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국남의 직격탄] 조폭 아닌 의사도 사투리를 쓰네요?

입력 2012-10-04 07:43 수정 2012-10-04 08: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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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사도 사투리를 쓰네요! 정말 신기했어요!”

한 대학생이 최근 끝난 MBC ‘골든타임’을 보고 건넨 말이다. 현실에선 부산이나 경상도 사투리를 의사를 흔하게 볼 수 있지만 드라마나 영화에선 좀처럼 볼 수 없다. 실제 생활하면서 전라도 사투리로 말하는 대학교수나 변호사를 어렵지 않게 만나지만 드라마나 영화에선 그런 사람 만나기가 너무 어렵다. 현실에선 사투리 쓰는 재벌과 재벌 2세는 있지만 드라마나 영화에선 서울 표준말을 구사하는 재벌만 존재한다.

드라마나 영화에선 수십년 동안 전가의 보도처럼 휘두르는 법칙 하나가 있다. 사투리를 구사하는 주인공을 좀처럼 등장시키지 않는다는 것이다. 주인공 직업으로 자주 등장하는 재벌2세, 본부장, 검사, 변호사, 의사 등은 약속이라도 한 듯 서울말을 구사한다. 반면 조연이나 단역 혹은 주인공(Protagonist)과 맞서는 악역(Antagonist), 조직 폭력배, 낙오자, 삼류인생 등 일부 캐릭터 직업의 사람은 사투리를 구사한다. 드라마 등에서 사투리는 이제 주인공과 전문직 캐릭터에는 부조화를 이루는 이단의 언어로 전락했다. 대부분의 드라마나 영화에서 경상도, 전라도, 강원도 등 지역 사투리 대사는 지역의 삶과 생활의 언어가 아닌 촌스러움과 코믹스러움, 천박함과 을 유발하는 고착화된 장치이자 조폭, 깡패 캐릭터 등 등가물로 사용되는 언어다.

▲MBC '골든타임'
그런데 문제다. 드라마나 영화 속 특정 캐릭터와 연계된 스테레오타입식의 사투리 대사가. 그리고 드라마와 영화 등 대중문화와 미디어가 구사한 사투리로 촉발된 이미지와 편견들이.

TV 드라마나 영화 등 매스미디어에 노출되는 사람들의 인식 속에 현실이 아닌 미디어가 구축한 모습이 똬리를 트는 경향이 강하다. 적지 않은 사람들이 기 드보르의 지적처럼 드라마나 영화와 같은 미디어나 대중문화에 의해 만들어진 사회 즉 스펙터클의 사회에 살고 있다. 드라마와 영화가 디자인 한 시선으로 현실을 보는 것이다. 장 보드리아르가 간파한 미디어가 조장한 이미지(시뮬라시옹)를 실재보다 더 실재적인 것으로 인식하며 산다.

드라마와 영화 등 대중문화와 방송을 비롯한 매스미디어의 스테레오타입식의 묘사로 서울말과 서울 사람은 세련과 전문성, 주류 등 긍정적인 이미지로 구축되는 반면 지역 사투리를 구사하는 행태나 사람들은 촌스러움, 무식, 그리고 비주류로 간주되는 부정적인 인식이 심화됐다. 더 나아가 사투리가 특정 지역과 특정 직업에 대한 왜곡된 시선과 편견을 강화하는 기제가 됐다.

▲MBC '메이퀸'
작가, 연출자, 감독 등 대중문화와 매스미디어 종사자들의 사투리에 관련된 고착화된 묘사가 초래될 문제에 대한 각성 없이 스테레오타입식으로 반복 활용하는 안이한 창작행태가 사투리에 담긴 진정한 의미와 지역민의 삶과 생활, 문화의 향취를 거세하고 있다. 뿐만 아니다. 사투리를 천하고 부정적인 그리고 촌스러운 캐릭터나 지역, 직업 묘사의 등가물로 전락 시켜 지역을 부정하며 지방민을 왜곡시키고 끝내는 사투리를 죽이는 결과를 초래하고 있다.

드라마나 영화 등 대중문화 창작자 여러분은 알았으면 한다. 현실에선 사투리를 쓰는 사람은 깡패나 조폭만 아니라는 사실을, 그리고 서울말 아닌 사투리 쓰는 대통령도, 의사도, 교수도, 변호사도 있다는 것을. ‘개그 콘서트’의 인기 코너 ‘네 가지’의 양상국은 이렇게 말했을 것이다. “사투리 쓴다꼬 무식한 것 아닙니더! 사투리 쓰는 의사도 변호사도 있습니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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