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正論]최용식 21세기 경제학연구소 소장 "이헌재를 위한 변론"

입력 2012-10-18 11:11
  • 가장작게

  • 작게

  • 기본

  • 크게

  • 가장크게

이헌재 전 장관이 안철수 후보의 경제 멘토로 알려진 직후에 몇몇 진보 지식인들의 집중적인 공격을 받았다. 어떤 이는 ‘관치금융의 원흉’으로, 어떤 이는 ‘신자유주의자’로, 다른 이는 ‘참여정부 실패의 책임자’로 비난했다. 진보 지식인들이 특정인에게 이렇게 몰매를 가한 게 과연 한 번이라도 있었을까? 필자가 기억하기로는 이런 일을 들은 적도, 본 적도 없다.

도대체 왜 이헌재(이하 존칭 생략)가 이런 비난을 받았을까? 아마 정치적인 이유가 가장 클 것이다. 쉽게 말해, 이헌재가 안철수 캠프에서 중요한 역할을 한다면, 자신들의 입지가 줄어들 것이라고 믿었기 때문일 것이다. 이런 이유가 아니라면 특정인을 이처럼 벌떼처럼 달려들어 공격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이것은 중요한 문제가 아니다. 그들의 비난이 장차 우리 경제에 치명적인 피해를 입힐 수도 있다는 점이 더 심각하다.

이헌재가 1998년 외화위기 때에 금융기관 구조조정을 강력하게 단행한 것은 틀림없는 사실이다. 금융시스템이 무너질 위기에 처했기 때문이었다. 최근 세계 금융위기가 보여주듯이, 금융위기는 전염성이 아주 뛰어나다. 금융회사 하나가 무너지면 다른 금융회사들까지 차례로 무너지곤 한다. 그래서 세계 각국은 금융위기가 터지면 공적자금을 투입하여 구조조정을 단행하곤 한다. 이헌재는 그 역할을 수행했던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헌재를 비난하는 것은 스스로 무지를 폭로한 것에 불과하다. 해외에서는 그의 업적이 역사상 가장 성공적이었다고 평가했으니 말이다. 당시의 금융위기는 금방 극복되었고, 외환위기도 세계사에서 가장 성공적으로 극복되었지 않은가. 외환보유고는 1년 만에 과거의 두 배나 쌓았고, 1년 뒤에는 성장률이 10 퍼센트를 넘음으로써 경기회복도 가장 이르게 달성했던 것이다. 뿐만 아니라, 외환위기 뒤에 의례히 나타나는 해고사태, 빈부격차 악화, 국가부채 증가, 국부 유출 등의 후유증도 가장 적었다.

만약 1998년 외환위기 때 금융 구조조정을 단행하지 않았더라면 어떤 일이 벌어졌을까? 1980년대 중남미 국가들처럼 수년에 걸쳐 마이너스 성장률을 기록했을 것이고, 실업률은 20 퍼센트를 넘었을 것이며, 물가상승률은 수천 퍼센트에 이르렀을 수도 있었을 것이다. 그런데 이헌재를 관치금융의 원흉 혹은 신자유주의자로 모는 게 과연 타당한 일일까?

아무리 건강한 사람도 종종 병에 걸리듯이, 아무리 튼튼한 국가 경제도 종종 금융위기를 겪는다. 대표적으로 1980년대까지의 일본경제는 세계가 칭송해마지 않았을 정도로 뛰어났지만, 1980년대 말에 금융위기가 터졌고, 즉각 처방이 이뤄지지 않음으로써 4반세기 가까이 경제난에 시름하고 있다. 그래서 파이낸셜타임즈는 ‘일본은 한국이 금융위기를 어떻게 극복했는지 배워야 한다. 한때 일본의 경제적 제자였던 한국은 이제 일본의 경제스승으로 거듭났다.’고 보도했지 않았던가(2002년 3월21일자).

더 이상한 것은 참여정부의 실패를 이헌재에게 덧씌우는 짓이다. 참여정부가 좌측 깜빡이를 켜고 우측으로 가게 한 것이 이헌재이고, 그래서 실패했다는 것이다. 실제로 참여정부 5년 동안의 연평균 성장률은 4.3%로서 단군 이래 최대 난리라던 환란을 당했던 국민의정부 시절보다 거의 1% 포인트나 낮았다. 그렇다고 이 책임을 이헌재에게 묻는 것은 가당치 않다. 참여정부는 가장 진보적인 정책을 펼쳤지만 경제난은 심각했기 때문이다. 만약 이헌재마저 중심을 잡지 못하고 더 좌측으로 옮겨갔더라면 과연 어떤 일이 벌어졌을까?

물론 지금은 복지 전성시대이다. 여야 대통령 후보를 불문하고, 심지어 무소속의 유력 후보까지 복지를 내세우고 있다. 그런데 새누리당이 복지를 내세우는 것은 진보적인 표를 의식한 훌륭한 선거전략이라고 볼 수 있다. 그러나 야권 후보가 ‘더 좌측으로’를 외치는 것은 어리석은 짓이다. 이념적 중간지대의 표를 포기하는 짓이나 다름없기 때문이다. 더욱이, 성장의 뒷받침을 받지 못한 복지 확충은 예외 없이 심각한 경제난을 초래했던 것이 세계사적인 경험이지 않은가. 그나마 이헌재라도 있어서 다행이라고 해야 하지 않겠는가.

  • 좋아요0
  • 화나요0
  • 슬퍼요0
  • 추가취재 원해요0

주요 뉴스

  • 교통비 또 오른다?…빠듯한 주머니 채울 절약 팁 정리 [경제한줌]
  • 기본으로 돌아간 삼성전자…'기술-품질' 초격차 영광 찾는다
  • "비트코인 살 걸, 운동할 걸"…올해 가장 많이 한 후회는 [데이터클립]
  • 베일 벗은 선도지구에 주민 희비 갈렸다…추가 분담금·낮은 용적률이 ‘복병’[1기 선도지구]
  • [2024마켓리더대상] 위기 속 ‘투자 나침반’ 역할…다양한 부의 증식 기회 제공
  • 재산 갈등이 소송전으로 비화…남보다 못한 가족들 [서초동 MSG]
  • “117년 만에 폭설도 못 막지”…올림픽파크포레온 1.2만 가구 입주장 개막에 '후끈' [르포]
  • 목소리 높이는 소액주주…상법개정안 가속 페달 달까
  • 오늘의 상승종목

  • 11.27 장종료

실시간 암호화폐 시세

  • 종목
  • 현재가(원)
  • 변동률
    • 비트코인
    • 130,829,000
    • +0.03%
    • 이더리움
    • 4,786,000
    • +1.21%
    • 비트코인 캐시
    • 706,000
    • +2.54%
    • 리플
    • 1,972
    • -0.75%
    • 솔라나
    • 328,100
    • -0.15%
    • 에이다
    • 1,373
    • +3.08%
    • 이오스
    • 1,119
    • -2.1%
    • 트론
    • 280
    • +1.45%
    • 스텔라루멘
    • 659
    • +2.17%
    • 비트코인에스브이
    • 93,650
    • +0%
    • 체인링크
    • 25,370
    • +5.75%
    • 샌드박스
    • 855
    • -3.82%
* 24시간 변동률 기준