국생명은 김연경이 구단의 양해로 해외에서 뛴 만큼 임대 기간은 제외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FA 자격을 얻기 위해서는 국내에서 6시즌을 뛰어야 한다.
대다수 배구 팬들은 김연경의 편이다. 흔히 ‘100년에 한 번 나올법한 선수’라는 찬사를 받고 있는 김연경이 해외에서 맹활약하며 국위를 선양하도록 해야 한다는 논리다. 하지만 흥국생명의 입장 역시 틀린 것은 아니다. 구단이 소속 선수를 국위선양이라는 명분으로 아무 조건 없이 해외로 보내야 한다는 논리는 이치에 맞지 않는다. 자신들의 자산을 아무런 대가 없이 포기할 이유는 없기 때문이다.
분명한 점은 한가지다. 흥국생명에서 네 시즌을 뛰고 일본으로 진출할 당시 흥국생명과 김연경 사이에 어떤 합의 내용이 있었냐는 것이다. 임대로 뛰는 기간을 어떻게 해석 할 것인지에 대한 합의는 이미 당시에 이루어졌어야만 하는 가장 중요하고 핵심적인 내용이다. 이 같은 내용조차 명문화하지 않은 채 임대를 보냈다면 흥국생명의 아마추어적인 업무 처리는 비판을 받기에 충분하다.
가령 ‘흥국생명의 동의 하에 김연경이 해외에서 임대로 뛴 기간은 국내프로리그 FA 산정 기간에서 제외된다’라는 단 한 줄의 내용이 포함된 합의서만 작성했다면 흥국생명은 김연경에 대한 소유권을 합법적으로 주장할 수 있다. 하지만 흥국생명은 이에 대한 근거 자료를 제시하지 않고 있다. 이 부분에 대한 근거를 제시하지 못하는 한 흥국생명은 김연경이 자신들의 소속 선수라고 주장할 근거가 사실상 없다.
흥국생명은 김연경으로부터는 물론 임대 대상 구단으로부터도 임대료 형식의 돈을 단 한 푼도 받지 않았다고 항변하고 있다. 하지만 이는 더욱 난센스다. 합법적인 임대료조차 받지 못했다는 것은 상상할 수 없는 일이다. 프로구단이 소속 선수를 임대 보내면서 아무런 대가도 받지 않았다는 것을 어떻게 납득해야 하는 것일까? 만일 사실이라면 아마추어와 다를 것이 없다.
현재 김연경 사태(?)는 어느 정도 일단락됐다. 김연경은 다가오는 시즌 페네르바체에서 뛰고 계약의 주체는 김연경을 비롯해 페네르바체와 흥국생명이다. 즉 흥국생명이 페네르바체에 김연경을 임대로 보낸다는 것이다. 연맹 규정에 의거해 김연경이 맺은 에이전트 계약은 합법적이지 않은 것으로 일단 해석됐다. 하지만 불씨는 여전히 남아있다. 대한배구협회는 국제배구연맹(FIVB)에 이번 사건에 대한 유권해석을 의뢰한 상태다. 대표단을 미국으로 파견해 18일 애너하임에서 열리는 FIVB 총회에서 관계자들과 면담을 할 예정이다. FIVB가 어느 쪽 손을 들어주느냐에 따라 모든 것이 뒤바뀔 수 있는 상태다. 하지만 국내에서 일어난 구단과 선수간의 분쟁을 국제연맹의 유권해석을 통해 해결하겠다는 발상 자체도 망신이나 다름없다.
김연경 사건으로 인해 배구연맹은 또 한차례 규정을 손질할 가능성이 높다. 언제든 일어날 수 있는 일을 미리 대비하지 않고 사건이 터지면 그제서야 해결하려는 행태를 또 다시 반복하고 있는 셈이다.
구단과 선수의 관계에서 구단은 주체인 ‘갑’일 수밖에 없다. 하지만 현재까지 갑은 스스로 프로답지 않은 행동을 했던 경우들이 많았다. 흥국생명 역시 이 같은 비판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어쩌면 김연경이 해외에 진출해 이처럼 엄청난 활약을 할 것으로 애초에 상상조차 못했을 가능성이 높다. 때문에 임대를 보내더라도 1~2년 후면 김연경이 다시금 팀으로 돌아올 수밖에 없을 것으로 생각했는지도 모른다. 그렇게 됐다면 지금과 같은 문제는 전혀 발생하지 않았을 것이다.
흥국생명 역시 이번 사건을 통해 많은 것들을 배웠을 것이다. 김연경 같은 선수가 단시일 내에 또 나오는 일은 없을 테지만 이번 사건을 통해 무늬만 프로구단이 아닌 진정한 프로팀의 면모를 갖출 수 있기를 기대해 본다. 물론 비단 흥국생명에 국한된 문제는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